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들에게 말할 권리는 투표할 권리. "참정권은 곧 마이크다"
- 故 신영복 선생, 촛불을 든 시민들의 아랫목이 되어주었을 것
- 시민들이 가꾼 열매를 개가 와서 따먹지 않게 하는 법, 교학상장(敎學相長)
-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어른은 '멍 때릴 수 있게' 기다려주는 사람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9:05~19:50)
■ 방송일 : 2017년 1월 13일 (금) 오후 19:05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방송인 김제동
◇ 정관용> 오는 1월 15일이 신영복 선생 1주기입니다. 벌써 1년이 돼가는군요. 벌써 눈물이 나려고 그래요.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겪으시면서 통찰과 울림으로 우리 사회의 거울이 되어주셨던 분. 지난해, 올해 우리 사회에 참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럴 때 신 선생님이 계셨다면 과연 어떤 말씀을 해 주셨을까, 어떤 역할을 해 주셨을까 하는 그런 아쉬움이 더더욱 큽니다. 그래서 오늘 좀 특별한 손님 한 분 모시고 신영복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 또 요즘의 우리 사회 이야기 해 보려고 합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제자 가운데 한 분입니다. 여러분 좋아하시는 방송인 김제동 씨를 오늘 특별히 스튜디오에 초대했어요. 어서 오십시오.
◆ 김제동> 네, 감사합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정관용> 요새는 방송보다 거리에서 많이 보는 것 같아요?
◆ 김제동> 그렇습니까? 거리에 지금 저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 정관용> 물론 그렇죠.
◆ 김제동> 네. 제가 방송인이기도 하지만 방송인이기 전에 사실은 사람들하고 함께 있으면서 마이크를 잡는 사람으로 시작했으니까요. 그게 아마 예전 말로 하면 광대일 거고요.
◇ 정관용> 광대?
◆ 김제동> 그런 형태로 보면 오페라가 아니라 마당극일 거고 마당놀이는. . .
◇ 정관용> 더불어 함께.
◆ 김제동> 화중(話衆))이라고 저는 표현하는데요.
◇ 정관용> 화중?
◆ 김제동> 말을 하는 사람들.
◇ 정관용> 이거 만든 표현이에요, 스스로?
◆ 김제동> 네. 뭐 그래도 제가 만들었다고 꼭 할 수는 없겠죠. 어디선가 들었을 거니까, 모든 지식 같은 것들이 그러니까요. 그런데 모든 방송의 형태들이 사실은 사람들을 가르쳐야 될 대상 그리고 사람들은 방송이 진행되는 1시간 반 동안 가만히 강의를 듣거나, 심지어 마치 방송의 어떤 장식품처럼 있는거죠.
◇ 정관용> 그러니까 말하는 사람 따로 정해져 있고 나머지는 그냥 듣고.
◆ 김제동> 방송이 그런 형태잖아요. 그게 청중(聽衆)이라고 저는 보고요. 그런데 우리 마당극이나 줄을 탈 때 광대들은 철저히 그 시대 사람들의 언어를 대변하거든요.
◇ 정관용> 그렇죠.
◆ 김제동> 광대들이 대신해서 말하기도 하고, 또 사람들이 직접 자신들의 사연을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지금 거리에서 그런 형태이기 때문에 저는 특별히 길에서 제가 다른 형태를 하고 있다기보다 원래 제가 하던 일들을. . .
◇ 정관용> 옛날에 하던 거.
◆ 김제동> 네, 길거리에 사람들이 제일 많으니까, 거기서는 ‘우리’니까.
◇ 정관용> 그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간다?
◆ 김제동>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제가 어디든 간다기보다 사람들이 거기에 모여 있으면 거기가 제일 재미있지 않을까요. 거기가 제일 좋고. . .
◇ 정관용> 요즘 태극기 모여 있는 데는 잘 안 가시죠?
◆ 김제동> 태극기가. . . 글쎄요. 태극기는 사람들의 상징이어야 하는 것이잖아요. 사람들이 태극기의 상징이 되면 안 되는 것이죠.
