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뉴스] 최순실, 왜 한 가지만 시인했을까?

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 시원히 짚어 줍니다. [Why뉴스]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 방송 : 권영철의 Why뉴스
■ 채널 : 표준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권영철 CBS 선임기자



최순실씨가 처음으로 공개석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동안 돌려막기를 하면서 검찰수사와 재판외에는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도, 특검에도, 헌재에도 온갖 이유를 들이대면서 요리조리 빠져나가던 최순실씨가 헌재의 탄핵심판 5차 변론에 출석한 것이다. 물론 스스로 출석한 게 아니라 헌재가 강제구인 카드를 꺼내자 마지못해 출석한 것이다.

최씨는 그러나 "몰랐다", "아니다" 로 예상된 답변을 하면서 '모르쇠'와 의혹부인으로 일관했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최순실씨는 왜 한 가지만 시인했을까?' 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박근혜 대통령 정부 비선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씨가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5차 공개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최순실씨가 인정한 한 가지가 뭐냐?

= 최순실씨가 인정한 의미 있는 한 가지는 정호성 비서관과 이메일을 공유했다는 것이다.

최씨는 정 전 비서관과 이메일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공유했느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보면…(된다)"고 이메일 계정 공유 사실을 인정했다.

최씨는 '정호성 비서관이 메일을 올리면 자동으로 그 내용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냐?'는 질문에 "다른 것은 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고, 연설문의 감성적인 표현이나 그런 것만 봤다"고 말했다. 또 '고위 공무원 인사자료가 포함됐느냐는 추궁에는 "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대통령의 연설문에 '감성적인 표현'만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를 의식한 답변으로 보인다.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5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한 최순실씨가 한숨을 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다른 건 전혀 인정하지 않았나?

=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하기도 했지만 불리한 사실에 대해서는 모르쇠나 부인으로 일관했다.

예들 들어서 청와대에 출입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구체적인 방문횟수나 방문목적에 대해서는 답변을 기피하거나 기억나지 않는다고 비켜갔다.

최씨는 국회 소추위원 측 법률대리인이 '청와대에 출입한 적 있느냐?'고 물으니 "출입한 적 있다"고 답했지만 '어느 정도 자주 출입했느냐'라는 물음에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고 방문 목적에 대해서도 "대통령의 개인적 일을 도와드리기 위해 들어갔다"면서 '개인적 일'의 의미를 묻자 "사생활이라 말씀드리기가 좀…"이라며 답을 피했다.

최씨는 평일과 주말에 각각 청와대를 방문한 적이 있다면서도 가장 최근에 청와대를 출입한 것이 언제였느냐는 이정미 재판관의 질문에 "기억이 안 난다"고 답했고, 누구의 차로 출입했느냐는 질문에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빠져나갔다.

최씨는 또 대통령 의상 제작에 관여한 사실과 지인의 회사인 KD코퍼레이션의 현대차 납품 과정에 개입한 사실 등을 일부 인정했지만 대가성이나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강력히 부인했다.

유리한 것은 인정하면서도 불리한 부분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부인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국정농단 혐의로 구속 중인 최순실이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5차 공개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최순실씨가 헌재에 출석하고 재판에서도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전략이 바뀐거냐?

= 전략이 바뀌었다기 보다는 대응방식이 바뀐걸로 보는 게 더 정확한 것이다. 최씨는 처음 검찰에 출두할 때는 "죽을죄를 지었다"며 고개조차 들지 못하더니 검찰에 출석해서는 자신은 억울하다며 180도 입장을 바꿔다.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는 '공항장애', '심신회폐' 등 말도 맞지 않는 이유를 대며 출석 하지 않고 버티더니 재판에 출석해서는 적극적으로 항변했다. 검찰의 조사를 인정하지 않겠다며 아예 '배째라식'으로 나오고 있다.

최순실씨의 이런 전략은 첫 번째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최씨는 증인 신문 내내 "기억이 안 난다"거나 "내가 한 일이 아니다", "모른다"면서 의혹을 부인했다. 국회 소추위원 측의 추궁에는 "내가 어떤 이권을 취했는지 구체적으로 말해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최씨는 또 "무슨 대답을 원하는지 잘 모르겠다. 정확하게 물어봐달라"거나 "검찰 신문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유도신문에 대답을 안 하겠다"며 진술을 거부하기도 했다.

최순실씨는 형사재판에서도 "검찰의 공소사실을 전부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로 일관하고 있다. 최씨는 자신은 국정을 농단하지도 않았고 이권도 챙기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사진=자료사진)
두 번째는 박 대통령을 보호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 낸 국회 탄핵소추안에 대한 답변서에서 최씨의 사익(私益) 추구는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자신은 잘못이 없지만 최씨의 잘못을 인정하는 듯한 태도다. 그렇지만 최씨는 박 대통령의 혐의에 대해 부인했다.

