광장에 선 어느 블랙리스트 영화인의 웅변

"지금 대한민국에서 예술은 광장에 타오른 촛불"

2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13차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김기춘 전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된 21일, 굵은 눈발과 살을 에는 한파가 몰아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이날 오후 열린 촛불집회에는 어느 블랙리스트 영화인이 무대에 섰다. 바로 다큐멘터리 영화 전문 배급사인 시네마달의 김일권 대표였다.

김일권 대표는 "제가 이 자리에 선 것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때문입니다"라며 "시네마달은 강정마을, 용산참사, 밀양 송전탑, 세월호 참사 등 사회적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다큐멘터리를 전문적으로 배급하고 있는 조그만 회사입니다"라고 소개했다.

"저희는 세월호 다큐멘터리를 배급했다는 이유로 청와대로부터 직접 내사 지시가 떨어지고, 함께 일하는 직원들의 핸드폰이 사찰 당하고, 국가기관의 지원사업으로부터 배제돼 블랙리스트로 관리되고 있는 가난한 회사입니다. 저희뿐만 아니라 많은 영화인들과 문화예술계 사람들이 저희와 유사한 피해를 당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 이번 블랙리스트 사건을 통해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습니다."


김 대표는 "대한민국 헌법 22조에 의하면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돼 있습니다"라며 말을 이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헌법을 위반하는 중대 범죄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헌법을 위반하는 중대 범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하지만 저 뒤의 광화문 텐트를 보십시오. 저희 영화인들과 문화예술계 사람들은 블랙리스트를 뚫고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자 광화문광장에 블랙텐트를 치고 광장을 극장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그리고 오늘 김기춘 전 실장과 조윤선 장관이 블랙리스트 때문에 구속됐습니다"라며 "김기춘과 조윤선이 누구입니까.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입니다. 당연히 박근혜 대통령 또한 블랙리스트의 범죄 행위에 책임을 지고 당장 대통령직에서 내려와야 할 것입니다"라고 역설했다.

"또한 블랙리스트로 영화계를 탄압했던 영화진흥위원회 관계자와 문화예술계 관련 부역자들을 즉각 파면시키고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좌천되고 사퇴 당한 양심적 공무원들은 당장 복직돼야 할 것입니다."

김 대표는 끝으로 "예술은 다른 사람의 슬픔을 따라 슬퍼하고 다른 사람의 영혼과 융합시키는 감정이라고 했습니다"라는 말로 운을 떼며 광장의 시민들과 함께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예술은 여기 광화문광장에 모인 사람들이고 광화문광장에 타오른 촛불입니다.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촛불 조명입니다. 바로 촛불, 그 하나하나가 모여 밝히는 조명은 그 어떤 조명보다 아름답고 위대합니다. 그 촛불이 있는 곳에 항상 카메라가 함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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