◇ 정관용> 그렇죠.
◆ 김제동> 저는 그렇게 해석합니다. 태극기는 우리 모두의 상징적 깃발인 것이잖아요. 저는 그렇게 놓아두는 것이 옳다. 예를 들면 애국이라는 단어, 보수라는 단어, 태극기라는 깃발. 그 어떤 것도 단어 그 자체로 보면 나쁜 것이 한 개도 없거든요.
◇ 정관용> 그렇죠.
◆ 김제동> 그런데 그 단어를 가지고 가서 나쁘게 사용한 사람들이 있을 뿐이고 정치도 마찬가지잖아요. 정치라는 단어는 좋은 단어인데 그걸 누구에게 맡겼을 때 좋은 정치가 되느냐, 나쁜 정치가 되느냐.
◇ 정관용> 그래요. 옛날 유신 때 이럴 때는 말이에요. 법정에 피고인들이 서서 애국가를 부르면 경위들이 와서 입을 틀어막았어요. 그리고 그 당시에는 8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 교정에서 태극기를 흔들려고 그러면 붙잡혀갔어요. 이게 참 이렇게 태극기라는 것 하나가 시대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장소에 따라서 다 다른 의미를 갖는 거 아니겠습니까? 미묘해요, 이런 거 보면.
시민들에게 말할 권리는 투표할 권리. "참정권은 곧 마이크다"
◇ 정관용> 거리에서 사회를 보고 하면서 주로 만민공동회식의 자유 발언을 나와서 하시고 그때 이제 중간중간 추임새 넣고 분위기 만들고 그런 역할을 주로 하시잖아요. 깜짝깜짝 놀라지 않아요, 나와서 발언하시는 분들 얘기를 들으면서.
◆ 김제동> 엄청 재미있습니다.
◇ 정관용> 재미있죠.
◆ 김제동> 엄청 재미있고 그 분들 중에서 시인도 나옵니다. 그러니까 시인이 전문 시인이 아니고요. 본인이 적어 오신 것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앙코르를 요청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가끔 그런 만민공동회를 보면서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하거든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말을 잘했나?’
◇ 정관용> 그러니까요.
◆ 김제동> 그런데 저는 반대로 생각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렇게까지 사람들에게 마이크를 주지 않았나.
◇ 정관용> 말할 기회를 안 줬을 뿐이다.
◆ 김제동> 네, 이렇게까지 사람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었구나. 거기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이크.. 그러니까 말할 권리. 우리 하다못해 노래방에서도 사장님은 한 두 곡씩 하잖아요. 그리고 2절까지 하고. 그런데 보통 조금 이렇게 직급이 낮다 싶으면 1절 하고 눈치 보고 꺼야 되거든요, 분위기 안 좋으면. 그런 마이크가, 결국은 말할 수 있는 시간의 자유가 저는 권한의 차이로 드러났다고 생각해요. 그게 시대적으로 나타난 건 투표권이고요.
◇ 정관용> 투표권.
◆ 김제동> 투표권. 그게 말할 수 있는 권리잖아요.
◇ 정관용> 그렇죠.
◆ 김제동> 참정권이라는 것이.
◇ 정관용> 정치적 발언의 기회죠.
◆ 김제동> 참정권이고. 그런 게 투표권이었고 투표권이 지금 시대적으로 완료가 됐다고 보면 사실은 지금은 발언권을 돌려줘야 하는 시대인 거라고 생각해요. 미디어의 시대라고 하니까요. 그 미디어에서 말하는 사람들 소수가 정해져 있고요.
◇ 정관용> 요새 1인 미디어 시대가 돼서 그건 점점 확장이 돼가고 있죠, 사실은.
◆ 김제동> 확장이 되어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1인 미디어 시대에서 오히려 주류 미디어가 던져준 의제들을 가지고 우리가 소화해내는 1인 미디어 시대가 되면 안 되는 것이니까요.
◇ 정관용> 그렇죠, 자기 것을 만들어야죠.
