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실력' 보단 '인맥' 입증한 靑 비밀노트

"정치적 인맥 수혜받은 수뇌부부터 반성하고 적폐 청산해야"

(사진=자료사진)
박건찬 경찰청 경비국장이 청와대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작성한 노트가 공개되면서 청와대와 경찰 수뇌부가 경찰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하지만 이는 비단 박 국장 개인의 문제가 아닌 경찰 조직 전체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인사철마다 온갖 인맥을 총동원해 '윗선'에 줄을 서는 게 만연한 경찰조직 문화를 차제에 청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11월 '인사 골든타임'…휴대전화만 붙들고 사는 경찰관들

매년 11월쯤이면 경찰관들에게는 국민 치안을 위한 업무보다 중요한 게 있다. 바로 속칭 '전화 뺑뺑이'.

"안녕하세요? 저 00경찰서 000입니다. 잘 지내시죠?"

12월에 단행되는 경찰 고위직 인사를 앞두고 경찰관들이 경찰 수뇌부와 정치권 실세 등에 인사 청탁을 하는 '흔한 풍경'이다.

'계급 정년제'가 적용되는 경정(5급) 이상의 경찰관들은 이 시기가 승진이냐, 옷을 벗느냐를 결정하는 '골든 타임'이다.

계급 정년제는 경찰관이 일정 정한 기간에 승진하지 못하고 동일한 계급에 머무르면서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퇴직시키는 제도로, 경정은 14년, 총경은 11년, 경무관은 6년 안에 승진하지 못하면, 각 계급의 경찰관들은 퇴직해야 한다.

실제로 지난해 총경급 승진 인사에서 탈락한 A 경정은 "경정 10년 차에도 승진을 못하면 (향후 승진에 대한) 희망이 없다"면서 "아직 둘째 아이는 대학도 안 갔는데, 정년퇴직이 4년밖에 남지 않아 걱정이 태산"이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경정급 이상 경찰관들은 필사적으로 모든 인맥을 총동원해 경찰 수뇌부와 정치권에 줄을 서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 치안을 책임지는 경찰 간부들이 승진에만 목을 매면서 치안 업무는 뒤로 밀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 경찰 간부는 "승진 시기만 되면 간부급 경찰관들은 치안 업무보다 통화나 외부 약속이 우선"이라며 "경찰서 분위기가 어수선한 게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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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경 승진자 '3.5%25'…점괘 보러 다니는 경찰

실제로 지난해 전국 경정 2,438명 가운데 총경으로 승진된 경찰관은 86명뿐이었다. 약 3.5% 경정만 총경으로 승진된 셈이다.


물론 모든 경정이 '총경 승진 대상자'는 아니었지만, '승진 길목'이 좁다는 데에는 경찰들 사이에서 이견이 없다.

B 경정은 "아무래도 실력보다는 인맥이 중요한 게 현실"이라며 "답답한 마음에 점을 보러 간 적도 있다"고 전했다.

총경에서 경무관으로 승진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총경 580명 중 경무관으로 승진한 경찰관은 단 16명에 불과했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경찰관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승진 코스'로 발령 나는 것도 주요 관심사다.

대표적인 승진코스는 서울지방경찰청 101단 경비대장(청와대 경호), 청와대 경호실 경찰관리관, 청와대 경호실 치안비서관 등이다. 이철성 경찰청장과 강신명 전 경찰청장 모두 치안비서관 출신이다.

경찰 고위급들이 선도하는 이같은 인사청탁 문화를 그대로 보고 배운 부하 직원들 역시 인사철만 되면 사방팔방으로 인맥을 찾아다니긴 마찬가지다.

한 경찰 관계자는 "승진을 하면 실력을 보기 보다는 어떤 줄을 탔는지에 먼저 관심이 집중된다"면서 "그러다보니 현장에 나가면 나한테 도움이 되는 사람을 찾기에 바쁘다"고 고백했다.

◇ "경찰도 최순실 따라 하나…인적 영향력에 시스템 붕괴된 것"

건국대 이웅혁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박 국장의 인사 관련 메모를 보면서 "최순실 씨가 했던 행위를 경찰도 똑같이 따라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교수는 "고위 경찰 수뇌부들의 인적 영향력에 경찰 인사 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는 현실"이라며 "정치적 연결고리의 수혜를 입어온 경찰 수뇌부부터 반성하고 이런 문화를 청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극동대 박한호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인사는 투명한 시스템이 생명"이라며 "승진 대상자에 대해 상급자뿐만 아니라 하급자들도 인사평가에 참여하는 다면적 평가가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적절한 인사배치를 위한 소통과 인사 청탁의 경계가 모호한 것이 사실"이라면서 "오해 없는 소통을 위해서라도 투명한 인사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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