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죽은 '아가씨나무' 알고보니…터널 발파 때문

환경분쟁조정위, 분재 피해 첫 인정…"진동이 뿌리에 손상줘"

지난 2004년 경기도 용인에 2천㎡ 규모의 비닐하우스 온실을 마련한 A씨는 '아가씨나무'로도 불리는 명자나무 9800그루를 비롯, 2만여 그루의 분재를 자식마냥 키워왔다.

하지만 시름시름 말라죽거나 생육이 멈춘 분재들을 발견하기 시작한 건 2014년 10월. 이후로도 지난해 1월까지 16개월간 고사하는 분재들은 속수무책 늘어만갔다.

명자나무의 경우 화분에 옮겨 심어 5년 이상을 키우는 등 전시할 수준까지 만드는 데 10년 이상 소요된다. 작품성이 있는 명자나무 분재는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속까지 타들어가던 A씨는 지난해초 '범인'을 지목, 명자나무 2천그루에 대한 2억 5423만원의 피해 배상을 요구했다. 온실 인근의 고속철도 공사장에서 진행된 터널 발파 진동을 이유로 발주처와 시공사에 책임을 묻기로 한 것.

당시 터널 발파 공사는 2014년 12월부터 2015년 10월까지 진행됐다. 시공사측은 "발파 진동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화약의 장약량을 최소화했다"며 "발파 진동은 불과 2~3초여서 분재 고사의 직접적 원인으로 보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온실에서 측정한 진동수준이 초당 0.036~0.184㎝로 '현장관리기준'인 초당 0.2㎝ 이내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을 조사해온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이하 위원회)는 18일 A씨의 피해 사실을 인정, 발주처와 시공사측에 1억 400만원을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위원회가 발파 진동 및 분재 전문가 등과 함께 조사한 결과 터널 발파에 따른 온실에서의 최대 진동수준은 초당 0.421㎝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진동이 분갈이한 분재의 뿌리가 내려있는 마사토의 움직임을 유발하고, 표면이 날카로운 마사토가 뿌리에까지 손상을 줄 수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남광희 위원장은 "분갈이한 분재나무의 경우 뿌리가 약해 낮은 수준의 진동에도 말라 죽는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시공사는 주변에 분재 재배농가가 있는지 확인해 피해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위원회는 다만 명자나무 분재 2천그루 가운데 1600그루는 발파 당시 뿌리가 안정되지 않은 점을 고려, 전체 피해 요구액의 41%만을 피해액으로 인정했다. 자연손실율 10%, 피해율 75%, 주당 평균단가 9만원이 적용됐다.

지금까지 공사 진동으로 인해 춘란이 피해를 입은 사건은 3건 있었지만, 분재 피해의 개연성을 인정하긴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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