◆ 김제동> 1인 미디어들의 목소리가 주류의 미디어들을 주도해 나갈 수 있는 시대의 초기에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 정관용> 그런 시대가 지금 오고 있다.
◆ 김제동> 이미 진입했다고 생각해요.
◇ 정관용> 이미 진입했다.
◆ 김제동> 그게 4차 산업혁명이잖아요, 사실은. 그게 4차 산업혁명이죠.
◇ 정관용> 그런 촛불집회나, 이런 주최 측에서 주로 김제동 씨를 와달라고 초청하는 거죠? 내가 갈게요 손 드는 건 아니죠?
◆ 김제동> 일단 무료니까 그렇게 하는 것 같고요. 이렇게 ‘무료로 간다’ 그러면 다른 데서도 자꾸 무료로 오라고 하시는데...그러시면 안 되고요.
◇ 정관용> 광화문 촛불집회만 무료다?
◆ 김제동> 그리고 1년에 30회에서 40회 정도는 무료강연도 합니다. 많게는 50회 정도 하고요. 재능기부는 정확히 제가 결정했을 때 재능기부인 거니까.
◇ 정관용> 거기까지 하는 거죠.
◆ 김제동> 네, 그래야 돈 받아야 우리 지금.
◇ 정관용> 식구들 먹여살리고.
◆ 김제동> 네. 그리고..
◇ 정관용> 회사도 운영해야 되고.
◆ 김제동> 그런데 만민공동회같은 경우에는, 이게 사실은 서재필 선생님께서 하신 거잖아요. 그리고 고종이 어찌 됐든 나와서 호통만 치고 돌아가고 보부상들을 동원해서 만민공동회에 나온 사람들을 폭행하기는 했으나, 그래도 최초로 시민들이 군왕을 광장으로 끌어낸 행사거든요. 그때는 끌어내기만 했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결정짓고 내려가게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만민공동회의 완성판, 결정판으로 저는 시작한 거예요.
◇ 정관용> 1월 달에 지금 계속 갑니까? 촛불집회 매번 갑니까?
◆ 김제동> 이제 다른 소도시들 6군데 정도 있습니다.
◇ 정관용> 지방에?
◆ 김제동> 그분들은 상대적으로 광화문광장보다. . .
◇ 정관용> 열악하죠.
◆ 김제동> 집중받지 못했잖아요.
◇ 정관용> 그렇죠.
◆ 김제동>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그분들의 열정이 더 소중한 거 아닐까요. 그러니까 가서 우리 잘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옳다, 이런 거 서로 확인하는 건 우리의 목소리를 내는 데 앞으로 길게, 또 행복하게 하는 데는 되게 필요한 일 같아요. 그리고 제가 그게 또 즐겁기도 하고요.
◇ 정관용> 재미있고 즐겁고.
◆ 김제동> 이번에 제주도 만민공동회 갔는데 비 왔었거든요. 그래서 거기 주최하시는 분께서 아이고, 이거 사람이 안 오면 어떻게 하냐 걱정을 했어요. 그래서 우리끼리 모여서 그렇게 결론을 내렸어요. 사람이 안 오는 게 아니고 한 사람이 와도 사람이 오는 거 아니냐. 한 사람이 와도 진짜 그 사람이 우주를 끌고 오는 거잖아요. 그리고 잠깐 와서 이렇게 앉아서 계시는 것 같지만 그날 일단 하루 다 비워야 되죠. 그다음에 아이들 데리고 나오시는 분들은 아침부터 기저귀 챙기고 유모차 챙기고 비 오는 날 비옷 챙기고 차 타고 그다음에 거기까지 걸어오시고. 게다가 비 오는 날은 서서 비 맞는 저보다 거기에 실제로 앉아 있어 보면 바닥에서 한기가 올라와요.
◇ 정관용> 그럼요.
