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전상운 전 성신여대 총장은 1966년 <한국 과학 기술사> 출간 이후 50년간 과학 기술사 연구, 과학 문화재 보전 및 복원에 지대한 역할을 해 왔다.
한국 과학 기술사는 중국 과학 기술사의 지류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동시에 그 창조적 변형이기도 했다. 그 창조적 변형의 발전 과정을 추적하는 것이 바로 한국 과학사이다. 이것이 바로 전상운 전 총장의 오랜 연구주제였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청동기 시대 기원을 과감하게 기원전 15세기 이전으로 올려 볼 수 있지 않겠냐는 제안에서부터 한반도의 청동기 기술이 중국이나 중앙아시아에서 건너온 기술만이 아니라 한민족이 활동 무대로 삼던 한반도 북부와 요동과 만주 지역의 문명권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기술에서 기원한 것이 아니겠냐는 추정까지 내놓으며 한국 고대 과학 기술사 및 고대사에 대한 연구 지평을 과감하게 넓힐 것을 제안한다.
이 책은 한국 과학 기술사 연구의 역사 자체를 다룬 1부 「우리에게 과학 문화재가 있었다」에 이어지는 2부 「청동기 시대의 과학 문화재」를 시작으로 삼국 시대와 통일 신라 시대, 그리고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의 과학까지 통사적으로 다루는 9개 부로 구성되었다.
그동안 학문적으로 제대로 규정조차 되지 못했던 고구려, 백제, 가야의 과학 기술사를 다룬 3부 「장대한 고구려의 과학 문화재」, 4부 「고대의 철의 과학」, 5부 「백제, 잊혀진 과학 왕국」에서는 고대 한국의 과학 기술사를 동아시아 과학 기술사로 확대하는 장대한 전망을 엿볼 수 있다.
고구려의 고분 벽화 곳곳에 숨어 있는 흔적들에서 고구려의 과학 기술을 읽어 내고, 일본까지 흘러간 가야와 백제의 철기 유물에서 고대의 철기술을 찾아내고, 일본 교토와 나라의 청동대불과 거대한 불탑들에서 고대 백제의 요업 기술과 수학, 그리고 건축술을 읽어 내며, 한발 더 나아가 일본의 불탑들과 문헌들을 한국 과학 기술사의 편린을 간접적으로라도 보여 주는 우리의 과학 문화재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많은 유물이 분단된 강토의 북쪽에서 있어 청동 활자와 고려 대장경 경판과 관련된 연구 말고는 활발치 않은 고려 시대 과학 기술사를 평양의 과학 기술사 연구자들과 함께 연구하는 원대한 꿈을 소개하는 7부 「고려 장인들의 기술 유산」에서는 민족사적인 감동까지 느끼게 한다. 전상운 전 총장이 해 온 연구의 출발점이기도 한 조선 시대 과학 기술에 대해 소개하는 8부 「조선의 과학과 기술」에서는 한층 정치(精緻)해진 원로 연구자의 내공을 만끽할 수 있다.
이 책에는 전북대학교 과학학과의 교수이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소장으로 한국 과학사, 의학사 연구의 젊은 권위자로 이름 높은 신동원 교수가 대담자로 나서 전상운 전 총장의 인생과 학문을 총체적으로 재조명한 9부가 「한국 과학사를 향한 사랑」이 실려 있어 가치를 더해 준다.
전상운 지음 | 사이언스북스 | 752쪽 | 3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