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외국인 선수의 손과 발이나 다름 없죠"

[코트의 숨은 조연] ④ 통역

유재학 감독 옆에서 외국인 선수들에게 전술을 전달 중인 모비스 차길호 통역. (사진=KBL 제공)
농구 코트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오롯이 코트 위를 누비는 선수들, 그리고 경기를 지휘하는 감독의 몫이다. 하지만 주연으로만 영화를 만들 수는 없다. 조연들도 필요하다. 선수단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니저를 비롯해 선수들의 몸을 관리해주는 트레이너, 상대를 면밀하게 파악해주는 전력분석원, 그리고 외국인 선수의 손발 역할을 하는 통역까지. 농구 코트의 숨은 조연들에게도 잠시나마 스포트라이트를 비춰보려 한다.[편집자주]

작전타임 때 감독 옆에 나란히 서는 사람이 있다. 감독이 목소리를 높여 화를 내면 마치 감독인 것처럼 따라서 목소리를 높인다. 감독이 웃으면 또 함께 웃는다. 바로 프로농구 10개 구단 통역이다.

통역의 기본적인 역할은 감독과 외국인 선수의 의사소통을 돕는 것.

하지만 통역은 흔히 말하는 통역 외에도 많은 역할을 한다. 외국인 선수의 출퇴근을 책임지기도 하고, 밖에서 밥을 먹을 때 따라다니기도 한다. 그야말로 외국인 선수의 손과 발이다.

통역 첫 시즌인 이현중(25) KGC 통역은 "기본적으로 외국인 선수 관리를 한다고 보면 된다"면서 "연습 때도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한다. 생활을 하면서 마트에도 같이 간다. 식당에서의 음식 주문부터 사소한 것 하나까지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쉽게 말하면 외국인 선수의 매니저다. 다만 이런 역할은 구단마다, 또 통역의 경력이나 성향마다 차이는 있다.

LG-전자랜드에서 8시즌째 통역을 맡고 있는 변영재(38) 통역은 '기싸움'이라는 표현을 썼다. 변영재 통역은 "구단마다 다르다. 어떤 구단은 24시간 붙어 커버하는 것을 선호하기도 한다"면서 "나는 생활에 적응할 수 있게만 도와준다. 처음에 외국인 선수도 나를 떠본다. 통역을 개인 매니저라 생각한다"면서 "막 시켜보려 한다. 한 번 해주면 다 시키게 된다. 처음부터 잘라야 한다. 물론 경기날에는 해달라는 것을 다 해준다"고 강조했다.

차길호(33) 모비스 통역은 "리카르도 라틀리프(삼성)가 기억에 남는다"면서 "사실 통역은 개인 시간이 없다. 흔히 외국인 선수가 괴롭힌다고 한다. 라틀리프는 나를 생각해주고, 이해해줬다.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도록 도와준 친구"라고 웃었다.

또 구단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비시즌에는 외국인 선수를 알아보는 국제 업무도 병행한다. 스카우트에 관여하지 않아도 외국인 선수를 보러 갈 때 함께 한다.

변영재 통역은 "구단마다 다르지만, 비시즌에는 국제 업무와 외국인 선수 스카우트도 맡고 있다"고 말했고, 차길호 통역 역시 "비시즌이 되면 외국인 선수 자료도 많이 검토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가장 기본적인 업무는 역시 경기, 훈련 때 감독과 외국인 선수의 소통 창구 역할을 하는 것. 짧은 시간 정확한 의사를 전달해야 하기에 고충도 많다. 특히나 거친 말이 오갈 때면 더 머리가 아프다.

1998년 대우에서 통역 생활을 시작한 베테랑 한성수(45) SK 통역은 "다 전달하려고 애쓴다. 화를 내도 감정을 전달해야 한다"면서 "경기 중에는 시간이 짧다. 짧게 설명하려 한다. 어차피 전술은 정해져있으니 간결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려 한다"고 설영했다.

반면 이현중 통역은 "순화를 많이 하는 편"이라면서 "감독이 '지난 경기 너는 완전히 졌다'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삐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어떤 점을 보완하면 도움이 된다'는 식으로 돌려 말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변영재 전자랜드 통역과 주장이었던 리카르도 포웰. (사진=KBL 제공)
대다수 구단이 공고를 통해 통역을 뽑는다. 하지만 추천도 있고, 스카우트를 통해 팀을 옮기기도 한다. 단순히 영어를 잘한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만큼 농구도 잘 알아야 한다.

부친이 NBA 해설위원이었던 고(故) 한창도 씨인 한성수 통역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이민을 가서 NBA를 봤다. 농구를 정말 좋아했다. 군대에 가기 전에 농구대잔치를 봤고, 세계대학초청대회 통역 일을 하면서 이 일이 괜찮겠다 생각했다"면서 "처음에는 영어만 잘 하면 된다 생각했다. 하지만 전문용어도 있다. 처음에는 전문서적도 번역하면서 공부를 했다. 용어는 계속 달라지니 계속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통역 모두 농구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10개 구단 통역끼리 정보도 공유한다. 특히 외국인 선수가 팀을 옮길 경우 선수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연락도 자주 한다.

차길호 통역은 "찰스 로드가 오면서 전 소속팀에 연락을 했다. 어떤 음식을 싫어하는지 등 알려줬다"고 설명했고, 이현중 통역은 "지난 시즌 KGC에 있던 류재융 KCC 통역에게 자주 연락을 했다"고 말했다.

가장 힘들 때는 역시 외국인 선수가 부진할 때. 반대로 기쁠 때는 외국인 선수가 잘 하고, 한국에 대한 애정을 표할 때다.

변영재 통역은 "경기력이 안 나오면 안타깝다.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결국 교체까지 가면 미안하기도 하다. 내가 실패했구나 생각도 한다"고 말했고, 이현중 통역은 "키퍼 사익스가 한국에 처음 왔는데 한국의 이런 점이 좋다고 말해줬을 때 기분이 좋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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