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치유재단 설립 전 지난해 1월부터 수도없이 방문
-감언이설, 회유, 정부 입장만 주입시켜
-김태현 이사장 등 7~8명 가족에 알리지도 않고 병실에 몰려와
-"1억 받으라"…충격받은 할머니 발작에 정신착란, 돌아가시는 줄
-반인권적 작태 자행…피해국 정부가 피해자 명예 구렁텅이로 처박아
-인지능력 떨어지는 할머니 상대로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회유했을 것
■방송: 경남 CBS<시사포커스 경남> (창원 FM 106.9MHz, 진주 94.1MHz)
■제작: 손성경 PD, 김현욱, 김미나 실습생
■진행: 김효영 기자(경남CBS 보도국장)
■대담: 송도자 대표(일본군 위안부와 함께하는 통영거제시민모임)
<나를 잊지 마세요>란 회고록을 펴내 참혹했던 할머니들의 현실을 전세계에 알린 분이시죠.
그런데 한일 위안부 합의 후, 김복득 할머니에게 많은 일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들어보죠.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통영·거제 시민모임'의 송도자 대표 만나보겠습니다. 송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송도자 : 네, 안녕하십니까?
◇김효영 : 김복득 할머니 지금 건강 상태는 어떠십니까?
◆송도자 : 몇 번의 고비가 있었어요, 2년 전부터. 지금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시는데 작년 가을부터 건강이 많이 회복되셨고요. 저희가 가슴을 졸인 것이 한두 번이 아닌데, 하늘이 도와주시는지 할머니의 간절함이 건강을 회복시켜주지 않았나 생각이 들고요. 지금은 보행은 불가능하시지만 식사는 비교적 잘 하시고 말씀도 잘 하시고요. 지금 상태로는 좋습니다.
◆송도자 : 네. 맞습니다.
◇김효영 : 그리고 고향 통영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중국에 끌려 간 것이 1937년 맞죠? 그러니까 18살, 19살 즈음에 끌려 간 겁니다. 할머니께서 그때 당시를 기억을 하시죠?
◆송도자 : 정확히 기억을 하고 계시죠.
◇김효영 : 당시 상황에 대해 할머니께서 하신 말씀, 기억나시는 대로 알려주신다면요?
◆송도자 : 네. 할머니 고모네 집이 거제에 있는데 고모네 집에 가기위해 강구안에 나오셨대요. 그래서 배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한 남자가 다가와서 '좋은 곳에 취직 시켜주겠다 돈 많이 벌게 해준다'고 가자고 얘기를 했나 봐요. 그래서 할머니가 자기는 엄마한테 얘기도 안 하고 왔고, 고모 집에 간다면서 나왔는데, 엄마한테 얘기도 안했다고 안가겠다고 거부를 하니까, 남자가 끌고 배에 태워서 부산으로 가 중국, 필리핀으로 가게 됐다고 말씀하셨어요.
◇김효영 : "나 안 갈 거에요"라고 했는데 끌고 갔다는 말씀이에요?
◆송도자 : 네. 그렇죠. 일종의 유괴죠.
◆송도자 : 당시에 모집업자로 추측이 되는데요. 그 분이 아마 동네 아는 분이었나 봐요.
◇김효영 : 아는 분….
◆송도자 : 좋은 공장에 취직시켜준다고 돈 많이 벌게 해준다고 했으니까.
◇김효영 : 그런데 강제로 배를 태워서 부산으로 끌고 가서 중국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군요.
◇김효영 : 할머니께서 한일간 위안부협상이나, 최근 들려오는 뉴스를 알고 계십니까?
◆송도자 : 지금 최근 상황은 잘 모르시는데 2015년 12월 28일 합의 건에 대해서는 저희가 작년 1월에 할머니와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할머니는 사전 논의나 동의 등 사전 협의 과정이 없었다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말씀을 하셨죠. "나도 모르는데 협상을 하느냐, 그렇기 때문에 이 협상은 아니다"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 수용 거부라는 입장을 표명하셨던 것이죠.
◇김효영 : 정부 차원에서 김복득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서 접촉을 시도하거나 한 적은 없었습니까?
◆송도자 : 상당히 많이 왔습니다.
◇김효영 : 통영거제 시민모임을 통해서 왔습니까?
