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나온 내 츄리닝 옆 아들놈 츄리닝" 엄마 울린 시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이경애 (<견고한 새벽> 펴낸 시인)

지금부터 소개해 드릴 이야기는 요즘 같은 각박한 때에 이런 일이 있을까 싶은 동화 같은 얘기입니다. 한 무명 시인이요, 혼자 자신의 블로그에다가 시를 써서 올립니다. 그런 사람들이야 얼마든지 많이 있죠. 그런데 이 블로그를 우연히 찾았던 네티즌들의 입에 입을 통해서 시가 좋다는 입소문이 난 겁니다. 그리고는 급기야 네티즌 팬들이 돈을 모아서 이 무명 시인의 시집을 출간해 줍니다. 화제의 인터뷰, 이 아름다운 이야기의 주인공 행복한 사람 이경애 시인 직접 만나보죠. 이경애 시인님 안녕하세요?



◆ 이경애> 네, 안녕하세요.

◇ 김현정> 우선 축하드립니다.

◆ 이경애> 감사합니다. (웃음)

◇ 김현정> 생애 첫 시집이 나온 거에요.

◆ 이경애> 네, 그렇죠.

◇ 김현정> 보니까 정식 등단은 2013년에 하셨어요. 그런데 시집을 낼 여건은 안 되셨던 건가요?

이경애 시인 '견고한 새벽'. (사진=이경애 시인 측 제공)
◆ 이경애> 네. 좀 우선 생활이 우선이라 시집을 자꾸 뒤로 미루고 미루고 했었어요.

◇ 김현정> 그러셨군요. 그래서 그냥 시집은 안 내도 블로그에다가 한편 두편 시를 올리기 시작하신 건데, 그런데 유명한 시인 블로그도 아니고 무명시인 블로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을까 싶은데요.

◆ 이경애> 그렇죠. 처음에는 한 분, 두 분 좋다 이러시다가, 또 그분이 연결하신 분이 또 찾아오시고요.

◇ 김현정> 그러다가 우리 이렇게 블로그에 와서 구경만 할 게 아니라 이경애 시인의 정식 시집을 내드리자라고 의기투합을 네티즌들이 한 건 언제입니다.

◆ 이경애> 올 여름, 여름 지나고 가을 시작될 무렵에요.

◇ 김현정> 어떤 식으로요?

◆ 이경애> 일단 대표적인 분이 저한테, 이웃들이 뜻을 모아서 시집을 좀 냈으면 하는데 동의를 해 줬으면 좋겠다. 자존심 상해하지 말고 좋은 시들이니까 사람들이 알고 읽어주는 것도 좋지 않겠냐, 그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이걸 받아들여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좀 망설였었는데…. 사실 울컥했어요.

◇ 김현정> 울컥 안 할 수가 없었을 것 같습니다. 몇 분이나 그렇게 마음을 모으신 거예요?

◆ 이경애> 주도를 하신 분은 세 분이시고요. 이제 그분들의 이웃, 또 저희 이웃 이렇게 해서 미리 시집 예약도 하시고 또 나름 가지고 계신 소장품이나 수공예품 경매도 하시고.

◇ 김현정> 경매도 하시고.

◆ 이경애> 이런 식으로 도와주셨어요.

◇ 김현정> 이런저런 모양으로 참여하신 분들이?

◆ 이경애> 시집 예약을 하신 분은 한 200분 정도 되네요.

◇ 김현정> 그렇군요, 그렇군요. 얼굴도 모르는 네티즌들이잖아요.

◆ 이경애> 그렇죠. 한 번도 뵌 적도 없고 개인적으로 통화를 한 적도 없어요.

◇ 김현정> 통화를 한 적도 없었던. 그야말로 온라인으로 작품으로만 만난 사람들이 얼마나 시가 얼마나 좋으면 이걸 책으로 내서 많은 사람이 읽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셨을까 싶은데요. 제가 궁금해서 시를 보니까요. 진짜 좋아요.

