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원인 줄도 몰랐던 차은택
- '문화가 있는 날'이라는 '이상한 이름', 토의도 안 하고 제정
- 박 대통령, 공연 관람이 문화 향유인 것으로 아는 수준
- '그나마 다른 위원회에 비하면 활발한 편이었다'
- 최순실 "왜 저런 치를 데리고 일을 할까?"
■ 방 송 : FM 98.1 (18:30~19:50)
■ 방송일 : 2017년 1월 17일 (화) 오후 19:05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최준식 교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前 문화융성위원)
◇ 정관용> <한국인에게 문화가 있는가>라는 대표적인 저서로 유명하신 분이죠.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한국학과의 최준식 교수께서 이번에 <한국 문화의 몰락>, 이런 제목의 책을 쓰고 있었는데요. 이 책을 쓰는 중간에 전대미문의 사건,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터졌습니다.
그런데 최준식 교수가 문화융성위원회에서 2년 동안 활동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아마도 이번 게이트,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문화에 대한 관점, 이런 것을 아마 가까이서 소상히 지켜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대반전을 위한 마지막 고언’이라고 하는 부제를 달고 <한국 문화의 몰락>이라는 책이 완성돼서 지난 연말에 출판이 됐네요. 오늘 최준식 교수를 스튜디오에 초대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최준식> 안녕하세요.
◇ 정관용> 이 책은 언제부터 준비하셨던 거예요?
◆ 최준식> 한 1년 정도 전인 것 같아요.
◇ 정관용> 그런데 쓰고 계신 중간에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전대미문의 게이트가 터지고...
◆ 최준식> 저도 최순실이 나오길래 내가 10년 전에 만났던 그 사람인가 했는데 그 사람이더라고요.
◇ 정관용> 10년 전에 만나셨어요?
◆ 최준식> 네, 만난 적 있었습니다.
◇ 정관용> 어디에서 만나셨어요?
◆ 최준식> 그때 제가 박근혜 의원 사무실이 압구정동에 있었거든요. 전 몰랐는데 아는 사람 통해서 박근혜. 그때 의원이죠.
◇ 정관용> 국회의원 시절에?
◆ 최준식> 그가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대요. 그래서 한번 학계하고 정계하고 같이 만나서 얘기를 하면 좋지 않겠느냐.
◇ 정관용> 정치인들이 지금 전문 교수들 불러다가 자문을 받고 그러죠.
◆ 최준식> 그래서 약속 장소에 나갔는데 그때 최순실이 나와 있었던 거예요. 그 사무실로 인도가 됐는데 무슨 국회의원이 여의도에 자기 사무실이 있을 텐데 밖에다가 할까, 이상하게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서는 몇 번 만났는데 제가 딱 끊어버렸습니다. 발길을. 최순실이라는 사람하고 도저히 같이 갈 수 없는.
◇ 정관용> 왜요?
◆ 최준식> 사람을 처음에 조금 교수 대우 해 주는 척하다가 나중에는 보좌관처럼 부려먹으려고 하더라고요.
◇ 정관용> 그래요?
◆ 최준식> 나는 학계에서 논 사람이고 당신은 정치계이고 동등하게 하는 거지 이렇게 하면 어떻게 하냐. 제가 속으로는 저런 치를 데리고 일을 할까, 박근혜 의원이. 이상하다고 그러고서 딱 끊어버렸는데 잘 끊었죠.
◇ 정관용> 그러니까 박근혜 의원이 전문가 자문을 받는 자리에 매번 최순실 씨가 그럼.
◆ 최준식> 그러니까 거의 독대하다시피 해서 두세 번 만났었어요.
◇ 정관용> 박근혜 의원을?
◆ 최준식> 네.
◇ 정관용> 옆에 항상 최순실 씨가 있었어요?
◆ 최준식> 회의할 때 있었을 거예요. 그리고 문고리 3인방 중에 그때 한 사람도 거기 있었어요.
◇ 정관용> 이재만?
◆ 최준식> 네, 기억이 나요.
◇ 정관용> 이재만 비서관. 그리고 최순실 씨도 옆에 있었고. 그런데 대하는 태도가 그렇더라? 보좌관 취급을 하더라.
◆ 최준식> 나중에 그렇게 변하더라고요. 그래서 기분이 나빴어요.
◇ 정관용> 교수님은 어떻게 하면 보좌관 취급이 돼요?