◆ 김제동> 바지가 젖고 아무리 비옷을 입어도. 그렇게 앉아 계시는 분들 이렇게 보면 사실은 그 몸짓 하나하나가 다 말이거든요. 눈물도 말이고 그리고 침묵도 말이고 그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한 세계가 다 말이고. 그런 것 보는 건 저에게도 굉장한 희열이고 기쁨이고 그리고 묘한 해방감 같은 게 있고요. 그리고 굉장히 짜릿한 연대감 같은 거 있고요. 그런 것 서로 확인하는 일은 정말로 행복한 일이에요.
◇ 정관용> 천생 광대시군요. 사람들 많은 곳, 무대 위. 가면 기분 좋아지는.
◆ 김제동> 그런데 갈 때는 귀찮더라고요. 아시죠, 이렇게?
◇ 정관용> 그래도 일단 딱 서면. . .
◆ 김제동> 서면, 서면. 왜 작두 위에. 잘하면 작두 위에도 설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느낌이 가끔. . .
◇ 정관용> 그러니까요.
◆ 김제동> 들 정도로, 좋아요.
- 故 신영복 선생, 촛불을 든 시민들의 아랫목이 되어주었을 것
◇ 정관용> 오늘 모신 게 신영복 선생의 제자 한 분으로 오늘 모셨는데. 직접 수업을 들으셨죠?
◆ 김제동> 네, 선생님 수업, 고전수업 들었어요.
◇ 정관용> 학점은 잘 나왔어요?
◆ 김제동> 학점. . . 선생님께서 잘 안 주셨어요. 잘 안 주셨는데.
◇ 정관용> 수업은 열심히 들어갔습니까?
◆ 김제동> 선생님은 저 잘 봐주셨어요. 수업 열심히 들어갔다기보다 수업에 들어간 학생들 술 열심히 사줬어요. 술 열심히 사주고. 거기 뒷동산 있거든요. 거기 가고 그다음에 선생님이 요청하시는 다른 외부강연 같은 거. 거기 가서 또 같이하기도 하고 많이 그랬어요.
◇ 정관용> 그 학교에 편입하신 건데, 그 전부터 신영복 선생님 알고 계셨죠?
◆ 김제동> 네. 선생님 알고 있었죠. 책으로. 엄청 뵙고 싶어서 어떻게 하면 선생님 가까이에서 뵐 수 있을까 해서 그 학교에 또 편입하게 된 거고.
◇ 정관용> 일부러 찾아가서 뵙고.
◆ 김제동> 네.
◇ 정관용> 벌써 1년 됐습니다, 돌아가신 지. 선생님이 지금 계시면 요즘에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그리고 대통령 탄핵 그리고 광화문 촛불혁명. 이런 모습을 보시고 뭐라고 하셨을 것 같아요?
◆ 김제동> 선생님 거의 남의 탓 하시는 거 제가 본 적 한 번도. . . 제가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감옥에 가게 되신 일에 대해서도 그렇게 만들게 된 책임자에 대해서 얘기하신 걸 제가 거의 들은 적이 없어요.
지금도 이렇게 선생님 찾아 뵈었으면 그냥 조용히 웃으시면서 되게 많이 들어주셨을 것 같아요, 저희들이 막 이야기를 쏟아내면,막 쏟아내면. 그런 거 생각하면 가끔씩 울컥울컥해요. 그래서. . .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가 이렇게 감히 잘 여쭤보지도 못했지만. ‘선생님은 말씀 안 하세요?’하고 물으면 선생님은 ‘다 하셨잖아요.’ 하시는 거예요.
◇ 정관용> ‘여러분이 얘기 다 했잖아요.’, ‘똑같은 마음입니다.’
◆ 김제동> 늘 그렇게, 그렇게 말씀해 주셨던 게 가장 큰 말씀으로 저는 기억에 남아요. 저는 그런 모습이 늘 답이었거든요.
◇ 정관용> 신영복 선생 계셨으면 광화문 그리고 전국의 촛불시민들의 그 모습.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선생께서도 놀라셨을 것 같아요.
