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이 청와대 관저 안에 머물며 서면 등 보고를 받았을 뿐 미용시술 의혹 등은 전면 부인해온 청와대의 '대본'과 아귀가 맞는 답변들이었다.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지근거리에 있던 윤 행정관이 결과적으론 ‘호위무사’로 나선 꼴이다.
5일 탄핵심판 2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한 윤 행정관은 박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을 오전 8시 30분쯤 인터폰 호출에서부터 기억해냈다.
박 대통령이 스스로 머리정돈과 화장을 해 "단정했다"고 모습을 설명한 윤 행정관은 그러나 정작 박 대통령과 30여분 함께했다는 '비공식 업무'(개인 업무)가 무엇인지는 증언하지 못했다.
헬스 트레이너 출신인 윤 행정관이 대통령에게 운동 지도를 했는지에 묻는 재판부 질문에는 강한 어조로 부인하며 "중요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면서도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윤 행정관은 당일 오전 10시쯤 자신이 '급한 서류'를 박 대통령에게 전달했고, 이때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사실을 알게 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 증언은 김장수 당시 국가안보실장이 지난달 국회 청문회에 나와 "서면보고를 10시에 했다"고 한 발언과 일치한다.
윤 행정관은 안봉근 당시 비서관이 관저에 뛰어 들어와 대면보고를 하고, 박 대통령이 평소보다 빠른 10여분 만에 혼자 점심을 먹은 사실은 큰 막힘없이 진술하면서도 ‘비공식 업무’에 대해선 기억을 더듬기만 했다.
그러면서도 오후 정호성 당시 비서관도 관저로 찾아왔고, 박 대통령이 재난안전대책본부로 향하기 전 미용과 머리손질 담당자 2명을 제외하면 관저의 외부 출입자는 이날 없었다는 점을 윤 행정관은 분명히 했다.
"박 대통령이 관저 등에서 당일 30여차례 보고와 지시를 내렸다"거나 '굿판', '프로포폴', '성형시술' 의혹을 일축했던 청와대의 공식 해명과 궤를 같이 한 것이다.
당시 대통령의 모습까지 그리듯 설명했던 윤 행정관이 정작 비공식 업무에 대해 밝히지 않고 관저 내 공간 구조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설명을 꺼리면서, 재판부가 진술의 신빙성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지 관심이 쏠린다.
국회 측과 박 대통령 측, 재판부의 질문이 한차례 이어진 뒤 신문에선 청구인 측으로부터 "박 대통령이 당시 관저 밖으로 나갈 수 있었던 상태였냐"는 질문도 나왔다.
박 대통령의 모습을 '단정했다'고 이미 답변했던 윤 행정관이 "제가 기억하기로는 (관저 외부로) 갈 수 있었을 것 같다"고 답했는데, "그럼 왜 '청와대 벙커'로 가지 않았느냐"고 계속 질문이 이어지자 "잘 모르겠다"는 답변을 내놨다.
김장수 전 실장은 당일 오전 10시 15분 박 대통령으로부터 전화가 와 "정확히 상황을 파악하시려면 TV를 같이 보시는 게 좋겠다"고 말한 사실을 청문회에서 언급했는데, 윤 행정관 설명에 따르면 당시 대통령이 있던 관저 내 집무실(본관 집무실과 다름)에는 TV가 없었다.
윤 행정관은 이에 대해 "노트북 컴퓨터로 볼 수도 있다"고 했다.
윤 행정관은 최순실씨와 관계나, 박 대통령의 옷값 대납 의혹 등과 관련해서도 언론을 통해 보도된 의상실 CCTV 화면이나 검찰 수사로 비교적 명확히 확인된 사실 부분만 탄핵심판에서 인정했다.
특히 박 대통령이 자신에게 직접 의상대금을 현금으로 지급하게 했다는 걸 봉투 색깔과 크기까지 거론하며 적극적으로 설명했다.
CCTV화면대로 의상 대금을 최씨가 냈다면 뇌물죄가 될 수도 있다.
윤 행정관은 이외 부분에 대해서는 대부분 보안 등을 이유로 답변하지 않거나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투의 대답만 반복하기도 했다.
박한철 헌재소장은 그런 윤 행정관에게 "증언을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몇 차례 주지시켰다.
주심 강일원 재판관은 "객관적으로 당연히 알 수 있는 사실도 모두 모른다고 하면 적절치 않다"고 주의를 줬다.
이어 "객관적인 사실을 말해주지 않으면 마치 부정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 의심이 들 수 있다"고도 했다.
소추위원인 권성동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이날 변론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윤 행정관의 일방적 진술만 있었기 때문에 세월호 7시간이 완벽히 밝혀졌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박 대통령 측 대리인 이중환 변호사는 "의혹이 상당 부분 밝혀졌다고 생각한다"고 다른 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