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영장심사를 이렇게 한마디로 요약했다. 무려 3시간 40분간에 걸친 사활을 건 특검과 변호인측의 다툼은 최근 구경하기 힘든 사건이었다.
글로벌 기업이자 국내 최대기업 삼성그룹을 이끄는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은 국내는 물론 전세계 외신들의 눈과 귀를 빨아들였다.
이 부회장이 영장심사를 받은 서울중앙지법에는 이날 내외신 기자 200여 명이 몰려들었다.
이 부회장은 영장심사를 받기 전후 모두 취재진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응대했다.
대신 변호인측은 "대가성 여부가 가장 논란이 됐다"며 "(변호인단은) 충분히 소명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검측은 밤새 준비한 범죄사실과 적용 법조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을 했고, 이 부회장의 소명 정도, 그리고 대통령과 뇌물죄 연관성 등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할 때 구속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변호인측은 특검측이 제시한 범죄사실을 일일이 반박하면서 "검찰이 사실관계를 오인하고 법리적용에도 문제가 있다"며 첨예한 대립각을 세웠다.
특히 양측은 이 부회장이 "(대통령에 의한) 강요의 피해자인가, (대통령에 대한) 뇌물의 공여자인가"를 놓고 사활을 건 변론전쟁을 벌였다.
또 뇌물죄 판단의 핵심 근거가 될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경제적, 정치적 공동체론'에 대해서도 특검과 변호인측은 양보하지 않고 접전을 벌였다.
서울중앙지법의 중견판사는 "상대방 변론에 따라 검사측이나 피고인측에서 하고 싶은 얘기를 다하는 거니까 그 변론시간을 재판장이 제한했을리 없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점심시간까지 건너뛰며 치열한 변론을 벌인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법리적으로 뇌물이 맞는지 사실관계는 뒷받침하는지를 두고도 양측이 물러서지 않는 공방을 벌였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통령이 연루된 삼성의 뇌물죄 공방'이라는 초유의 사건인 만큼, 영장전담 판사인 조의연 부장판사의 외로운 고민도 본격화됐다.
조 부장판사는 평소 기록검토를 꼼꼼히 하고 밤늦게까지도 사건기록을 보는 스타일로 알려졌다. 기록이 방대한 만큼 조 부장판사의 구속여부 결정은 통상의 사건과 달리 내일 새벽 늦은 시간에나 이뤄질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법원의 한 관계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이 심문후 다음날 새벽 4시에 나왔고, 이번 사건은 더 복잡하다는 특성을 감안할때 적어도 새벽 4시는 넘기지 않겠냐"고 전망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특검수사 기록이 선명하면 고민시간이 줄어들고 영장 발부여부도 이른 시간에 가능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