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던 내 삶에 악기가 말을 걸었다

[비상(飛上)한 아이들①] 학교 밖 청소년 밴드 '꿈꿀수밴드'

지난해 대전CBS는 가정과 학교를 떠난 청소년들의 충격적인 실태를 고발했다. 가정과 학교에서 보호받지 못했던 아이들은 사회에서도 '가출·비행청소년'이라는 편견 속에 더욱 움츠러들어야 했다. 만약 사회가 편견 대신 관심과 도움을 준다면 이 아이들은 어떻게 달라질까? 대전CBS는 지역사회의 도움으로 편견을 딛고 비상(飛上)한 아이들의 사례를 매주 소개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방황하던 내 삶에 악기가 말을 걸었다
(계속)


지난해 12월 대전 서구 둔산동 여행문화센터 산책에서 '꿈꿀수밴드'가 첫 단독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유성구 청소년지원센터 꿈드림 제공)
"그대여~ 이제 걱정하지 말아요~"

지난해 12월 대전 서구 둔산동 여행문화센터 산책에 마련된 작은 무대.

무대에 올라 100여명의 시선과 마주한 아이들은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잔잔한 기타선율과 함께 관중들의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학교 밖 청소년 7명으로 구성된 '꿈꿀수밴드'가 밴드를 결성한 뒤 선보이는 첫 단독공연이었다.

이시원(16·보컬), 김송인(17·보컬), 이규민(17·보컬), 강민준(17·기타), 박진성(17·기타), 김용현(18·드럼), 박유하린(18·키보드)으로 구성된 꿈꿀수밴드는 이날 '학교 밖 청소년'을 향한 우려 섞인 시선들을 보란 듯 씻어냈다.

공연을 통해 모은 수익금 전액은 대전 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위한 기금으로 선뜻 내놓았다.

아이들의 표정에는 얼떨떨하면서도 무엇인가를 해냈다는 뿌듯함이 묻어났다. 보컬 규민이는 "남들 앞에 서본 적이 없어 많이 떨렸다"면서도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공연을 지켜보는 대전 유성구 청소년지원센터 꿈드림 남세진 팀장의 얼굴에는 여러 감정이 스쳐 지나는 듯했다. 남세진 팀장은 아이들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기억한다.

"무기력했어요. 웬만한 것에는 시큰둥한 모습을 보였죠."

유성구 청소년지원센터 꿈드림은 학교를 떠난 청소년들을 돕고 학업 및 자립 지원 등을 하는 곳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제 발로 센터를 찾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했다. 학업중단 숙려제 기간에 억지로 이끌려오기도 하고 경찰 등을 통해 연계된 아이들도 있다. '자발적으로' 온 게 아닌데다 사회의 차가운 시선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무엇을 하든 좀처럼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

보컬 규민이는 센터에 '자러 오는' 아이였다. 밤에는 친구들끼리 어울려 다녔고 낮이 되면 센터에 와서 잠을 자는 생활을 반복했다고 했다.

키보드 하린이는 학교를 떠난 뒤 좀처럼 마음을 잡지 못했다. 하린이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고 말했다.

이런 아이들에게 센터에서 제안한 것은 '음악'이었다. 남세진 팀장은 "무기력한 상태의 아이들에게 바로 공부를 하자, 진로를 찾자고 말할 수는 없었다"며 "음악치료의 하나로서, 또 아이들에게 작은 것에서부터 성취의 기회를 주기 위해 악기를 배워보자고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꿈꿀수밴드'의 첫 단독공연이 끝난 뒤 꿈꿀수밴드와 관객들이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유성구 청소년지원센터 꿈드림 제공)
아이들은 매일 오후 센터에 모여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코드를 익히는 것부터 음을 만들어나가고, 합주를 하게 되기까지 아이들에게는 첫 '성취의 경험'들이었다. 쌓이는 성취의 경험만큼 자신감과 자존감도 쌓여갔다.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한 아이들에게 밴드는 그 자체로 소속감을 주는 소중한 곳이 돼갔다. 남 팀장은 "매일 센터를 찾아 악기를 배우면서 차츰 센터에도 적응을 하고 다른 프로그램에도 열심히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꿈꿀수밴드의 탄생 배경에는 이밖에도 여러 '어른들'의 도움이 있었다. 한국수자원공사 물사랑 나눔봉사단 IT봉사대 직원들이 악기와 음향기기를 지원했다. 거기에 침례신학대 학생들이 재능기부를 통해 아이들 지도에 나섰다. 여행문화센터 산책을 운영 중인 이상은 라푸마 둔산점 대표는 선뜻 산책 공간을 공연장으로 내주었다.

"지역사회 곳곳에서 힘을 합하니 아이들이 눈에 띄게 성장하고 표정도 밝아졌다"고 남 팀장은 말했다.

규민이는 "아직은 막연하긴 하지만 '나도 뭔가 해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하린이는 "밴드를 통해 좋은 친구들도 생겼고 학교에서는 못했을 경험들도 많이 한 것 같다"고 했다. 6개월 간의 변화는 적지 않았다.

꿈꿀수밴드의 도전은 진행형이다. 아이들은 "사회복지시설과 노인요양시설에서 공연을 해 그곳에 계신 분들께도 우리가 느낀 따뜻함을 전해드리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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