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과 측근들, 지렛대 삼은 '살라미 전술'의 노림수

(사진=자료사진)
"억울한 부분 많습니다(최순실), 공소사실 부인합니다(안종범), 공소사실과 관련 변호인과 상의할 부분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정호성)."

비선실세 최순실 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경제수석, 정호성 비서관에 대한 첫 정식재판이 열린 5일 서울중앙지법 대법정은 시작 초기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

재판은 오후 2시 10분 150여 명의 방청객들이 참관하는 가운데 시작됐다. 최순실과 안종범, 정호성 피고인이 재판정으로 들어서자 카메라 플래쉬가 1분여 이상 연속적으로 터졌다. 최순실은 고개를 푹 숙여 방청석 뒷편에 앉은 기자로서는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웠다. 더욱이 자그만 체구였다.

반면 안종범은 고개를 숙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들어와 의자에 착석했고 정호성은 자세를 곧추 세웠다.

재판이 시작되고 변호인과 검찰 측은 두세 번 정도 날카롭게 도전과 응전을 했다.


최순실씨 변호인(이경재 변호사)는 "검찰이 최 씨의 구속영장에는 사적이익을 위해 안 전 수석과 최 씨가 재단설립을 공모했다고 썼다가 공소사실에는 공적으로 추진했다고 한 것은 모순"이라며 대통령 공모 부분을 물고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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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검찰 측은 "국가의 격을 생각해 최소한의 사실만 적시한 건데 (그런 것도 모르고 대드냐며) 대통령 공모증거는 차고 넘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또 정호성 씨 변호인이 증거로 채택하지 않은 태블릿PC 자료를 제출해달라고 요구하자 검찰측은 "제가 20년 검사생활을 하면서 증거로 채택하지 않은 자료까지 요구하는 건 처음 봤다"며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재판에서 피고인 변호인측은 신속한 재판 대신 전반적으로 재판을 질질 끌려는 태도가 명확하게 노출됐다.

최순실 변호인과 안종범 변호인은 혐의를 전면 부인했고 정호성 변호인은 "특검의 구치소 압수수색 등으로 메모지를 빼앗겨 재판 준비도 아예 못했다"고 말했다. 전형적인 시간끌기 전략이란 의심을 사기 충분했다.

◇ 난데 없는 "신의 보호…육영수 철학"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인 최순실씨가 5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열 린 첫 공판 기일에 피고인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같은 시각 헌법재판소에서도 2차 변론기일이 열렸다. 박 대통령 법률대리인들은 촛불시위에는 불순한 세력이 있다며 느닷없는 색깔론을 끄집어냈다. 심지어 "신이 헌법재판소를 보호해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복음을 달라"는 난데없는 주장도 나왔다.

박 대통령이 최 씨의 지인이 운영하는 KD코퍼레이션에 특혜를 줬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박 대통령은 어릴때부터 육영수 여사를 따라다니며 대통령에게까지 온 민원은 마지막 부탁이라 소홀히 여기면 안된다는 철학을 배웠다"고 황당한 논리를 펼쳤다.

헌재 대통령 법률 대리인들의 목적도 뚜렷했다. 혐의에 대한 반박 논리는 안드로메다에서 온 것처럼 황당했고, 증인 출석은 어떻든지 최소화 하는 전략이었다.

이른바 하나의 과제를 여러 단계별로 세분화해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협상 전술인 '살라미 전술'이다. 북한이 핵협상에서 자주 사용한다는 비판을 받아 국내에서도 낯설지 않다.

◇ 박 대통령 측 생존 지렛대는 '살라미 전술'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인 최순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이 5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첫 공판 기일에 피고인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박 대통령은 지금 '살라미 전술'을 생존의 지렛대로 삼고 있다. 법원에서 열리는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에 대한 형사재판과 헌재 대통령 탄핵재판, 그리고 특검 수사는 '살라미 전술'을 축으로 돌아간다.

최순실과 안종범, 정호성 세 사람은 형사재판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이런저런 사유로 재판을 지연시켜 시간끌기에 돌입하고 있다.

특검조사도 거부하고 있다. '정신적 충격'을 사유로 삼지만, 특검에서 이뤄지고 있는 '뇌물죄'수사를 최대한 지연시키자는 꼼수다. 특검의 뇌물죄 의율은 탄핵심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헌재 재판 증인 출석 또한 그들의 목표는 '버티기'를 위해 일사분란하다. 윤전추 행정관만 출석시키고 함께 뒷수발을 든 이영선 행정관의 증인 출석은 보류시킨다. 얇게 얇게 최대한 썰어 먹자는 것이다. 이재만, 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에 대한 출석 요구는 전달받지 않은 방법으로 최대한 회피해 나간다.

박 대통령 측 배후 조정자는 재판을 지연시킬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태세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일 청와대 기자들에게 "(검찰과 특검이) 나를 완전히 엮은 것"이라고 국정농단 사건을 규정했다. 단순하고 명료하다. 그의 측근들은 형사재판과 탄핵심판, 특검 조사에서 그대로 순응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것 외에는 살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 측 시간끌기가 성공으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법리적 논리보다는 정치적, 이념적 논리, 그리고 감정적 호소에 몰두하는 박 대통령과 측근들의 수법을 국민들은 이미 간파했다. 헌재와 법원, 특검 모두 국민의 뜻을 알고 있다. 그들이 최대한 늦춘다한들 되돌리기에는 대한민국은 너무 멀리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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