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노무현 조롱' 홍대 교수, 유족에게 위자료 줘라"

항소심, '노건호 패소' 1심 뒤집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고인에 대한 유족의 추모 감정 침해…학문의 자유로 정당화 안 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하는 듯한 표현을 담은 시험문제를 낸 홍익대 교수가 노 전 대통령 유족에게 위자료를 주라는 판결이 나왔다.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을 조소적으로 표현해 고인에 대한 유족들의 추모 감정을 침해했다는게 판단 이유다.

서울고법 민사32부(박형남 부장판사)는 노 전 대통령 아들 건호씨가 홍익대 법과대학 류모 교수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한 1심을 깨고 류 교수가 건호씨에게 5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13일 밝혔다.

류 교수는 2015년 6월 출제한 기말시험 영문 지문에서 "Roh(노)는 17세였고 지능지수는 69였다. 그는 6세때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려 뇌의 결함을 앓게 됐다. 노는 부모가 남겨준 집에서 형 '봉하대군'과 함께 살았다"는 내용을 제시, 노 전 대통령 비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건호씨는 "류 교수가 허위사실을 적시하고 모욕과 경멸이 담긴 인신공격을 해 노 전 대통령의 명예와 인격권을 침해했고 유족의 명예도 침해했다"며 1억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류 교수 측은 "수강생들의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시사적인 사건을 각색해 사례로 사용한 것에 불과하다"며 "학문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 내의 행위"라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류 교수의 주장을 받아들여 건호씨 청구를 기각했다.

2심 재판부도 고인이 된 노 전 대통령에겐 손해배상 채권이 없고, 류 교수의 행위로 건호씨 본인의 명예나 인격권이 침해된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다만 2심 재판부는 류 교수가 노 전 대통령의 투신 및 사망 사건을 조소적으로 비하해 표현함으로써 건호씨의 '추모 감정'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유족의 망인에 대한 추모 감정도 법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우선 "유족의 망인에 대한 추모 감정은 유족 삶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고, 그에 따라 삶의 질이 좌우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유족이 스스로 망인에 대한 추모 감정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는 권리는 행복 추구권에서 파생되는 권리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망인에 대한 추모 감정을 형성하고 유지함에 있어 외부로부터 부당한 침해를 당해 정신적 고통을 입는 것은 행복 추구권 실현을 방해받는 것이라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류 교수의 행위는 학문이나 표현의 자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문제의 문항은 '풍자'의 외관이지만, 실질 내용은 노 전 대통령이 죽음을 택한 방식을 차용해 희화화함으로써 투신 및 사망 사건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표현에 해당한다"며 "풍자가 요구하는 사회적 적절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재판부는 이 대목에서 사람은 누구나 '인간의 존엄성'에 기반해 본능적으로 '죽음 자체만은 존중하고, 존중받고 싶어하는 욕구'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죽은 자에 대해서는 예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재판부는 류 교수가 이 같은 문제를 내면서까지 얻을 수 있는 '학문적 이익'이 있다고 상정하기도 어렵다고 비판했다.

재판부는 "결국 류 교수는 자신의 행위로 인해 건호씨가 입은 정신적 고통을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위자료 액수에 대해선 "이 문항 내용은 일반인의 소박한 감정에 비춰 보더라도 유족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됨에도, 류 교수는 단 한 번도 건호씨에게 사과한 적이 없다"며 "다만 해당 시험문제가 제한된 수강생들에게만 배포된 점 등을 고려해 500만원으로 정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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