◆ 김제동> 제가 감히 선생님이 살아계신다면 어떤 마음을 가지실지에 대해서 말씀드리는 게 제가 좀 조심스러워서 그런데요. 그래도 엄청 기뻐하시고, 또 좋아하시고... ‘봐라, 우리 이 정도 수준의 사람이 아니냐. 이 정도 수준의 사람들 아니냐. 우리가 이런 사람들 아니냐.‘하셨을 것 같고. 그러면서도 늘 유머도 있으셨기 때문에요. 그리고 아마 글씨도 또 하나 쓰셨을 거고.
◇ 정관용> 그러셨겠죠.
◆ 김제동> 글씨 그림처럼, 서화로요.
◇ 정관용> 그림과 글씨. 아마 촛불시민들을 여러 모습으로 그려내셨을 것 같아요.
◆ 김제동> 그러니까요, 그거.
◇ 정관용> 선생님께서도 매우 놀라시고 기뻐하고 흐뭇해하고 내가 뭔가 이분들한테 기록을 남겨야 되겠다. 이런 어떤 의무감도 가지셨을 것 같아요.
◆ 김제동> 네, 또 아마 글씨 쓰시고 그림 그리시고 편찮으셨겠지만 아마 그렇게 하셨을 것 같아요. 그렇게 조용히... 그러다가 우리가 지쳐서 선생님께 가면 우리가 자랑해도 들어주시고 원망해도 들어주시고 그러셨어요. 아마 그런 또 아랫목 같은 역할도 해 주시지 않으셨을까.
왜냐하면 또 분열될 수 있잖아요. 분열이라는 게 늘 나쁜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우리 혁명들이.. 듣고 계시는 청취자분들이 더 잘 아시겠지만 60년의 혁명도 그랬고. . .
◇ 정관용> 4. 19 직후에 5. 16이 왔고요. 87년 이후에 노태우 당선이 왔고요.
◆ 김제동> 네, 그리고 서울의 봄 이후에 전두환이 왔고요.
◇ 정관용> 그렇죠.
-시민들이 가꾼 열매를 개가 와서 따먹지 않게 하는 법, 교학상장(敎學相長)
◆ 김제동> 그러니까 그렇게 해서 사실은 다 시민이 만들어놓은 열매를 개들이 와서 따 먹었거든요. 표현이 좀 과격하지만 더 과격한 표현을 찾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그렇게 되지 말자’라고 하는 게 지금 우리 시민들의 생각이라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해요.
그리고 또 지금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데 대해서 아마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시지 않으셨을까. 선생님 늘 그러셨거든요. 선생님 글씨에도 나와 있지만 교학상장(敎學相長). 가르치고 배우며 서로 함께 성장한다.
◇ 정관용> 서로 가르치며 배운다.
◆ 김제동> 그리고 제가 정확히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낮추는 것이고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나아갔을 때는 배우는 사람과 가르치는 사람의 경계가 없어지는 것이 진짜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셨는데요. 아마 그걸 또 몸소 보여주지 않으셨을까. 그래서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 늘 뭔가 가르침을 받는다 이런 느낌이 들지 않았어요.
기본적으로 가르침을 받고 싶기는 한데 우리가 뭔가 멘토 열풍 이런 거 있을 때도 왜 배워야 된다. 우리는 배워야 될 사람들이다. 우리는 모자란 사람들이다. 우리는 부족한 사람들이다. 지금 사실은 미디어나 그런 것들이 저는 그렇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한 사람이 얘기하면 대중은 우매해서 배워야 하는 존재들이고 광장에서도 가끔 어떤 정치인이 막 얘기를 하면 우리는 그걸 듣고 선택해야 되는 존재고.
◇ 정관용>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 김제동> 끌려가는 존재이고.
◇ 정관용> 아까 강조하셨던 그 대목이죠.
◆ 김제동> 그런데 그게 아니고 사람들은 그런 존재가 아니거든요. 전문가는 조금 깊이 알지만 모든 사람은 모든 것을 알잖아요. 그래서 아마 사람들이 모두 말할 수 있도록 또 그런 길들을 함께 고민하면서 배우고 가르치는 것의 경계를 없애는. . .
◇ 정관용> 허물어버리는.