◇ 정관용> 소소한 무슨 자기 일에 대한 아이디어, 이런 거 그냥 막 달라고? 아무튼 발길을 딱 끊으신 게 다행이다라고 하셨는데 그런데 그 최순실이 이 정도의 존재가 되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셨죠?
◆ 최준식> 전혀, 전혀 못했죠.
◇ 정관용> 그런데 이 게이트가 쭉 터지는 걸 보시면서 원래 준비하고 있던 책이 <한국문화의 몰락>이잖아요. 올 게 왔구나라는 생각이 드셨던 거예요?
◆ 최준식> 전혀 연관은 못 지었죠. 제가 이번 책은 크게 잡고 시작한 게 아니고 제가 문화융성위원회 활동, 그 활동한 게 사실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 활동을 좀 하다가 문화에 대한 한국사람들의 이해가 너무 편협해서 이걸 하면 좀 다른 좋은 의견을 내야겠다. 그래서 시작했던 거예요.
◇ 정관용> 이 책을 최초 발상하게 된 계기 중에는 문화융성위원회의 활동이 들어 있는 거군요.
◆ 최준식> 그렇죠.
◇ 정관용> 그래서 이 앞에 보니까 책을 시작하며가 굉장히 길어요. 거기 보면 이른바 문화융성위원회라는 단체의 한계, 이른바 문화의 날이라는 날의 문제점 뭐 이런 것들이 막 들어 있더라고요.
◆ 최준식> '문화가 있는 날'이라고 마지막 수요일 날에 있지 않습니까? 그것도 제가 회의 나갔더니 문화융성의 이름으로 그걸 제정했대요. 한 번도, 회의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 정관용> 문화융성위원회에서는 논의를 안 했어요?
◆ 최준식> 전혀 없었어요. 저 신문 보고 알았어요, 사실은.
◇ 정관용> 그런데 문화융성위원회가 결정한 거라고 돼 있어요?
◆ 최준식> 그렇게 나오죠.
◇ 정관용>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 최준식> 그러니까 이상한 거죠.
◇ 정관용> 자,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은 언제부터 되셨어요?
◆ 최준식> 2013년일 겁니다. 박근혜 정부 시작하고 바로.
◇ 정관용> 최초에?
◆ 최준식> 네.
◇ 정관용> 그래도 역대 정부가 항상 문화를 강조하기는 했지만 문화융성을 국정 4대 지표의 하나로 놓고 문화융성위원회도 만들고 그건 좀 초반에는 기대감이 있지 않았습니까?
◆ 최준식> 처음에는 있었습니다. 대통령은 좀 다르구나. 그런 건 있었는데 요새 알고 보니까 문화융성 용어도 최순실하고 같이 만들었다면서요.
◇ 정관용> 그래서 아무튼 기대감을 갖고 위원회의 위원으로 참여를 하셨다. 누가 추천했어요?
◆ 최준식> 그것도 모르겠어요. 저 같은 사람이 들어갈 자리가 아닌 것 같은데 거기 쟁쟁했거든요.
◇ 정관용> 어떤 분들이 있었습니까?
◆ 최준식> 영화계에서는 안성기 씨. 김동호 위원장부터 해서요.
◇ 정관용> 부산영화제 김동호 위원장. 영화배우 안성기 씨.
◆ 최준식> 안성기 씨, 정경화 씨.
◇ 정관용>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씨.
◆ 최준식> 네, 한식에는 한복려 씨. 먼나라 이웃나라 이원복 교수.
◇ 정관용> 이원복 교수.
◆ 최준식> 네. 기자 같은 사람 많이 와서 기사가 좀 됐었죠. 저는 어떻게 들어갔는지 모르겠어요.
◇ 정관용> 그래서 몇 년이나 하셨어요?
◆ 최준식> 그 임기가 1년인데 한 번 연장해서 2년.
◇ 정관용> 2년, 그게 문화융성위원회 1기이군요.
◆ 최준식> 그렇죠.
◇ 정관용> 그때 차은택 씨도 있었나요?
◆ 최준식> 없었어요.
◇ 정관용> 차은택 씨는 없었어요?
◆ 최준식> 네, 저는 차은택이라는 사람은 이번에 문화융성위에 들어왔다는 걸 알았어요. 이번 사건이 터지고.
◇ 정관용> 그러니까 최 교수는 1기이시고 차은택은 2기고.