◆송도자 : 아닙니다. 저희는 철저히 배제된 상태에서 할머니와 조카분, 가족을 집중 공략을 한 것이죠. 작년 화해치유재단 설립 전부터, 1월부터 많은 방문이 있었고요. 정부가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감언이설, 회유, 사실과 다른 일방적으로 정부 입장만을 주입시키는 등 비열한 후안무치하게 자행을 자행 했어요. 저희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돈 봉투를 흔들면서, 10억 엔이라는 것이 위로금이라고 분명히 일본정부가 외무성에 얘기를 했구요. 아베가 이것은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얘기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일협상이라는 것이 1965년에 위안부 문제 배상이 끝났다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야기했습니다. 때문에 이 합의금이라는 것은 위로금 수준인데, 피해자들에게 호도해서…. 피해자들이 나이 든 상황인데 주변의 가족들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은데, 1억을 준다면 어느 피해자가 안 받겠습니까?
◇김효영: 1억을 준다면?
◆송도자: 네.
◇김효영: 1억을 주겠다고 돈봉투를 흔든 것입니까?
◆송도자: 그렇죠.
◇김효영: 병실에 찾아와서?
◆송도자: 그렇죠. 봉투를 들고 왔던 것은 아니지만, 봉투를 흔들었다는 것은 화해치유재단 설립 당시에 그 때 기자회견장에 피해자들에게 오면 주겠다고 얘기를 한 것이죠.
◇김효영: 그러니까 김복득 할머니가 입원해 계신 병실에 와서 돈 1억을 드리겠다고 회유를 했다는 것입니까?
◆송도자: 네. 수없이 했습니다. 저희는 당연히 반대를 하니까, 피해자가 인지상태가 지금 100세 아니겠습니까? 당시 99세였는데, 피해자가 인지를 못하는 상황에서 위안부문제에 대한 본질을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를 회유하고 돈으로 소위 매수하려 하는 것들이 굉장히 자행이 됐구요. 전국의 누워계신 피해자를 상대로 한국정부가 자행을 한 것입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합의에 대한 정당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 대략 20명의 피해자가 위로금을 받았다고 발표를 하기도 했는데, 그 과정에는 이렇게 비열한 작태가 자행됐던 것이고요. 도저히 피해국 정부로서 자국의 피해자에게 이렇게 반인권적으로, 후안무치한 행동을 할 수는 없습니다.
◇김효영: 할머니께서 한일합의에 대해 '이것은 아니지 그러면 안되지 나는 NO다'라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송도자: 그렇죠.
◇김효영: 그럼에도 끊임없이 병실로 찾아와서 수용하라고 회유를 했던 것이군요. 돈으로.
◆송도자: 그 뿐만 아니라 봄 혹은 여름 즈음이었는데, 화해치유재단 관계자 7~8명이 내려와서 병실에 둘러서서 남성분들 여성분들 다 내려와서, 이사장까지 다 와서, 다 둘러서서 얘기를 했던 거죠. '받아라. 돈 1억 준다 받아라' 이렇게 이야기하니깐 할머니는 아무것도 모르는거죠. 굉장히 당황하는거죠. 그래서 화해치유재단 관계자들이 돌아간 그날 밤에 할머니가 정신적으로 착란 증세를 일어나서, 밤새도록 그러다가 새벽에 의식을 잃으셨어요.
◇김효영: 세상에….
◆송도자: 아침일찍 응급실로 급하게 이송을 하고 눈도 못 뜨신 상태였어요. 정말 저희는 그 때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줄 알았거든요. 그 정도로 이 분들이 그런 파렴치한 짓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반인권적인 작태를 자행하면서.
어떻게 이렇게 피해국인 대한민국 정부가 80년 넘는 세월을 고통 속에서 살아온 피해자들에게 그 돈 봉투를 딸랑이면서 피해들을 왜곡하고, 피해자들의 명예를 처참하게 짓밟으면서 구렁텅이로 쳐박을 수 있을 수 있습니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김효영: 그 날 할머니께서 충격을 받으셨나봐요.
◆송도자: 네. 간병사의 말에 의하면 시커멓게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갑자기 와서 이 얘기 저 얘기 하니까, 할머니께서 트라우마를 일으키면서 갑자기 발작 증세를 일으켰다고 합니다.
◇김효영: 발작증세까지.
◆송도자: 가끔씩 그러시거든요. 그 날 밤에는 너무 충격을 받으셔서 시커먼 사람들이 와서 얘기하니까 충격을 받아서 혼란이 왔나봐요. 과거의 기억들과 섞이면서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으셔서 의식불명이 되셨던 것입니다.
◇김효영: 아니, 옆에 있던 가족들이 말리지는 않았나요?
◆송도자: 평상시에는 가족이 없고 간병사들이 24시간 같이 지내시고 있고요.
◇김효영: 가족들에게 아무 연락도 없이?
◆송도자: 네. 모르는 상태에서 연락도 없이 일방적으로 온 것이죠.
