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행보의 배경에는 다목적 포석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높은 인지도에 비해 조직 기반이 없는 반 전 총장으로선 최대한 많은 정파를 자기 편으로 포섭하려 들 것으로 예상된다. 때문에 특정 당적을 갖는 시점은 최대한 늦출 공산이 크다.
본격적 정치행보를 지연시킴으로써 검증 기간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도 읽힌다. 반 전 총장 본인의 뇌물 수수 의혹, 친동생과 조카가 뇌물죄 혐의로 미국 검찰로부터 기소된 사건 등 숱한 검증 포인트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 귀국 일성은 "화합과 국민 통합"
이후 설 전까진 탈(脫)정치 행보가 계획돼 있다. 사당동 자택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이튿날 현충원 참배, 캠프 구성원들과의 상견례 등의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토요일인 오는 14일 고향인 충북 음성을 방문하는 것까지가 현재 확정된 일정이다.
반 전 총장 캠프의 이도운 대변인은 이후 일정에 대해 "국민의 의견을 많이 들어보려 한다"며 "서민과 취약 계층 청년들의 삶의 현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설 연휴까지는 이 같은 일정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치적 의미가 상당한 일정도 계획되고 있다. 이 대변인은 "팽목항도 당연 가야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도 그렇다"고 말했다. 여권 후보로 인식되고 있는 반 전 총장으로선 광폭행보인 셈이다.
◇ 정당 '기착지' 없이 '제3지대' 머물 듯
이같은 행보는 중도 내지 진보 쪽으로의 외연 확장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풀이된다. '보수 후보' 이미지에서 탈피해 새누리당과 바른정당 외에 국민의당과 민주당의 비문(非文‧비문재인) 세력까지 껴안으려 한다는 것이다.
반 전 총장 자신도 이른바 제3지대 '빅-텐트론(論)'의 핵심 연결고리인 개헌 필요성을 밝힌 바 있고, 유독 '통합' 메시지를 강조하는 것도 각 정파를 최대한 끌어모은 선거 연대를 노린 것이다.
현재까지 연대의 명분은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집권을 막겠다는 것 외에는 각 정파가 집결할 만큼의 뚜렷한 이유가 제시되지 않고 있다.
캠프 멤버인 곽승준 전 미래전략수석이 '따뜻한 경제'를 반 전 총장의 경제공약 기조로 표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측근인 곽 전 수석 합류는 '경제 좌클릭' 전략 외에도 반 전 총장 진용에 드리운 MB의 그림자를 의미한다.
◇ 반기문의 숙제…엄격해진 검증 잣대, 모호한 정체성
반 전 총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외교부 차관을 지냈고 참여정부에서는 청와대 외교안보 비서관에 이어 외교부 장관을 지냈다. 노무현 대통령의 외교정책에 깊숙히 관여했던 그가 보수적 외교정책을 펼 경우 일관성 결여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경제 정책을 개혁적으로 추진하겠다면서 캠프 멤버를 MB 측근들로 채운 점도 논란거리다. 캠프 지원그룹의 정진석 의원을 비롯해 홍보총괄 파트의 곽 전 수석과 김두우 전 청와대 정무수석, 여의도 별도 캠프의 이동관 전 홍보수석과 최형두 전 홍보비서관 등이 MB 청와대 비서실 멤버들이다.
최순실 게이트의 여파로 검증 잣대가 엄격해진 점도 반 전 총장이 넘어서야 할 관문이다. 반 전 총장 자신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23만 달러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동생인 반기상 씨와 조카 주현 씨가 기소된 고(故)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베트남 건물 매각 과정도 반 전 총장의 개입 여부로 불길이 번질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