◆ 최준식> 2기가 아니고 중간에 들어왔어요.
◇ 정관용> 1기의 중간에?
◆ 최준식> 네, 중간에.
◇ 정관용> 그럼 함께 임기를 하셨던 거 아니에요?
◆ 최준식> 했는데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딱 한번 봤는데 그것도 멀리서 보고 그 친구도 회의 나온 적이 없습니다. 제가 왜 기억하는가 하니 이번 신문 보니까 설운도 씨하고 같이 들어왔대요.
◇ 정관용> 가수 설운도 씨?
◆ 최준식> 그런데 설운도 씨는 우리가 회의에서 자주 봤거든요. 친해지고 그랬는데 이 친구는 한 번도 얼굴 비춘 적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그건 별 볼 일 없다는 걸 알고 안 나온 거죠.
◇ 정관용> 회의를 얼마 만에 한 번씩 해요?
◆ 최준식> 정기적으로 한 건 아닙니다. 2~3개월마다 한 번 정도?
◇ 정관용> 매번 회의 할 때 대통령이 주재합니까?
◆ 최준식> 아니, 아니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 정관용> 그건 아니고요?
◆ 최준식> 첫 번 한 번만 청와대에 가서 대통령하고 회의하고 그다음에는 위원들끼리만.
◇ 정관용> 위원들끼리만. 그때 1기 때 위원장이 누구입니까?
◆ 최준식> 그때 김동호 위원장.
◇ 정관용> 김동호 위원장께서 위원장을 맡으셨고. 그런데 뭘 보고 이른바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라는 단체의 한계’라고 하는 제목의 글을 쓰셨습니까?
◆ 최준식> 그러니까 아무 실권도 없고요. 예산 배정되는 것도 없고요.
◇ 정관용> 예산도 없고?
◆ 최준식> 아무 것도 없어요.
◇ 정관용> 위원들에 대한 수당 같은 것도?
◆ 최준식> 일절 없죠.
◇ 정관용> 일절 없고. 그런데 형식만 대통령 직속이고. 거기서 논의 안 했는데 문화의 날이 제정되고?
◆ 최준식> 네. 그 말도 웃기지 않아요?
◇ 정관용> 거기서 뭐하셨어요?
◆ 최준식> 한 게 없다니까요. 2년 동안. 그냥 이제 같이 몇 번 회의 하니까 친해지잖아요. 그래서 그거 보고 싶어서 나간 것 뿐이에요, 그냥.
◇ 정관용> 두세 달에 한 번 모여서 뭘 논의합니까? 그래도 의제가 있을 것 아니에요?
◆ 최준식> 제 기억에는 대통령한테 이걸 보고했다, 그런 얘기만 한 것 같아요. 그냥 김동호 위원장을 비롯해서 몇 분들이 지방 가서, 지방에 있는 분들한테 의견을 받아서 대통령한테 보고가 가면 그 정도 한 게 있었는데 다른 건 기억이 안 납니다.
◇ 정관용> 그냥 같은 위원들 보고 싶어서 가신 것밖에 없다?
◆ 최준식> 유명한 분들 많으니까 그래서, 정말이에요.
◇ 정관용> 그리고 그 문화의 날이라고 하는 것은 논의조차 안 했는데 결정된 것 신문에서 봤다? 문화의 날이 문제가 있나요? 그게 지금 매월 셋째 주인가.
◆ 최준식> 넷째 주 마지막 수요일.
◇ 정관용> 수요일날은 공연장 이런 걸 할인하고 그런 거잖아요.
◆ 최준식> 그거 발표된 다음에 아는 사람들 문화인들한테 물어봤더니 금방 나오는 게 그러면 “다른 날은 문화가 없는 날이냐?” 이런 얘기가 나오잖아요. 그걸 만일 공론화해서 토의를 제대로 했다면 그런 이상한 이름은 안 만들겠죠.
◇ 정관용> 그런 건 누가 한 겁니까?
◆ 최준식> 모르겠어요, 정말 모르겠어요. 위원들한테 물어봐도 다 모른대요.
◇ 정관용> 최 교수께서는 그럼 위원회에 가서 위원회가 하는 일이 뭐냐고 혹시 안 따지셨어요?
◆ 최준식> 계속 얘기를 했죠. 발표도 했고.
◇ 정관용> 뭐라고 발표하셨어요?
