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15일 경기도 평택에 있는 해군 2함대 사령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사드 배치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 전 총장은 "한반도 현실이 거의 준전시 같은 상황이기 때문에 정부가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은 마땅하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이 한반도를 준전시 상태로 표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엔사무총장 시절이던 2015년 4월 개성공단을 방문하려 했던 점을 고려하면 안보에서의 우클릭이 완연하다. 사드 배치 찬성 의견이 보수층에서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반 전 총장의 사드 찬성은 표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보복의 강도를 높이고 있는 중국의 반발을 어떻게 헤쳐나갈지에 대한 방안은 내놓지 않았다. 다만 "주변국과의 관계가 있는데 그런 문제는 외교적으로 잘 해결해나갈 수 있다"고 말했을 뿐인데 '외교의 달인'으로서 자신감이 묻어 있다는 평가와 함께 아무 알맹이도 없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사드 배치로 잔뜩 뿔이 난 중국이 전직 유엔사무총장의 외교적 대화 필요성에 얼마나 맞장구를 치고 나올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사무총장 재임 시절 미국의 눈치를 보던 반 전 총장이 국내에 돌아와서도 똑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거나 무시전략으로 나올 수도 있다.
위안부 문제에서는 말 뒤집기가 눈에 띈다. 반 전 총장은 지난 12일 귀국길에 " 한일 양국간에 오랫동안 현안이 됐던 문제에 대한 합의를 환영한 것"이라고 한발 뺐다. 그러면서 "궁극적인 완벽한 합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수준이 돼야 한다"며 재협상 또는 추가 협상 필요성에 무게를 실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반 전 총장 귀국 발언은 2015년 1월 2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대통령이 비전을 갖고 올바른 용단을 내린 데 대해 역사가 높게 평가할 것"이라고 극찬했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변화무쌍한 것이다.
그의 급격한 입장 변화는 위안부 문제 재협상을 요구하는 여론이 훨씬 높은 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가 한일위안부 합의 2주년을 맞아지난해 12월 28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합의를 파기해야' 한다는 의견(59%)이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25.5%)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반 전 총장의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을 풀어 줄 수 있는 수준이 돼야 궁극적인 완벽한 합의'라는 입장은 우리 외교부의 입장과도 맞지 않는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지난 1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나와 "1948년 이후 한일 관계의 모든 역사에 관한 문서에서 12.28 합의에서 받아낸 이상으로 받아낸 적이 없었다"고 12.28 합의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다.
반 전 총장이 선거연령 만 18세 인하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헌법 개정을 포함해 선거제도, 정책 결정 방식, 정치인의 행태, 사고방식 등을 전반적으로 손봐야만 한다"고 두루뭉술 대답한 것도 뚜렷한 입장을 정하지 못했거나 부정적 기류가 강한 보수진영의 눈치를 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