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원 "맨부커 축전거부? 내 딸 한강 그저 웃더라"

- 딸 한강, 靑서 불러도 안 가려했다
- 朴, 문학 알았으면 서민 삶도 배웠을 것
- 박정희 독재 시절 악마의 뿌리 잔재
- 5.18 소재만으로 리스트에? 그 자체가 폭력
- 내 딸, 블랙리스트로 한번 더 날 뛰어넘어
- 촛불이 혼돈 잡아주는 안내자 역할했다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한승원(작가, 소설가 한강의 아버지)



소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 씨. 이 한강 작가도 5.18을 다룬 소설을 집필했다는 이유로 문화계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랐다는 사실, 이거는 이미 알려졌죠. 그런데 어제 또 하나 기막힌 사실이 전해졌습니다. 한강 작가가 맨부커상을 수상했을 그 당시 한강 작가에게 축전을 하나 보내는 게 어떻겠느냐 문체부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제안을 했지만, 이 제안을 대통령이 거부했단 겁니다.

이건 특검의 조사 결과 드러난 사실입니다. 글쎄요.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분은 과연 이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한강 작가의 부친이자 <아제아제 바라아제>, <추사>, <다산> 이런 소설들을 집필한 한국 문단의 대원로죠. 한승원 작가 연결이 돼 있습니다. 한승원 선생님, 안녕하세요.

◆ 한승원> 네, 안녕하세요.

◇ 김현정> 그러니까 이게 쇼팽 콩쿠르 수상자라든지 세계적인 건축상 수상자 또 올림픽 메달리스트 이런 사람들한테 빠지지 않고 보내던 게 대통령 축전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한강 작가한테도 당연히 보낸 줄 알았는데 그 당시에 이거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 못하셨어요, 왜 이게 안 오나 하고?

◆ 한승원> 아니,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요. 대통령이 축전 안 보내주기를 잘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 김현정> 받았으면 돌려보내시려고 그랬어요?

◆ 한승원> 왜냐하면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문화융성 어쩌고 저쩌고 하고 체육관 지어주고 무슨 스포츠재단 만들고 그랬잖아요. 그렇게 요란을 떠는 것보다, 서점에 가서 소설가나 시인들 시집 한 권, 소설책 한 권 사주는 것이 훨씬 더 좋은 행사거든요. 그런데 우리 대통령 집에는 서재가 없다고 들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뜻있는, 그러니까 의식을 가지고 있는 그런 문화인들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는 그런 짓거리를 하는 거죠.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진상규명 예술행동 및 기자회견'에서 참석한 예술가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 김현정> 책으로 좀 박 대통령이 교양을 쌓았으면, 이런 일까진 벌어지지 않았을 거다 그 생각 드세요?

◆ 한승원> 그렇죠. 문학이라는 게 우리 사람의 소양을 만드는 거잖아요. 그런데 문학을 읽지 않는 판검사, 문학을 읽지 않는 장관이라든지 대통령들은 서민들의 삶을 몰라요.

◇ 김현정> 서민의 삶을 모른다?

◆ 한승원> 서민들의 삶을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좋은 통치를 하겠습니까.

◇ 김현정> 그러네요, 그러네요.

◆ 한승원> 그러니까 그런 지도자를 만난 게 우리 국민들에게는 대단히 불행한 거죠.

◇ 김현정> 그래요. 전여옥 의원이 사실은 그 얘기를 했어요. 서재에 책이 없다, 있기는 있는데 너무 없어서 없는 거나 다름없다, 이런 얘기를 했었는데 아마 그 말씀 하시나 봐요. 그런데 한 선생님, 말씀하신 것처럼 '축전 안 받는 게 낫다. 안 보내서 다행이다' 그 당시 생각은 하셨다지만 이제 와서 막상 그 이유가 대통령이 꺼려서, 그러니까 문체부가 이거는 보내셔야 됩니다, 제안했는데 애써 거부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좀 기막히다는 생각은 안 하셨어요?

◆ 한승원> 아이고, 잘됐다 그랬죠. 저는 맨부커상 받고 딸이 집에 왔을 때 제가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혹시 대통령이 점심 대접하겠다고 청와대로 부르면 절대로 가지 말라고 그랬어요. 그런 사람들하고 이야기해서 무엇을 하겠어요. 그러니까 딸이 그러더라고요. 그러지 않아도 안 가려고 했으니까 염려 마시라고 그러더라고.

◇ 김현정> 그때는 국정농단 이런 거 벌어지기 전인데요?

◆ 한승원> 훨씬 전이죠.

