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사춘기 상(上)’을 통해 호기심 많고 감정기복이 심한 사춘기를 표현했다면, 이달 초 발표한 후속작 ‘사춘기 하(下)’에선 시간이 흐르면서 무르익은 감정, 그 감정들을 통해 바라본 세상을 일기장에 적은 속마음처럼 진솔하고 따뜻하게 담아냈다.
이번 후속작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나이가 들어 집에 돌아와 지난 추억을 회상하기까지를 시간 순으로 배열, 성장 스토리를 한 앨범 안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 특히 악동뮤지션은 특유의 순수함을 지키면서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혀 앞으로의 행보를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공백기를 뚫고 컴백한 악동뮤지션과 서울 마포구 합정동 YG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만났다.
찬혁 : 공허함의 시간이었다. 작사, 작곡을 하려고 했는데, 비활동기에는 경험하는 게 없다보니 생각이 떠오르지 않더라. 사실 만들어 놓은 게 많아서 예전보다 곡을 만들려고 애쓰지 않는 편이다. 요즘엔 언제 발표할지 모르니까 일부러 노래를 1절까지만 만든다.
수현 : 아무것도 안하고 이런 걸 잘 못 견딘다. 그래서 일부러 밖에 자주 나갔다. 특히 먹는 걸 좋아해서 잘 먹으러 다녔다. 공백기 때 살이 좀 쪄서 컴백 전에 회사 분들에게 혼났다. (웃음).
-전작보다 깊어진 감성이 인상적이다.
찬혁 : 느끼신 대로 감성적인 부분에 초점을 뒀다. 이전까지 ‘악뮤의 노래는 어리다’는 평이 많았다. 그걸 좋게 봐주시는 분들도 있지만, 한계점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과연 어른이 되어서도 지금의 순수한 콘셉트가 어울릴까?’ 하는 우려의 시선이었다. 발표를 하지 못했을 뿐 이미 어리지만은 않은 곡들이 많았다. 그런 반응을 보며 악뮤에게 어른으로 가는 길목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사춘기’를 콘셉트로 잡았다. ‘사춘기 상’은 이제 막 찾아온 사춘기의 느낌이고, ‘사춘기 하’는 바깥에서 보는 사춘기와 안에서의 사춘기가 뒤섞인 느낌이다.
수현: 동의한다. 악뮤의 노래는 오빠가 만드니까 오빠가 그렇다면 그런 거다. (웃음).
-오빠가 만든 노래를 표현하는 데 있어 어려움은 없었나.
수현 : 딱히 어려움이 없었다. 남이면 어려울 수 있겠지만, 오빠가 어떤 상황과 감정을 겼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몰입하기 수월했다. 아, 오빠의 사랑 이야기가 담긴 ‘오랜 날 오랜 밤’을 부를 땐 조금 힘들었다.
수현 : 처음 시작했을 땐 오빠의 아류였다. 코드를 베껴서 비슷하게 노래를 만들었는데, ‘이건 좀 아니다’ 싶더라. (웃음). 이젠 확실히 오빠가 만든 곡과 다르다. 밝고 감각적이고 리드미컬한 느낌이 있다. 그런데 사실 마음처럼 잘 안 된다. 너무 힘들고 스트레스다. 특히 작사에 재능이 없는 것 같다. 경험이 부족해서인가? 한창 동화책이나 애니메이션 속 조연들을 유심히 보며 써보기도 했는데, 소재 찾는 게 힘들더라. 쉽게 쉽게 쓰는 오빠가 얄밉다.
-오빠가 전수해준 비법은 없나.
수현 : 오빠도 비법이 없다. 그냥 번뜩일 때 쓰더라.
찬혁 : 맞다. 1집 수록곡 ‘인공잔디’도 운동장에 있다가 영감이 떠올라 집으로 뛰어가서 만들었다. 아마 그 노래는 홈스쿨링이 아닌 일반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면, 나오지 못했을 거다. 짜여진 스케줄을 어기면 선생님한테 엄청 혼나잖아.
-가수 활동은 할 만한가. 짜여진 스케줄대로 움직여야 하는데.
수현 : 힘든 점도 있지만, 재밌다. 또, 우린 부모님과 같이 살아서 자유로운 편이다. 숙소 생활 하시는 분들은 매니저분이 같이 살고 여러가지 규제가 많다고 들었다. 아, 회사 통금은 없는데 부모님 통금은 있다. 밤 11시 전에는 집에 들어가야 한다.
찬혁 : 사실 가수 역할은 수현이가 해주고 있다. 난 가수보다도 악뮤에서 뮤지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곡을 더 많이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요샌 무용이나 아트 쪽에도 관심이 많다. 관련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수현 : 정말? 그럼 공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찬혁 : 지금도 음악 용어를 잘 모르는데 뭐. 즐기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
수현 : 오빠, 그건 거만인 것 같아.
-수현도 숨기고 있던 꿈을 밝히자면.
수현 : 제2의 꿈은 ‘뷰티 유튜버’가 되는 거다. 얼마 전 ‘마리텔’에서 오빠에게 화장을 해준 적이 있는데, 그땐 일부러 재밌게 하려고 한 거고 아직 나의 본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다. 꿈이 언제 바뀔지 모르지만, 지금은 꽤 진지하다.
-음악적인 욕심은? 예를 들면 솔로 활동.
수현 : 솔로 욕심이 없지는 않다. 오빠도 마찬가지일 거다. 하지만 둘 다 악뮤를 버리는 일은 절대 없을 거다.
찬혁 : 난 레이블을 설립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YG가 힙합 회사였는데, 지금은 장르가 엄청 다양해졌다. 한 부서에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다보니 선배들이 레이블을 설립하고 계신다. 우리 색깔은 YG에서 처음이니 악뮤도 언젠가는...
수현 : 아직은 이르다. 우리가 조금 더 커야할 것 같다.
찬혁 : 10년 정도 지나서 형 소리를 들을 때쯤이 좋겠다.
찬혁 : 사춘기를 한정 짓고 싶지 않다. 시기가 도입부라서 그런 거지 사람은 계속 사춘기를 겪으면서 사는 것 같다. 어른이 되면서 무뎌지고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서 감추는 것 뿐.
수현 : 난 아직 사춘기가 오지 않은 것 같다. 왠지 늦게 올 것 같기도 하다.
-앞으로 악뮤의 음악은 어떻게 바뀌어나갈까.
찬혁 : 우리도 궁금하다. 악뮤의 음악이 어떻게 바뀌어갈지. 일단 감이 안 잡히는 음악을 하고 싶다.
수현 :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순수함을 잃지 않는 악뮤가 되고 싶다. 나이대에 따라 순수함의 기준이 달라서 예측하기 쉽지 않겠지만.
-서로의 장단점은?
수현 : 가장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다. (웃음).
찬혁 : 수현이는 부를 수 있는 노래의 스펙트럼이 넓고, 만들 수 있는 노래의 스펙트럼이 좁다. 반면, 난 만들수 있는 노래의 스펙트럼이 넓고, 부를 수 있는 노래의 스펙트럼이 좁다.
수현 : 역시 신은 공평하시네.
-올해 소망은.
찬혁 : 수현이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수현이가 보컬적으로 더 많은 걸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고,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수현 : 오빠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프면 가슴이 너무 저릿저릿하다. 또 오빠가 키도 크고 마음도 크는 한해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