◆ 이경애> 아우, 감사합니다.

◇ 김현정> 그 시를 우리 청취자들과도 좀 나누고 싶습니다. 다 읽어주실 수는 없고 시집 <견고한 새벽> 중에 한 편, 우리 시인이 좋아하시는 시로 하나 낭송 부탁드려도 될까요?

◆ 이경애> 네. 낭송을 하라 그러시면 하기는 하는데 잘은 못해요. 처음으로 해 보는 일이라서요. (웃음)

◇ 김현정> 처음으로 해보는 일. (웃음) 그래서 더 기대됩니다. 어떤 시인가요?

◆ 이경애> 감사합니다. 제가 우리 아들 생각하면서 썼던 시인데요. '빨래'라는 시가 있어요.

◇ 김현정> 시 '빨래' 이경애 시인의 목소리로 빨래 들어보죠.


이경애 시인 '빨래'. (사진=이경애 시인 측 제공)
◆ 이경애>

빨래

무릎이 튀어나온 내 츄리닝 옆에
아들놈 츄리닝을 넌다
인심 쓴 눈대중으로도
석 자 가웃 남짓이나 될까 싶은
세월의 마디와, 허리춤
바짝 틀어쥔 유전의 치수

헐거워진 틀니처럼 낡아버린
내 바짓단 밖으로 춥게
터져 나온 실밥들을 토닥이는
아들의 마른 다리
초유도 먹이지 못한 유선이 찌르르 땡긴다.
내 속에서 나와 칭얼거리던 것이
나머지 생은, 지가
다 걸어주겠노라는 듯 껄렁거리며 다
삭아내린 어미의 발목을
툭, 툭 친다

◇ 김현정> 와…. 뭉클하네요. '빨래'라는 시. '내 바짓단 밖으로 춥게 터져나온 실밥들을 토닥이는 아들의 마른 다리. 초유도 먹이지 못한 유선이 찌르르 땡긴다.' 이거 어머니들이라면 느낄 수 있는. 팬들 중에 여자가 더 많아요, 남자가 더 많아요?

◆ 이경애> 여자 분이 더 많습니다.

◇ 김현정> 여자분이 더 많죠. 아주머니 팬들 무지 많으실 것 같은데요?

◆ 이경애> 거의 제 또래 아니면 10살 전후 이렇게 많아요.

◇ 김현정> 그렇죠. 그럴 것 같아요. 그 시를 읽고 남긴 많은 감상글들이 블로그에 붙어 있는 걸로 아는데 어떤 게 제일 기억에 남으세요?

◆ 이경애> 읽어보고 눈물이 나서, 눈물이 나서 끝까지 못 읽고 그냥 차에다 놔뒀다가 틈틈이 한 번씩 읽는데 가다 말고 운전대를 놓고 좀 쉬신대요. 마음을 가라앉히느라고 쉰다는 그런 말씀을 하셨을 때. 내 시도 동감을 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 김현정> 사실은 요즘 문학이, 빠르게 빠르게 돌아가는 디지털 시대에 참 괄시받고 있잖아요. 이런 시절에 얼굴도 모르는 네티즌 팬들이 돈을 모아서 한 푼, 두 푼 모아서 시집을 내줬다는 이 사실만으로도 감동적이고 너무 마음이 좋아요. 아름답습니다.

◆ 이경애> 감사합니다.

◇ 김현정> 그리고 그 주인공이 이경애 시인이어서 좀 부럽기도 하고요.

◆ 이경애> 행복합니다. (웃음)

◇ 김현정> 이 시집 많은 분들이 함께하셨으면 좋겠고요. 두 번째 시집, 세 번째 시집도 저희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이경애> 감사합니다.

◇ 김현정> 오늘 귀한 시간 고맙습니다.

◆ 이경애> 네, 감사합니다. 수고하십시오.

◇ 김현정> 무명시인인데요. 네티즌들의 힘으로 첫 번째 시집이 나와서 화제입니다. 이경애 시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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