◆ 최준식> 이게 도대체 우리가 밥 먹으러 만나는 거냐, 뭐 이런 얘기. 또 문화에 대한 인식이 너무 뭐랄까. 일천하다. 가령 제가 이런 얘기를 계속 했거든요. 문화융성이라면 21세기에 사는 한국인들이 문화적으로 어떻게 융성하는 게 잘 사는 건지에 대한 정의부터 하자, 그런 얘기를 계속 했는데 아예 안 먹혀 들어가요. 그리고 각 분야 사람들이 모였으니까 자기 분야에서 이렇게 지원해 달라는 얘기만. 그것만 들은 것 같아요.
◇ 정관용> 자기 분야의 지원 이야기. 대통령 주재회의는 딱 한 번? 그때는 회의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 최준식> 그때는 이랬었습니다. 한 3분 정도 발표할 걸 준비해 오라고 해서.
◇ 정관용> 개개인마다?
◆ 최준식> 그래서 다 돌아가면서 얘기를 했죠. 송승환 맞나요?
◇ 정관용> 난타?
◆ 최준식> 그런 사람도 공연문화에 대한 문제, 안성기 씨는 영화관 문제 이런 걸 쫙 돌아가면서 한번 얘기를 했었죠. 그때도 박근혜 대통령이 참 계속 적더라고요. 그래서 참 열심히인가 보다. 하나하나마다 코멘트를 다 해 줘요. 기대를 했었죠. 그다음부터는 전혀 그런 기회가 더 이상 없었죠.
◇ 정관용> 딱 한 번 그렇게? 대통령하고 자유롭게 토론하고.
◆ 최준식>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전혀 없죠. 그때 한 번 잠깐 하고 나머지는 제가 책에도 썼는데 청와대 주재 무슨 문화회의다 그러면 전부 이게 정해진 각본대로 10시에 회의를 하는데 8시까지 오라고 해서.
◇ 정관용> 회의를 2시간 전에 와요?
◆ 최준식> 그러니까 청와대 인근에서 만나서 가는 거예요. 9시에 들어가면 1시간 동안 예행연습을 하더라고요.
◇ 정관용> 회의를 예행연습을 해요?
◆ 최준식> 발표가 다 정해져 있고 계속 예행연습을 하더라고요. 저희는 할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괜히 영빈관 왔다갔다 하면서 아는 사람 인사나 하고 말이죠. 시작돼 봐야 또 그 사회자가 그러더라고요. 질문은 없습니다. 안 받습니다.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무슨 회의가 이런 게 다 있냐는 말이죠.
◇ 정관용> 개별 위원들한테 3분씩 말할 거 준비해 오세요 해 놓고 1시간 전에 모여서?
◆ 최준식> 그런 첫 번째 회의이고 큰 회의를 영빈관에서 할 때 그렇게 했었어요.
◇ 정관용> 큰 회의라는 건 무슨 회의예요?
◆ 최준식> 무슨 의제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때 법무장관도 오고 굉장히 장관들 많이 와서 백여 명 정도 참석한 것 같아요.
◇ 정관용> 대통령도 있고?
◆ 최준식> 그때는 대통령이 왔죠. 일방적으로 그냥 몇 사람 발표시키고 대통령이 자기 소감 얘기하고 끝이에요. 그냥. 그래서 3시간 동안 거기 갇혀가지고 나오면서 다시는 안 온다, 이렇게 얘기했죠. 볼 일도 없겠죠.
◇ 정관용> 최 교수님은 한 마디도 안 하셨죠, 그때는?
◆ 최준식> 뭐, 질문은 안 받는다는데 어떻게 합니까?
◇ 정관용> 발언권도 원래 없었고요?
◆ 최준식> 원래 없었어요.
◇ 정관용> 리허설의 대상도 아니었고. 그냥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 최준식> ‘생쇼’ 하다 왔어요.
◇ 정관용> 2년 동안 계속 불평만 늘어놓으셨군요. 이게 뭐냐고?
◆ 최준식> 그래서 제가 그런 얘기를 했더니 제가 보니까 문화계만 블랙리스트만 있는 게 아니고 학계에도 있는 것 같아요.
◇ 정관용> 왜요?