최씨가 박 대통령의 혐의를 부인하는 이유는 자신의 범죄 혐의 대부분이 박근혜 대통령과 공모관계이기 때문에 박 대통령의 혐의를 인정할 경우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자신을 위해 수사나 재판과 동일한 답변을 유지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씨는 소추위원단이 '최순실이 대한민국 권력 서열 1위이고, 전 남편 정윤회가 2위, 박 대통령이 3위'라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씨는 자신이 없으면 대통령이 아무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말도 안 된다. 대통령은 국정 철학을 분명히 갖고 계셨다"며 박 대통령을 감쌌다. 또 자신이 박 대통령과 문화 융성 방안에 대해 논의한 녹취록을 소추위원단이 제시하자 "제가 무슨 대통령과 상의를 해서 국정을 이끌어가느냐"며 반박하기도 했다.

최씨의 이런 답변 태도에 대해 국회소추위원단 측 법률대리인은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려는 예상된 답변"이라고 평가했다.

세 번째는 형사재판과 탄핵심판의 초점을 흔들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내비치고 있다는 것이다.

최씨는 검찰에서 강압적인 조사를 받았다며 자신의 진술도 모두 부인하고 검찰의 피의자 조서를 인정하지 않았다.

최씨는 자신의 태블릿PC와 외장 하드디스크에서 청와대 문건이 대거 발견된 데 대해서도 "다른 문건은 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다"며 선을 그었다. 태블릿PC도 외장하드고 자신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최씨는 '특검이 보여준 태블릿PC가 최씨의 것이 맞느냐'는 박 대통령 대리인단의 질문에 "장시호가 (특검의) 강요에 의해서 자기가 쓰던 것을 내놓은 것"이라면서 "저는 태블릿PC를 제 이름으로 사용한 적 없다. 검찰이 조카, 이모 사이에도 강압적 수사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워낙 강압적 수사를 하니까 특검 가면 자살할 것 같아서 못가겠다"고 엄살을 부리기도 했다.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 (사진공동취재단/자료사진)
최씨는 미르·K스포츠 재단에 대한 의혹에 대해서는 고영태(41) 전 더블루K 이사와 차은택(47) 전 창조경제추진단장 등이 자신에게 혐의를 덮어씌우려고 의도적으로 조작한 내용이라고 여러차례 주장했다. 최씨는 "고영태의 진술은 신빙성도 없고 계획적으로 모든 일을 꾸몄다고 생각한다"면서 "고영태의 증언은 완전히 조작"이라고까지 말했다.

국회소추위원단의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최순실씨가 핵심증거를 부인하면서 물타기하려는 의도를 보였다"고 말했다.

네 번째는 박 대통령과 맞춤형 답변을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JTBC에서 태블릿PC를 보도한 다음날인 10월 25일 첫 번째 대국민사과를 하면서 "최순실씨는 과거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서 저의 선거운동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됐는지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며 최씨에게 도움을 받은 사실을 인정했다.

최씨도 "다른 것은 본 것이 없고 연설문의 감성적인 표현이나 그런 부분만 봤다"고 말했다.

또 청와대가 검찰의 공소장을 '사상누각'이라고 전면 부인한 뒤 최순실씨는 자신의 진술까지 부인하는 맞춤형 전략을 펴고 있는 것이다.

최씨는 스스로 충신으로 남고자 했다고도 말했다. 최씨는 "주변에 챙겨주실 분들이 없었고 본인이 필요한 개인적인 것을 해드릴 분이 없었다. 저 나름대로는 충신으로 남고자 했는데 물의를 일으켜 죄송한 마음"이라며 울먹이기도 했다.

최씨의 이런 태도는 전략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거창해 보이는 것이고 어떻게 해서라도 혐의를 벗어보려는 얄팍한 술수로 보인다는 게 법조계의 평가다.

특검이 지난 1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뇌물공여와 배임횡령, 위증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 그렇지만 이재용 삼성 부회장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이 청구됐고 안종범 전 수석은 박 대통령이 대기업 상대 거액 모금과 대기업들의 '숙원 과제' 해결에 깊숙하게 관여한 사실을 인정했다.

그렇다. 최순실씨의 '모르쇠' 버티기에 현혹될 이유가 없다.

안종범 전 수석은 2016년 7월25일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독대를 위한 '말씀 자료'에 삼성 경영권 승계문제의 임기 내 해결 언급이 있었다고 시인했다. 또 SK 최태원 회장의 사면과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문제와 관련해 박 대통령이 현대자동차 '30+30 60억', CJ '30억+30억 60억' 등 기업별 구체적인 출연금 액수를 지정해 모금을 지시했다는 의혹이 사실이라고 증언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안 전 수석은 특히 미르·K스포츠재단 관련 문제가 불거진 지난해 10월 박 대통령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만나 "대기업 회장들과 공감대를 형성했고 전경련이 모금했다"고 해명하기로 이야기한 적도 있다고 시인했다. 박 대통령이 시시콜콜 개입한 사실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최순실씨의 모르쇠 버티기가 별 효과가 없어 보인다.

박영수 특별검사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뇌물공여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국회증언감정법 위반 등의 혐의로 사전 구속 영장을 청구했다. 특검이 국민만 보고 당당하게 가겠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이규철 특검보는 "국가경제 등에 미치는 상황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일이 더욱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영장청구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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