◆ 김제동> 허물어버리는. 그래서 진짜 사람들의 시대를 여는. 거기서 일어나는 갈등을 잘 들어주시는 그런 역할을 하시지 않으셨을까 그런 생각 들어요.
◇ 정관용> 이렇게 품어주시는, 다 들어주시는 이런 게 어떤 어른의 모습이잖아요. 우리 시대에 지금 어른이 없다, 이런 얘기 주로 하지 않습니까?
◆ 김제동> 앞에 앉아 계시는데 왜요.
◇ 정관용> 왜 그러세요.
◆ 김제동> 정말로. . .
◇ 정관용> 그러니까 정말 신영복 선생님 같으신 그런 어른들. 모두가 좀 그래, 저분은 존중할 수밖에 없어 이런. 정파와 이념과 이런 걸 떠나서 그런 모습을 보여주시는 어른. 참 그런 어른이 많아야 좋은 사회죠, 사실은.
◆ 김제동> 제가 거기 얘기할 수 있는 자격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어른이 그리운 건 틀림없어요.
◇ 정관용> 그러니까요.
◆ 김제동> 저희들 제 또래만 해도 아직 기댈 어른들이 필요한 세대거든요. 그런데 흔히 말하는 꼰대처럼 그런 게 아니고 야, 이쪽으로 가, 저쪽으로 가, 선택해 이것이 아니고 뭘 하고 싶은데.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요. 그래? 그러면 아무것도 하지 마. 괜찮아. 선생님이 저한테 해 주셨던 말씀 중에 그런 거 있었어요. 사람은 생각하는 시간이 중요하고 그다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시간이 더 중요하고. 또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아무것도 생각해야 될까 말아야 될까조차도 생각하지 않는 시간.
그걸 요즘 말로 하면 선생님이 그렇게 직접 말씀하셨어요. 멍때리는 시간이 제일 중요하다. 그것만큼 행복한 시간이 없다. 자꾸 배우려고 하지 않아도 되고 멍때려도 된다. 제가 한번 여쭤봤어요. 그래서 아마 제가 쓴 책에도 이렇게 선생님하고 에피소드 적어놨는데요. 오늘은 선생님 얘기하는 거니까 이렇게 길게 얘기해도 되죠?
◇ 정관용> 네, 말씀하세요.
◆ 김제동> 선생님 얘기는.
◇ 정관용> 함께 우리 그리워하고 함께 눈 촉촉해지더라도 마음껏 얘기하세요.
◆ 김제동> 네, 그래서. 선생님께서 그러셨어요. 그래서 선생님도 멍때리는 시간이 있으세요? 왜냐하면 없으실 것 같잖아요. 맨날 글씨 쓰시고 반듯하시고 그러시니까.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그럼요.‘하시는거죠. 그래서 ‘어떻게 멍때리세요?’ 물었더니, 감옥에 있을 때도 왜 신문지 한 장만한 창에서 들어오는 그 햇빛 때문에. . .
◇ 정관용> 그 정도 크기의 창.
◆ 김제동> 사셨다 그러셨잖아요. 그 햇볕이 커졌다가.
◇ 정관용> 작아졌다가.
◆ 김제동> 작아졌다가 하는 그걸로 견디셨다고 그러셨는데 그 햇볕을 이렇게 보시면서 속눈썹 사이로 무지개를 만드는 시간이 당신께서는 그렇게 행복하시다고. 우리 왜 알잖아요. 햇볕 이렇게 쫙 보면 이렇게 해서 왜 눈 가늘게 뜨고 보면 무지갯빛 막 이렇게. . .
◇ 정관용> 알겠어요, 알겠어요.
◇ 정관용> 속눈썹 사이로 무지개를 보는...
◆ 김제동> 무지개를 ‘만드는’ 시간. 원래 없는데 속눈썹 사이로 만드는 시간이잖아요. 그러니까 ‘만든다’ 그 표현이 저는 아직도 되게 기억에 남아요. 그래서 그렇게 멍때리는 것도 괜찮다고 얘기해 주시는 어른, 그런 어른이 돼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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