◇김효영: 그 부분에 대해 항의는 해보셨습니까?
◆송도자: 당시에 할머니 건강이 위험한 상태였기 때문에 저도 경황이 없었고요. 그 이후에 언론에 이것을 보도해서 문제를 공개하려고 했지만 여러 가지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넘어갔었는데, 그 때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지금도 이런 회유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김효영: 치유재단이사장도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하셨죠?
◆송도자: 네. 같이 왔습니다.
◇김효영: 그러니까 김태현 이사장도 왔고, 치유재단에서 7~8명 검은양복 입은 직원들이 와서?
◆송도자: 여성분하고, 남성분하고 왔겠죠.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피해자 할머니 입장에서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니까, 그 상황 자체를 너무 힘들어하셨습니다.
◇김효영: 정리하자면 작년 봄, 여름 즈음에.
◆송도자: 네.
◇김효영: 화해치유재단의 김태현 이사장을 비롯한 직원 7~8명이 가족에게 연락도 없이 병실에 찾아와서 오랫동안 할머니를 돈으로 회유했다.
그리고 할머니께서 정신적으로 혼동과 충격을 받으셔서 의식을 잃기도 했었다.
◆송도자: 의식불명까지 왔었죠.
◇김효영: 생명의 위독함을 느낄 정도였다. 이런 말씀이세요.
◆송도자: 네.
◇김효영: 그리고, 김복득 할머니와 같이 이런 식의 회유를 당하신 할머니들이 많다고 보는 것이고요?
◆송도자: 저희는 대부분이라고 보여지구요. 이런 방식으로 회유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피해자들이 인지능력이 상당히 떨어지는 상황에서 어려운 가족들 감언이설로 피해자들을 꼬드기니까 피해자들이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것,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피해국인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올바른 길인가, 명예회복을 원하는 피해자에게 정부가 할 일인지 묻고 싶습니다.
◆송도자: 가능하면 안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이후에 모든 언론 인터뷰는 진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김효영: 알겠습니다. 김복득 할머니, 주말에 100세 생신이신데. 어떻게 축하해 드릴 예정입니까?
◆송도자: 김복득 할머니라는 존재, 이 여성의 존재는 우리 경남지역의 위안부 운동사에서 구심점입니다.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시기 전까지 유일하게 공개증언 활동을 해오셨고요. 2007년 나고야 증언을 시작으로 국내외 증언 집회에서도 많은 얘기를 하셨고, 할머니께서 서툴지만 진지하게 절실한 목소리로 말씀을 해주셨죠. 그런 분위기 때문에 우리가 할머니의 목소리에 답하는 자리로 100세 생신 축하연을 마련하는 것이고요. 우리 각자의 재능으로 할머니께 축하를 드리려고 합니다. 서울에서도 축하팀이 연락이 오고, 내려오고 싶다고. 진주에서도 공연을 해주신다고 해서요. 많은 분의 마음을 모아서 신나고 재미있게 축하를 해드리고 싶어요.
◇김효영: 저희 방송국도 많이 축하드린다고 할머니께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대표님.
◆송도자: 네. 감사합니다.
◇김효영: 지금까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 하는 통영·거제 시민모임 송도자 대표 만나봤습니다.
화해치유재단 관련 반론보도문 |
노컷뉴스는 지난 1월 13일에 '일본군 위안부와 함께 하는 통영거제시민모임' 송도자 대표가 경남 CBS의 <시사포커스 경남>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인터뷰 했던 내용을 '화해치유재단 김태현, 병원 몰려와 일본이 준 돈 받으라' 제목의 기사로 게재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화해치유재단은 다음과 같이 반론 입장을 알려왔다. 송도자 대표는 인터뷰를 통해 '김태현 이사장 등 재단 직원 7~8명이 가족 동의도 없이 병실에 몰려와 할머니에게 1억을 받으라고 강요하였고, 99세 할머니가 그 충격에 의식을 잃었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그러나 화해치유재단은 "김태현 이사장이 할머니를 방문한 2016년 6월 15일은 재단 설립(2016.7.28 설립) 이전으로 당시 동석한 7~8명은 재단 직원이 아니라 해당 지자체 공무원 및 병원 관계자였다. 재단 이사장의 방문은 사전에 가족의 동의를 얻은 것으로, 면담은 주로 할머니의 건강상태 및 안부를 여쭙던 것이었다. 따라서 재단 이사장이 할머니에게 돈을 받으라고 강요 또는 회유한 적은 결단코 없다. 한편, 할머니가 재단 관계자의 방문으로 인해 정신착란 증세를 일으키고 의식을 잃고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주장은 확인되지 않는 사실이다"고 알려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