◇ 김현정> 그렇죠. 그런데 그때도 말 섞는 것조차 아니라고 생각하셨어요?

◆ 한승원> 그 문학이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거에요. 문학을 잘 아는 의사, 문학을 잘 아는 판검사, 문학을 아는 기업인들이 많아야 그 나라가 진짜로 융성할 수 있고 그런 거예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대표할 만한 사람들이 청와대에 모여 있잖아요. 끼리끼리 모이는 거니까요. 그 문학인들이야말로 다들 취해 있지만, 깨어 있는 사람들이어서 순수한 시를 많이 쓰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를 할 때는 시인이나 소설가들이 앞장서서 자유실천문인협회를 조성해 가지고 저항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때 중앙정보부에서는 무슨 일을 했느냐 하면, 저항하는 시인, 소설가들의 명단을 이제 카드를 다 만들어서 활동내역들, 작품 발표한 것들을 일일이 전부 다 그 카드에 작성해가지고, 자기들 눈에 심하다 싶으면 남산으로 불러들여서 혼내주고 감옥살이도 시키고 그랬어요.

◇ 김현정> 그렇죠. 그건 벌써 70년대 일 아닙니까, 70년대 일?

◆ 한승원> 그런데 그러한 악마의 뿌리가 지금도 남아 있다는 것이 문제라는 거죠.

한승원 작가 (사진=불광출판사 제공)
◇ 김현정> 그때 그 악마의 뿌리가 남아 있다는 말씀. 그나저나 선생님, 한강 작가가 왜 블랙리스트에 올랐는가 이걸 따져보니까 5.18을 다룬 소설이죠. 예전에 썼던 '소년이 온다'라는 소설 그게 이유가 됐다는 거예요.

◆ 한승원> 제 딸 소설은, '채식주의자'라든지 '소년이 온다'라든지 이런 소설들은 우리 인생들에게 어떤 폭력에 대한, 그런 질문을 하는 소설이거든요.

◇ 김현정> 그렇죠, 그렇죠.

◆ 한승원> 아주 그윽한 소설이거든요. 그런데 다만 5.18 역사에서 소재를 가져왔다는 그 이유만으로 해서, 블랙리스트 만들어가지고 그렇게 다스리려고 해서 되겠어요? 제가 다스린다는 말을 썼는데 그것은 다스리는 것이 아니고 그 자체가 하나의 폭력인 것이죠.

◇ 김현정> 폭력이죠, 그렇죠. 폭력이죠. 한강 작가도 이 얘기를 당연히 들었겠죠? 5.18 소재로 한 '소년이 온다' 때문에 블랙리스트 올랐다더라, 대통령이 그것 때문에 축전도 거부했다더라 이 얘기 듣고는 뭐라고 합니까?

◆ 한승원> (웃음) 그걸 알고 있더라고요.

◇ 김현정> 알고 있죠?

◆ 한승원> 네, 통화를 했는데 그냥 웃기만 하더라고요.

◇ 김현정> 웃음이 기분 좋은 웃음은 아니었을 테고 기막힌 웃음이었겠죠.

◆ 한승원> 오히려 블랙리스트에 들어간 것을 우리 문인들은 영광스럽게 생각하는데, 딸은 블랙리스트에 들어갔는데 아비는 블랙리스트에 들어가지 않아서 저는 좀 부끄럽습니다.

◇ 김현정> 오히려 블랙리스트에 들어간 게 훈장이 되어야 할 판인데 못 들어가서 부끄러우세요? 작품활동 더 열심히 했어야 됐는데 싶으세요? (웃음)

◆ 한승원> (웃음) 대부분의 사람들이 블랙리스트에 들어간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니까 오히려 정부가 역설적으로 훈장을 달아준 셈입니다.

◇ 김현정> 그러니까요. 지난번 맨부커상 수상하자마자 저희가 한 선생님하고 인터뷰했을 때, 내 딸이 진즉에 나를 넘어섰다 이러셨잖아요. 이거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도 진즉에 딸이 넘어섰네요? (웃음)

◆ 한승원> (웃음) 그렇습니다.

◇ 김현정> 우리가 이렇게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이 현실이 얼마나 비극적인 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 한승원> 웃어야죠.

