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소 수감 중 거의 매일 특검 조사를 받은 장씨는 지난 5일 한 대의 태블릿PC를 특검에 추가로 제출했다.
해당 태블릿PC는 최씨가 지난 2015년 7월부터 11월까지 사용한 것으로 독일 법인 코레스포츠(비덱스포츠의 전신) 설립과 삼성그룹의 지원금 수수 전반을 알 수 있는 이메일들이 다수 담겨있다.
종합편성채널 JTBC가 청와대의 각종 자료가 담겼다며 보도한 태블릿PC와 별개의 것으로, 특검이 삼성그룹 경영진과 최씨에게 뇌물죄를 적용하는 결정적 단서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동안 최씨는 "태블릿PC를 사용할 줄 모른다"고 수차례 밝혔지만 제2의 태블릿PC가 등장하면서 최씨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됐다.
이처럼 조카 장씨가 최씨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 자료를 제출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전형적인 '죄수의 딜레마'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죄수의 딜레마란 범죄 용의자 2명을 격리해 심문할 때 상호 의사소통이나 협조가 불가능해 결국 무거운 벌을 피하려고 상대방의 범죄 행위를 포함한 모든 것을 자백한다는 일종의 게임 이론이다.
장씨가 추가 태블릿PC를 제출하기 이틀 전인 지난 3일 이규철 특검보는 브리핑을 통해 "자세히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장시호의 경우 약간의 변화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최씨와의 공모는 물론 범죄 혐의를 인정하지 않던 장씨가 진술 태도에 변화를 보인다는 설명이었다.
장씨는 최씨,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과 공모해 자신이 운영하는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삼성전자가 16억2800만원을 후원하게 압박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강요) 등을 받고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장씨측 변호인은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와 강요 부분은 모두 인정한다"고 밝혔다.
최씨측 변호인이 "김종 전 차관에게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도움을 달라고 요청한 적은 있지만 특정 기업을 지목해 후원금을 받아달라고 한 적은 없다"고 주장하며 혐의를 부인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결국 장씨는 자신의 혐의는 일정 부분 인정하면서 그 이상은 최씨의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었다는 변론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이모인 최씨에 대한 장씨의 심경 변화는 지난달 7일 열린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2차 청문회에서도 일부 감지됐다.
더불어민주당 이한정 의원이 "동계스포츠영재센터는 누구의 아이디어냐"라고 묻자 장씨는 "최순실 이모가 한 번 만들어보라고 지시했다"고 답했다.
"삼성을 직접 압박해 후원금을 타냈냐"는 다른 의원들의 질의에도 장씨는 "최순실 이모가 지시를 하면 따라야하는 입장이고 이모니까 (뜻을) 거스를 수도 없었다. 이모가 '제주도에서 아이만 키우지 말고 일을 해보라'고 권했다"라고 말하며 모든 것을 최씨의 기획으로 돌렸다.
특히 청문회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이모라는 말 대신 "최순실씨"로 최씨를 칭하며 조카와 이모가 아닌 지시자와 실무자 사이로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의도도 노골적으로 내비쳤다.
조카 장씨 외에 그동안 수족처럼 부리던 많은 사람들도 최씨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월말 최씨가 독일에서 귀국하기 직전 K스포츠와 미르재단의 대기업 강제모금을 "돈을 노린 미르 사무총장의 조작으로 몰고가라" "안종범 청와대 수석은 뭐라하더냐" 등의 증거인멸 시도는 독일에서 딸 정유라의 시중을 들던 노승일 K스포츠재단 부장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졌다.
"최순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대통령 연설문 고치는 일"(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 "최씨는 박 대통령과 한 몸이나 다름 없는 존재"(박헌영 K스포츠재단 과장) 등 평소 최씨와 정유라의 일을 지근거리에서 돌봤던 인사들의 폭로도 최씨를 사면초가로 몰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