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사자 AI, 나는 누구일까요?

내 이름은 '조류 인플루엔자'이다. 한국에서는 AI(Avian Influenza) 또는 조류독감으로 더 유명하다. 나는 고병원성(HPAI)과 저병원성(LPAI)이 있는데 문제가 되는 것은 대부분 고병원성이다.

요즘 나 때문에 닭과 오리 사육 농가가 발칵 뒤집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역대 최대 피해라고 하던데 나 역시 마음이 좋지는 않다.

내가 한국에서 처음 발견된 것은 2003년이다. 12월 겨울, 나는 충북 음성으로 들어오는 데 성공했다.


충격은 상당했다. 당시 아시아와 유럽에서 발생한 조류독감 때문에 지구촌에 비상이 걸려 있는 상태였다. 97년 홍콩에서 조류독감으로 6명이 죽은 전례가 있어 공포감도 컸다.

약 3개월 동안 전국의 528만 마리의 닭과 오리가 살처분 됐다. 자식처럼 키운 닭과 오리가 그대로 땅에 묻히자 농민들은 망연자실했다.

당시 닭고기 소비도 30% 이상 급락했다. 나는 고온의 조리과정에서 없어지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두려워했다.

그렇게 수개월이 지나고 날씨가 따뜻해질 때쯤 나는 한국에서 자취를 감췄다.

짧지만 강한 존재감을 남겼다.

◇ "내가 어디서 왔냐고?"

2016년 11월 22일 전남 해남, 산란계 AI 감염 닭 살 처분. (노컷뉴스 자료사진)

내가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나는 주로 철새를 타고 한국에 온다. 한국에 온 뒤로는 철새뿐만 아니라 철새와 접촉한 사람의 옷, 신발, 차량, 기구 등에 묻어 양계농장으로 퍼져 간다.

야생 철새들에게 나는 그냥 한번 앓고 가는 감기밖에 되지 않는다. 비둘기나 참새는 면역력이 강해 잘 걸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닭과 오리는 다르다. 특히 집단으로 사육되는 환경에서는 한 마리만 감염되면 전체 감염은 식은 죽 먹기다. 고병원성인 나는 닭이나 오리 몸에 들어가서 설사, 식욕저하, 산란율 저하 등을 일으킨다. 폐사율도 50% 이상이다.

사람에게도 전염 된다. 2003년부터 현재까지 총 648명이 나에게 감염됐고 384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람에게도 치사율이 50% 이상이다. 아직 대한민국에서는 감염된 사람은 없다.

2014년 1월 27일 오후 고병원성 H5N8형 AI 바이러스가 검출된 경기도 안산시 시화호 주변 갈대습지 생태공원에서 방역당국이 방제를 실시하고 있다. (노컷뉴스 자료사진)

◇ '사상 최악'

붉은 닭의 해인 정유년을 앞두고 나의 악명은 높아져만 가고 있다. 지난 10월 고병원성 H5N6형인 내가 처음 발견된 뒤 두 달 만에 살처분 된 가금류 수는 약 2,800만 마리나 된다. 역대 최고 수준이다.

피해는 산란계 닭과 오리에 집중됐다. 닭의 경우 사육대비 약 27%, 오리의 경우 사육대비 약 45%가 살처분 됐다. 이쯤 되니 내가 닭과 오리의 저승사자가 맞는 것 같다.

올해 특히나 피해가 컸던 이유는 정부의 초기대응이 느슨했기 때문이다. 내가 지난 10월 28일 처음 발견됐지만 정부는 발견된 시 단위로만 방역하는 데 그쳤다. 인근 지역에는 아무런 방역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는 뒤늦게 나에 대한 위기경보를 심각 단계로 격상했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뒤였다.

방역을 위한 제대로된 컨트롤타워도 없는 틈을 타 나는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안전지대라던 경남도 뚫었다. 이제 남은 곳은 제주도 하나뿐이다.

내가 전국에서 맹위를 떨치다 보니 방역작업은 만만치 않다. 일단 방역할 인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며칠 전에는 방역작업을 하던 공무원이 과로로 숨지기까지 했다. 민간업체를 통해 방역 인원을 충당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역부족이다. 군인을 투입하느니 마느니 논쟁하는 사이 나는 괴물로 변해갔다.

2016년 12월 20일 오후 김포 통진읍 한 도로에 마련된 거점소독시설에서 방역 관계자가 조류 인플루엔자(AI) 차단을 위해 차량 소독을 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 황금알이 된 달걀

산란계의 죽음, 달걀 출하 금지. 달걀 수급에 문제가 생기자 가격은 급등했다. 현재 대형마트 기준 달걀 한판 가격은 7000원~8000원. 전달과 비교하면 평균 30% 이상이나 올랐다. 구매 수량 제한까지 있어서 많이 살 수도 없다.

달걀을 원료로 하는 식료품은 덩달아 가격이 오르거나 아예 만들지조차 못하는 상황이다. 달걀 반출을 제한적으로 실시했지만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달걀 대란이 수개월 더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닭의 해인 정유년에는 내가 닭들을 죽이는 일이 제발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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