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 "육아는 남성의 성 역할이 되어야 한다"

신간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나는 육아에서 국가보 남성 개인의 인식과 태도가 훨씬 중요하다고 본다. 국가는 남성을 '따라갈' 뿐이다. 육아가 여성 운동의 의제인 것 자체가 잘못이다. 육아는 남성의 성 역할이 되어야 한다. 남성도 여성이 겪는 육아와 모성으로 인한 죄의식, 스트레스, 자기 분열, 커리어 포기 경험을 겪어야 한다. -정희진,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성문화(性文化) 연구 모임 ‘도란스’가 펴낸 <양성평등에 반대한다>는 양성평등이라는 기존의 패러다임이 한국 사회의 성차별 인식을 결코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없양음을 분명히 밝힌다.

양성평등은 여성에게 유리한 담론인가? 양성평등 개념은 여성에게 저항 가능한 논리를 제공하고 있는가? 아니, 오히려 여성의 노력과 저항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양성평등에 반대한다>의 저자 정희진, 루인, 권김현영, 류진희, 한채윤은 이 책에서 다루는 당대 한국 사회의 이슈가 기존의 양성평등 패러다임으로는 포괄할 수 없는 현실이라 보고, 젠더와 관련한 기존의 논쟁 구도를 변화시키고자 한다. 저자들은 여성주의는 남성과 대립하고, 남성을 대체하고, 남성에 대항하는 개념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을 제안하는 사유임을 보여준다. 여성주의는 다양한 인식자의 위치를 드러내고, 그 입장과 조건을 경합하는 사유이다. 이 책이 그러한 여정에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양성평등에 반대한다〉(정희진)는 양성평등 개념에 대한 기본적인 해제에 해당하는 글이다. 동성애자 ㆍ 양성애자 ㆍ 트렌스젠더 ㆍ 인터섹스(간성間性) 등 성적 소수자의 존재를 구체화하면서 남성과 여성을 구분 짓는 이분법적 양성 개념이 허구임을 입증하고, ‘남성’을 기준으로 하는 평등 담론의 문제점을 논한다.

〈음란과 폭력을 다시 생각한다〉(루인)는 속칭 ‘바바리맨’ 사건으로 분류된 한 고위직 남성 공무원의 ‘성추문 사건’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음란이 범죄가 되는 과정을 깊이 분석한다. 또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하여 인간이 양성으로 뚜렷하게 구분된다고 믿는 사회에서 퀴어(queer)란 어떤 존재인지,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가시화되는지를 다룬다.


〈미성년자 의제강간, 무엇을 보호하는가〉(권김현영)는 오직 연령만을 기준으로 삼아 ‘양성’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미성년자 의제강간법의 모순을 드러낸다. 저자는 이러한 모순을 파고들면서 기존의 양성 개념에서 연령이 어떻게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지를 탐색한다.

〈그들이 유일하게 이해하는 말, 메갈리아 미러링〉(류진희)은 양성평등 패러다임 이후 새로운 여성 주체의 등장을 다룬다. 기존 페미니스트들에게 혼란과 성찰의 계기를 가져다준 온라인 페미니즘의 대명사 ‘메갈리아’를 2000년대 이후 여성 정치 주체의 계보 속에서 살펴본다.

〈왜 한국 개신교는 동성애 혐오를 필요로 하는가〉(한채윤)는 동성애자를 사회의 뿌리인 이성애 가족을 위기에 빠트리고 성 윤리의 타락을 불러오는 집단으로 낙인찍는 한국 개신교의 논리에 맞서, ‘동성애와 개신교’에 대한 기존의 시각을 전복하고 재해석한다. 이러한 시각은 곧 이성애 커플과 가족을 당연시하는 양성 중심의 젠더 개념을 재구성하고 해체할 것을 요구한다.