◇ 김현정> 웃어야죠, 뭐 어떻게 하겠습니까? 웃으면서 희망을 얘기해야겠죠. 그런데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안 가는 것이 이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처음에 어떻게 시작됐나 그 출발점, 어떻게 시작이 됐는가 따져보니 이유가 세월호 참사였다는 거예요. 2014년에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문화예술인들 활동이 막 이어졌어요, 이렇게 저렇게. 그 활동을 막아보자고 시작이 된 게 작성이 되기 시작한 게 바로 이 문화계 블랙리스트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걸 추모한다고 해서 그게 블랙리스트에 오를 문제인지 저는 모르겠어요.

◆ 한승원> 아마 그런 일들을 잘 못한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은 있었던가 보죠. 그러니까 그 아픈 곳을 늘 찌르니까 싫어하게 되고 아마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소설가 한강. (사진=자료사진)
◇ 김현정> 제대로 국민들 구조해내지 못한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 찔림이 있으니까 추모활동하는 건데 그게 그렇게 찔려가지고 그걸 막아보겠다고 블랙리스트 만든 게 아니냐, 그런 말씀이세요.

◆ 한승원> 그런데 그 사람들은 거짓말을 많이 하더라고요.


◇ 김현정> 무슨 말씀이세요?

◆ 한승원> 팽목항까지 찾아가가지고 자기가 언제든지 유족들 만나주겠다고 해놓고 나중에는 유족들이 만나달라고 하고 청와대 앞에서 농성하고 그래도 그 앞에 지나다니면서도 안 만나주고 그랬잖아요, 끝까지. 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의 어떤 양심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가 하고 의심이 갈 정도에요. 그러니까 만약에 젊어서 문학 공부를 했으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거다, 저는 그런 생각이에요.

◇ 김현정> 박근혜 대통령 요즘은 직무가 정지된 상태니까 시간이 많으실 텐데 그분에게 이 책 한번 읽어봐라 권해 주고 싶은 책 혹시 떠오르는 거 있으세요?

◆ 한승원> 일단 '소년이 온다'부터 좀 읽고 '채식주의자'도 좀 읽고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 김현정> '소년이 온다', 도대체 이게 뭐가 문제인지 읽고 판단해 봐라, 시대를 좀 깨달아봐라 이런 말씀?

◆ 한승원> 그렇죠.

◇ 김현정> 알겠습니다. 한강 작가가 사실은 맨부커상 타고 우리 문학의 다시 부흥기를 이끈, 지난해가 굉장히 기분 좋은 해였는데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르내렸다고 하고 이러면서 요새 안 좋은 뉴스에 이름 오르내리니까 조금 마음이 상했을 수도 있어요. 아버지로서, 딸에게 한 말씀해 주신다면요?

◆ 한승원> 마음 상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좋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블랙리스트에 '소년이 온다' 때문에 오르고 그랬다니까 책이 한 권이라도 더 팔리지 않겠어요? (웃음) 그 책이 무슨 책인가 하고. 그러니까 영광스러운 일이죠.

◇ 김현정> 영광스러운 일로? 그러면 대통령이 좋은 일한 거네요, 결국은 문학에 역설적으로?

◆ 한승원> 네. 딸은 조용한 성품이어서 시끄럽게 떠들면 숨어서 살고, 숨어서 소설만 쓰는 딸이에요. 그래서 이러저러한 계기들이 더욱더 좋은 소설을 쓰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서 저는 안심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들이 일어날수록 냉정해지는 아이예요.

◇ 김현정> 그래요. 지금 본인의 이름이 뉴스에 오르내리고 시끌시끌할 때, 오히려 지금 어딘가에서 열심히 글 쓰고 있겠군요, 이 모든 것을 바탕으로?

◆ 한승원> 그러겠죠. 그런데 제 딸과 같은 그런 성품이 우리 국민 전체에게 있어요. 우리 국민 전체들이 평소에는 그렇지 않다가 어려운 일을 당하면 냉정해지는 것이 우리 국민들이에요.

◇ 김현정> 그렇죠, 맞습니다.

◆ 한승원>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런 얘기를 합니다. 지금 이러저러한 일로 해서 카오스 현상, 혼돈현상이 일어나 있는데 촛불들이 나서서 잡아주는, 코스모스로 가는 안내 역할을 하잖아요.

◇ 김현정> 촛불이, 맞아요. 맞습니다.

◆ 한승원>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 김현정> 좋은 말씀 감사드리고요. 지금 어딘가에서 냉정하게 열심히 쓰고 있다는 한강 작가의 그 다음 작품, 그 작품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오늘 한승원 선생님 귀한 말씀 고맙습니다.

◆ 한승원> 예, 감사합니다.

◇ 김현정> 우리 문단의 대원로시죠. 한승원 작가, 한강 씨의 아버지 한승원 작가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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