◆ 최준식> 제가 그 뒤로 문화부 선정 우수도서가 있었거든요. 반드시 1년에 한두 건씩 됐는데 다 떨어지고 또 한국 고전문학번역원인가? 데보라 스미스란 친구 나온 데 있잖아요. 한강 <베지테리언> 번역한 친구. 거기에서 책을 다 쓰기로 다 얘기가 됐고 제가 쓰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마지막 계약하는 날 안 나타나는 거예요. 그걸 미루더니 없던 일로 하자고 하더라고요.
◇ 정관용> 저술 지원을 하기로 했었는데?
◆ 최준식> 그런 것들을 보니까 그게 다 관계되는 것 같더라고요.
◇ 정관용> 아니, 대통령 직속위원으로 자기들이 모셔놓고 그 위원회에서 좀 이 위원회가 제역할 해야 합니다. 이런 말을 하니까?
◆ 최준식> 청와대 쇼가 연출이 됐다 하니까 좋아하겠어요?
◇ 정관용> 청와대 쇼고 연출됐다고까지 발언을 하셨어요? 그랬더니 저 사람 저술은 다 빼, 이렇게 된 거라고요?
◆ 최준식> 그런 것 같다는 거예요. 확실히는 모르죠, 저는.
◇ 정관용> 그래, 진짜 ‘한국 몰락’했습니까? 이런 걸 보면?
◆ 최준식>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된다는 그런 생각이죠.
◇ 정관용> 그래서 <대반전을 위한 마지막 고언>이라고 부제를 다셨는데 근본적으로 뭐가 바뀌어야 합니까?
◆ 최준식> 한국사람들은 21세기에 살고 있는데 아직 머릿속에는 가치관이라든가 이런 것들은 19세기 조선 말기하고 크게 달라진 게 없어요. 그래서 그걸 바꾸지 않는 한은 안 된다 이거죠.
◇ 정관용> 이게 한국사람 전반이라고 보세요? 저는 그게 아니라 이른바 정치 사회, 정치권, 관료집단. 이쪽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두뇌구조가 문제가 있는 거 아니에요? 일반 시민들은.
◆ 최준식> 그런데 그 사람들은 어디에서 나왔어요? 국민에서 나왔잖아요.
◇ 정관용> 물론이죠.
◆ 최준식> 그래서 그 사람들 제가 여기에 썼지만 정치가가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화가 문제다.
◇ 정관용> 그러니까.
◆ 최준식> 정치 문화는 바로 한국사회에서 그대로 튀어나온 거고. 그래서 한국사회 전반에 관해서 고치지 않는다면. 지금 저 우리가 지금 뭐 좌파, 우파 이런 얘기하잖아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런 파는 없고 자파만 있을 것이다. 자 셀프, 모든 것은 자기 판은 다 맞고 다른 판은 다 틀리고 이런 것들. 그게 임진왜란 때 황용길하고 김성일, 똑같잖아요. 김성일 선생이, 그 양반들 바보겠어요? 굉장히 똑똑한 분인데 자기 당파에서 무조건 반대 얘기해라. 그럼 할 수가 없잖아요. 지금 그런 문화가 아직도.
◇ 정관용> 아직도.
◆ 최준식> 있겠고.
◇ 정관용> 그거랑 유교적 가부장제하고 어떻게 연결이 되죠?
◆ 최준식> 유교에서는 가족제도를 중시하는데 한국은요. 그러니까 무슨 지방 뭡니까? 지역 감정이니 학교, 자기 학교 사람만 뽑는 거 이런 학연, 지연이니.
◇ 정관용> 지연, 혈연, 학연.
◆ 최준식> 사실 혈연에서 시작됩니다. 그게 팽창되면서 그렇게 돼 버리는데 우리 가족 최고 우리 가족. 우리 가족 유일주의. 내 새끼 유일주의. 이런 데서부터 시작이 되거든요. 최순실 문제도 가만 보면 결국은 자기 딸 하나 그거 잘해 주려고 이런 농간한 거 아니에요. 그게 잘못된 유교식 가족제도예요. 내 새끼만.
이런 게 다른 내 가족과 다른 가족을 굉장히 나누고 내집단과 외집단. 이너그룹과 아우터그룹을 확연하게 구분하는. 서로 증오하고 배타하고 이런. 유교에서는요. 가족을 떠난 그 더 큰 공동체의 개념이 없어요. 모든 게 가족이에요, 가족. 국가도 가족이고 그래서 이걸 바꾸지 않는 한.
