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전봇대는 성인 한 명의 무게도 견디지 못할 정도로 부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1일 오후 4시 40분쯤 전남 보성군 득량면의 한 마을에서 통신 케이블 수리 업무를 담당하는 KT 협력업체 직원 이모(57)씨가 전봇대에 깔려 119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이씨는 이날 오전 동료 3명과 함께 보성으로 향했고 2명씩 조를 나눠 각자 맡은 지역의 업무를 처리했다.
일이 먼저 끝난 이씨는 득량면의 한 마을에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나머지 일행과 합류했다.
이씨는 자신의 업무가 아니었지만 지친 동료들을 대신해 사다리를 타고 6m 높이의 전봇대에 올라탔다.
관련 직종에서 20년간 근무한 베테랑인 이씨는 이날도 안전 매뉴얼을 지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안전벨트를 착용, 전봇대와 연결했다.
하지만 이씨가 광케이블을 자르는 순간 갑자기 콘크리트로 된 전봇대가 기울면서 두 동강이나는 어처구니 없는 사고를 당했다.
안전 수칙을 잘 지켰지만 그 결과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혹독했다.
이씨의 딸(35)은 "안전매뉴얼을 제대로 지킨 대가가 죽음이라니 사람 한 명 몸무게도 버티지 못하고 두 동강이 난 전봇대가 말이 되느냐"라며 "부실공사가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다시는 이런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불량 전봇대로 인한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3년 6월 대구에서도 이번 사고와 유사한 전신주 사고로 작업자 한 명이 숨지기도 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 직후 부실 시공에 무게를 두고 수사에 착수했다.
KT 측에서도 사고 원인에 대해 자체적으로 조사에 나섰다.
불량 전봇대로 추정되는 이 통신주는 1988년 KT에서 용역업체에 외주를 주고 설치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관리 감독자 등을 불러 업무상과실치사 혐의에 대해 집중 조사한 뒤 혐의가 드러날 경우 관련자들을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서울 구의역 사고 200여일, 세월호 1000일, 대한민국은 그동안 안전을 외치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제2, 제3의 세월호가 도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