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 ① 블랙리스트로 되살아난 '유신의 망령' ② "어느날 갑자기 빨갱이가 됐어"…대를 이은 공안 통치 ③ 전태일 이후 47년 "유신시대 마인드로 박근혜표 노동탄압 (계속) |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이 시작한 재벌 위주 경제성장 정책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며 세계를 놀라게 했지만, 그 이면에는 최악의 노동조건으로 인해 신음하는 노동자들이 있었다.
억압됐던 노동자들의 권리 요구는 민주화 이후 봇물처럼 터져 나왔고 많은 성과를 이끌어냈지만 박근혜 정권은 다시 한 번 노동자들의 숨통을 조였다.
◇ 전태일 분신으로 청계노조 만들었으나
"몸은 옷의 엉덩이 부분을 제외하고는 전신이 숯처럼 시꺼멓게 타고, 온 살결은 화상으로 짓물러 터졌다. 눈꺼풀은 뒤집혔고, 입술은 퉁퉁 부르터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민종덕,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평전')
그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을 거뒀다. 분신 현장에 있던 친구 임현재(67) 씨는 CBS노컷뉴스 취재진과 만나 "태일이가 그렇게까지 할 거라고는 아무도 상상도 못 했다"고 회상했다.
임 씨에 따르면 쓰러지기 전 화염 속에서 전 열사는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을 쉬게 하라. 근로자를 혹사시키지 말라"고 소리쳤다. 물론 이 구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똑똑히 알아들을 수 없는 비명으로 변했다.
그가 재단사로 일하던 평화시장에는 '저임금-장시간 노동'이 굳어져 있었다. 전태일은 이런 최악의 노동조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직접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임 씨는 "태일이는 어린 여공들이 아무 때나 쉽게 해고당하면 밀린 돈도 못 받고 했던 걸 보고 마음 아파했다"면서 "나중에 보니 화형식 정도로는 안 된다는 걸 먼저 알았던 것 같다"고 기억했다.
민종덕(64) 전 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이사는 "평화시장뿐 아니라 건설 노동자나 여러 군데에서 임금이 체불되는 일은 당시에 부지기수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청계노조 역시 신군부에 의해 10년 만에 해산됐다. 유신 말기 청계노조 지부장을 지낸 임현재 씨는 "그때는 시퍼렇게 탄압을 당해서 어디 가서 말할 데도 없고 너무 억울했다"고 말했다.
◇ 87년 이후 노동운동 봇물…거꾸로 가는 朴정부
유신과 신군부가 물러가고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겪으면서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요구는 비로소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87년부터 2년새 노동조합 수는 3배(2675개→7983개)나 폭증했고, 이후 민주노총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이 출범하며 노동 이슈가 주요 사회적 의제로 떠올랐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은 민주화 이후 25년 만에 노동 탄압을 본격화하며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 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민주노총은 일관되게 박근혜 정권의 친 재벌정책에 대해 투쟁해왔다"면서 "재벌과의 공모범죄를 은폐하고 방어하기 위해 민주노총에 대한 공작적 탄압을 이어온 것"이라고 성토했다.
◇ "박정희 재래식 탄압 vs 박근혜 신무기로"
정권의 묵인 혹은 방조 속에서 노동자들은 '쉬운 해고'를 당하기에 십상이었다.
지난해 '희망퇴직'의 바람이 한바탕 불었던 삼성SDI 직원 A 씨는 "이제 같이 출퇴근할 동료도, 소주 한 잔 기울일 동료도 남아 있지 않다"면서 "쉬운 해고에 피 보는 건 결국 노동자일 텐데 딸도 키워야 하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더구나 정부가 밀어 붙여온 노동개혁(개악)안과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는 '더 쉬운 해고'를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노동자들을 한숨짓게 하고 있다.
오히려 더 교묘해진 노동탄압을 지켜보며 군사독재 시절 노동운동을 했던 이들은 쓰린 가슴을 부여잡을 뿐이다.
민종덕 상임이사는 "시대가 발전하고 민중들의 의식이 높아졌는데 박근혜 정권은 유신 시절 마인드로 노동 탄압을 하고 있다"면서 "이런 무모한 시도에 대한 반발의 연장 선상에서 최근의 촛불 투쟁까지 나온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