◇ 정관용> 그래서 그 안에서 가부장은 절대 권력을 갖고?
◆ 최준식> 그렇죠. 보십시오, 정치만 그런 게 아니고 이번에 청문회에 나왔던 한화증권 주진형 전 사장이, 재벌들 다 조폭문화하고 똑같다고 했잖아요. 그런 권위주의와 이런 패거리주의 이게 뭉쳐서 한국사회가 이렇게 됐는데.
◇ 정관용> 그것의 뿌리는 유교적 가부장제다?
◆ 최준식> 그러니까 유교라는 오래된 가치관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가치관이 안 나온다면 한국 사회는 지금 이처럼 계속 문제 생기고 적당히 땜질하고 이런 식으로 간다, 그런 내용이죠.
◇ 정관용> 어떻게 해야 좋겠습니까?
◆ 최준식> 글쎄요, 제가 마지막에 했죠. 한두 사람이 풀어야 될 문제가 아니고 저는 마지막에 그래서.
◇ 정관용> 뭔가 싱크탱크를 만들자는 거 아닙니까.
◆ 최준식> 네.
◇ 정관용> 이게 싱크탱크 연구소 만들어서 해결될까요?
◆ 최준식> 그래서 저는 이런 거예요. 도대체 문제가 뭔지. 제대로 알아야 되는 거 아니냐. 그래서 그걸 하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머리 좋은 사람들이 모여서 정말 권위에서 자유롭고 정부 간섭에 자유롭고 그런 데서 한번 끝까지 한번 해 보자.
◇ 정관용> 논의를 해 보고?
◆ 최준식> 해 보고 거기에서 해결책 주는 게 아니고 거기서 큰 방향을 제시하면 국민들이 그걸 체화시켜서 국민들 밑에 깔려 있는 집단적, 무의식 집단적 지성, 거기에 불을 붙여야 한다. 전국민이 해결할 수 있게. 지금 이대로 가면 한국은 여기에서 못 벗어나요.
◇ 정관용> 좋습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바로 그런 걸 좀 하려고 문화융성위원회를 만든 줄 알았죠, 처음에는?
◆ 최준식> 그렇죠. 그런데 그 사람의 문화에 대한 이해는 참 일천하더라고요.
◇ 정관용> 어떤?
◆ 최준식> 문화의 날에 기껏 공연장 가서 관람하면 그게 문화를 향유하는 줄 알고 있더라고요. 제가 문화란, 그것도 문화지만 문화라는 것은 특정한 장소에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옷을 입고 가서 향유를 하는 것이 아니고 일상이 문화라는 말이죠.
◇ 정관용> 의식과 정신의 변화. 그것이 모여지는 게 문화일 테니까. 지금 우리의 문화 수준에 그만큼 문제점이 많다는 것을 자각하고 변합시다, 이 말이군요.
◆ 최준식> 그렇죠.
◇ 정관용> 혹시라도 그런 기회가 될까 싶어 문화융성위원회를 가셨는데 대통령 들러리만 서다 오셨다?
◆ 최준식> 그러려고 간 건 아니에요. 유명한 분들이 많이 있으니까 얼굴 보러 갔죠.
◇ 정관용> 어떤 의미에서는 직접 경험하신 그런 문화융성위원회가 우리의 관료문화, 정치문화를 상징하는 거군요.
◆ 최준식> 그렇죠.
◇ 정관용> 그것이 바로 지적하신 유교적 가부장제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내는 그런 것 아닙니까? 일종의 허례허식이고요.
◆ 최준식> 그렇죠.
◇ 정관용> 필요없는 위원회 만들고. 그렇죠? 쓸데없는 일을 하고.
◆ 최준식> 네, 그나마 문화융성위원회는 좀 활발했대요. 다른 위원회에 비하면 국민권익 이런 거 많이 있었잖아요.
◇ 정관용> 국민대통합위원회도 있고요.
◆ 최준식> 그렇죠.
◇ 정관용> 그런 위원회는 더했대요?
◆ 최준식> 네.
◇ 정관용> 바꿔야죠. 이번에 크게 우리 국민들이 자각하고 홍역을 치르고 참 변화하고. <한국문화의 몰락 : 대반전을 위한 마지막 고언>이라는 책을 들고 오신 이화여대 최준식 교수 함께 만났습니다. 고맙습니다.
◆ 최준식>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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