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국정원은 '배고픈' 예술인들의 복지 예산까지 손대면서 옥죄려고 한 것으로 드러났다.
예술 관련 단체 관계자는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에 대해 국정원이 직접 점검했다는 구체적인 내용을 CBS노컷뉴스에 폭로했다.
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관계자 A씨는 7일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블랙리스트에 대해 "(진보 예술인들을) 완전히 고사시키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고 털어놨다.
예술인들에게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예술인 맞춤형 교육 지원' 사업을 담당했던 A씨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2015년도 2월 모집 공고가 나가면서였다.
A씨는 "한 번도 (문체부에서) 공모에 개입한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지원자 명단을 보내라고 했다"며 "이상해서 물었더니 '토달지 말아라. 니네는 시키는대로 하면 된다'는 식이었다"며 문체부 직원의 고압적인 태도에 불쾌했던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문제는 선정자 발표가 3월27일이었지만 전날까지도 회신은 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A씨는 홈페이지에 '1차 심의 일정이 부득이 지연되면서 결과발표가 늦어진다'는 안내를 올려야 했다.
참다 못해 문체부 담당자에게 늦어지는 이유를 묻자, 그 직원은 A씨에게 '놀라운' 내막을 꺼내 놨다.
명단이 국정원으로 넘어갔다는 것이었다.
그 문체부 직원은 A씨에게 "명단을 국정원에서 스크린 하고 있어 늦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푸념하듯 말했다.
국정원이 정권의 구미에 맞지 않는 예술인(단체)를 배제하기 위해 심사 과정에까지 깊숙히 개입했다는 것이다.
결국 재단은 선정 결과를 한 달 늦게 발표했고, 본래 45개 단체 이상을 선정하려 했던 계획은 34개 단체로 축소됐다. 10여개 단체는 국정원의 스크린으로 예산에서 배제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건을 거치면서 A씨에게는 문득 떠오르는 사건이 또 있었다. 2014년 2월, 마찬가지로 예술인 단체를 지원하는 사업이었다.
A씨는 "모든 심사를 끝내고 발표만 남았는데 갑자기 문체부에서 사업을 취소하라고 했다"며 "밑도 끝도 없이 무작정 취소하라고 해 황당했다"고 말했다.
A씨는 갑작스런 사업 취소에 강하게 항의했다. 이유를 물었지만 대답은 "그냥 취소하라"였다.
A씨가 명분이 없는 지시에 따를 수 없다고 버티자, 문체부 중간 간부급 관계자가 A씨를 따로 불러 설득했다. "조직을 위해 참아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당시에도 진보 성향의 예술단체에 대한 지원 배제와 관련한 소문들이 공공연하게 나돌긴 했지만 믿진 않았었다"며 "자기네 마음에 안든다고 10억원이 넘는 사업을 통으로 날려버렸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직을 위해 참아달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문체부가 아닌 무언가 더 큰 힘이 뒤에 있음을 느꼈다"며 "(진보 예술단체를) 고사시켜버리겠다는 전략이라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당시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예술 단체들 중에는 진보 성향의 예술 단체들도 포함돼 있었다.
국정원과 문체부가 예술단체 복지 관련 예산을 겨냥한 것은 A씨의 말처럼 정권에 밉보인 단체들의 기반 자체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특검의 블랙리스트 수사 과정에서 국정원이 예산에도 직접 관여한 정황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정원이 정보 수집 차원을 넘어 예산 집행 과정에서 '검증작업'을 벌였다면 단순한 조력자를 넘어 주도자 역할을 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국정원에 대한 강도 높은 특검 수사가 필요한 이유다.
특검은 국정원장을 역임했던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수사선상에 올려놓고는 있지만,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것은 청와대와 문체부로 보고 수사를 벌여왔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장관이 핵심 타킷이다.
특검은 8일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과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을 차례로 불러 조사한다.
두 사람 모두 A씨가 겪었던 일이 일어났던 시기에 관련 분야의 장관과 수석이었던 인물들이다.
특검은 이들 피의자들에 대한 조사와 함께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에 대한 조사도 확대하고 있다.
블랙리스트의 실체를 입증한다면 작성에 관여한 사람들에게 법률상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를 적용할 수 있지만, 유죄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블랙리스트로 인해 권리행사를 방해받은 피해자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