책 속으로

거의 모든 여성이 ‘사회’에 나와 있다(즉, 집은 사회가 아니라고 인식된다). 특히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신자유주의의 광풍과 불안 속에서 여성의 노동 시장 진출은 급격히 증가했다. 그러나 여성이 집 밖으로 나와 사회로 진출한, 그 내용은 무엇인가? 이중 노동, 워킹 푸어, 비정규직의 여성화, 빈곤의 여성화, 남녀 임금 격차의 지속……. 사회 진출 자체가 평등 혹은 여성 상위로 인식되는 것은 그만큼 “여성이 있을 곳은 집”이라는 강력한 의식의 반영일 뿐이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노동 시장 진출이든 사회 운동이든 지식 생산이든 지하 경제(‘black’ economy)든 간에 일하지 않는 기혼, 비혼, 미혼 여성은 거의 없다. 여성들의 공적 영역 진출에 비해, 남성들의 사적 영역으로의 진입은, 즉 가사 노동, 육아, 돌봄 노동은 ‘없다’. 여성 인구는 거의 모두 공사 두 영역에서 노동하지만, 남성 인구는 극히 일부만이 사적 영역의 노동에 종사한다(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1쪽)

한국은 거의 모든 공적 공간이 성행위를 할 수 있는 곳이지만 그곳은 거의 항상 누군가가 엿볼 수 없도록 창문을 가린 구조를 취한다. 모텔이 그렇고 DVD방이 그렇다. 이른바 공적 공간이 성행위가 발생하는 공간이며 모텔 주인이나 DVD방 매니저는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만 이런 공공장소에서의 성행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방조되고 권장된다. 외부에서 확인할 수 없도록 창문을 가리는 방식, 즉 제3자가 언제나 이미 인지하고 있지만 제3자의 현존/목격/인지 가능성을 차단한 것처럼 인식하도록 공적 공간을 사적 공간처럼 구성하기 때문이다. 이런 공간에서 데이트 성폭력을 비롯한 많은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지만 다른 많은 이유와 함께 증인/제3자가 현존할 가능성이 희박하여 성폭력 사건은 입증되기 어렵거나 사건으로 구성되지 않고 은폐된다. 혹은 피해자가 ‘성관계를 즐기고선’ 뒤늦게 돈을 뜯어내려고 고소한다며 피해자를 ‘꽃뱀’으로 비난할 공간적 근거로 사용되기도 한다. 즉 공적 공간의 구조 자체가 성폭력 사건을 조장하고 은폐한다. (84, 85쪽)

아무런 권리가 주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오직 성에 대해서만 동의 여부를 만 13세 이상부터 결정할 수 있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과연 성관계를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까? 부모 혹은 성인에 대한 경제적 의존이야말로 성적 자기 결정에 유해한 조건이다. 그러므로 미성년자의 자유권을 제한하는 방식이 아니라 보장할 수 있게 하려면 이 문제를 청소년의 신체적ㆍ정신적 ‘건전한’ 발달 과정의 문제라는 발상부터 버려야 한다. 오히려 더 효과적이고 현실적인 성교육을 받을 권리, 미성년자의 안녕과 복지를 위해 더 좋은 교육 환경과 정치 제도를 요구할 권리, 생활 임금이 가능한 최저 임금을 받을 권리 등이 미성년자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이다. (123쪽)

많은 이들이 메갈리아에서 나온 미러링 표현을 도저히 여성들이 했다고는 믿을 수 없다고 했는데, 이것은 사실 수년간 여성들도 혐오 발화의 문법을 숙지하고 있었다는 증거였다. 다만 이번에는 침묵하는 게 아니라 적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활용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미러링은 린치를 수반하는 증오 발화(hate speech)가 아니라, 새로운 형식의 여성의 저항이다. 여성 혐오 발화는 온?오프라인을 넘나들지만, 소위 ‘남성 혐오’ 발화는 오직 온라인에서만 가능하다. …… 미러링은 역전된 혐오 발화로 원본을 아카이빙하는 동시에 그 표현에 대항하며, 결국 여성 혐오의 시대를 생생하게 고발하게 된다. (143쪽)

우리는 한국의 개신교가 근본주의에 기반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근본주의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이 사실상 젠더 이데올로기”였다는 강남순 교수의 지적도 기억해야 한다. 신학자 잭 로저스는 “남녀 평등을 반대하는 것과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 사이에는 강한 연결고리가 있다. 종교적 보수주의자들은 가부장제 가족 구조를 교회와 국가의 안정에 열쇠가 되는 것으로 본다. 이런 견해에서 가부장제와 애국심과 기독교는 하나의 깃발 아래 뭉치며, 그 깃발은 동성애에 대한 모든 논의 위에서 휘날린다. 동성애와 여성 평등은 둘 다 남성 우위의 모델을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되며, 확대하면 교회와 국가에 위협이 되는 것으로 간주된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184, 185쪽)

정희진 (엮음) , 권김현영, 루인, 류진희, 한채윤 지음 | 교양인 | 192쪽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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