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의 모던보이들은 무엇에 탐닉했을까?

신간 '표석을 따라 경성을 거닐다'

<표석을 따라 경성을 거닐다>는 12가지 테마 길의 39개 표석을 따라 100년 전이라는 시간과 경성(지금의 서울)이라는 공간으로 안내한다. 극장 길, 기생 길, 문인 길, 배움 길, 공원 길, 한양도성 길 등을 따라 걸으면 서양 문물 유입으로 근대화된 경성의 문화유산과 모던보이들을 만난다. 개화 길, 대한제국 길, 국장 길, 의열투쟁 길, 상흔 길, 애국지사 길 등을 걸으면 일제강점기 식민 지배로부터 벗어나 독립을 쟁취하는 영웅들을 만난다. 12가지 표석길뿐 아니라 함께 둘러보면 좋은 역사 문화 유적지 54곳도 그 의미와 함께 소개하는 이 책은 역사 문화가 살아 숨 쉬는 현장에서 활동하는 전국역사지도사모임의 첫 번째 책이다.

이 책의 제1부에서는 서양 문물의 유입으로 근대화의 격랑 속을 헤치며 나갔을 경성 사람들이 일제강점기에서 어떤 미래를 꿈꾸었는지 여섯 가지의 표석 길을 걸으며 상상해볼 수 있도록 했다.

그당시 경성의 모던보이들은 무엇에 탐닉했을까?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이 등장한 경성에는 영화와 음반 산업의 시작으로 예인으로서 대중문화의 스타가 된 기생이 나타났고, 근대 교육의 시작과 함께 1970~80년대를 뜨겁게 달궜던 학벌주의 교육의 맹아가 싹텄다. 식민지 시대를 사는 문인들은 다방이나 주점에서 문학을 논하거나 작품을 쓰면서 시대의 우울을 견디기도 하고 그 속에 침잠하기도 했으며, 왕권을 수호하고자 구축했던 한양도성이 경성 사람들의 대표적인 산책 코스로 각광을 받기도 했다. 일제에 의해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공원들이 경성의 경관 경험을 크게 바꾸기도 했다. 이러한 테마들은 경성 시대의 역사가 결코 단선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역력히 드러낸다.
개화와 동시에 들이닥친 일제강점이라는 압제의 그늘. 그때 경성 거리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을까? 극장 길, 기생 길, 문인 길, 배움 길, 공원 길, 한양도성 길의 표석을 따라 걸으면서 경성 거리의 모던보이를 만나보자.


이 책의 제2부에서는 근대화를 열망한 지식인의 개화운동에서부터 독립운동을 부른 황제들의 죽음,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성 각지에서 일어났던 항일 투쟁 등을 여섯 가지의 표석 길을 통해 소개한다.

19세기 중반 서양 열강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중국의 굴욕적인 모습은 조선의 입장에서 당시의 세계상을 뒤바꿔놓는 일대 사건이었다. 이를 목격한 개화파들은 여러 지식인들과 교우하며 새로운 선진 지식에 받아들이고 외세의 침략에 맞서는 동시에 자주적으로 근대 국가를 건설하고자 갑신정변을 일으켰지만, 외세에 의해 좌절되고 만다. 국권을 피탈당한 대한제국 황제인 고종과 순종의 국장을 치르면서 국민들은 분노와 설움, 안타까움을 담아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의열단을 비롯한 애국지사들은 무모한 일임을 알면서도 오직 나라의 독립만을 염원하며 목숨을 걸며 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이렇듯 주체적인 독립 국가라는 미래를 건설하기 위해 분투했던 경성의 의인과 지사들, 그 역사의 현장을 이제는 표석으로밖에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그 정신만은 근대적인 의미의 국가적 이상에 다가가기 위한 이후의 운동에 깊숙이 영향을 미쳐왔다. 개화 길, 대한제국 길, 국장 길, 의열투쟁 길, 상흔 길, 애국지사 길을 따라 걸으며 불굴의 의지와 민족정신을 외치는 영웅들을 만나보자.

이 책은 표석을 따라 서울을 도보 여행 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각 테마 길마다 표석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를 넣었고, 표석 외에도 함께 둘러보기 좋은 역사 문화의 유적지들을 표시하여 도보 여행자들이 100년 전 서울을 더 풍성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예를 들어, 경성 시대 예인들의 흔적을 훑을 수 있도록 일제강점기 대표 요릿집(기생들의 활동 무대다.)과 권번(지금의 연예인 기획사다.) 터를 지도에 표시했다.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공원의 역사를 상기하며, 오래된 나무들로부터 과거 서울의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도록 했다. 이밖에도 표석만큼이나 상상력을 자극하는 과거의 흔적들이 경성의 구석구석을 알리고 있다.

표석은 잊혀져가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 다시금 그어진 밑줄과도 같다. 그 흔적을 들여다보면서 사라진 것들을 상상해보고 그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 또한 역사를 옳은 방향으로 이끄는 하나의 태도가 아닐까. 이 책 《표석을 따라 경성을 거닐다》와 함께 경성의 다양한 길들을 걸어보자.

책 속으로

국권 피탈 이후 국가에 속해 있던 기생들은 자유로운 신분이 되었지만, 이러한 신분의 자유는 기생들의 생존을 위협했다. 기생들은 스스로 생계를 위해 자신의 상품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만 했다. 실력을 쌓은 기생들은 요릿집 외에 다양한 무대에서 공연을 했고, 소리나 춤이 뛰어났던 일부 기생들은 유명세로 인해 큰돈을 벌기도 했다. 무엇보다 기생의 변신 중 눈에 띄는 것은 대중문화 산업 속에서 연예인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 p.48, <개화 길- 개화파, 시대의 이단아들> 중에서

탑골공원에는 원각사의 창건에 대해 기록되어 있는 보물 제3호인 원각사지 대원각사비뿐 아니라 조선 시대에 사용하던 해시계인 앙부일영(仰釜日影)의 받침돌 등의 문화재가 있다. 1980년에 제작 건립한 3·1운동 기념탑, 3·1운동 벽화, 의암 손병희 동상, 한용운 기념비 등도 있어 표석을 따라 경성을 거니는 역사 탐방의 의미를 제대로 만날 수 있는 장소다.
- p.93, <공원 길-공공의 사회 공간을 만들다> 중에서

이화여고에서 정동교회로 가는 길목에 ‘보구여관 터’ 표석이 서 있다. 보구여관(保救女館)은 1887년 10월 미국 북감리회에서 설립한 한국 최초의 여성 전용 병원이다. 여의사 메타 하워드(Meta Howard)가 파견되어 여성 진료를 시작했다. 조선에서는 여성이 남자 병원에 갈 수 없는 풍속 때문에 1888년 11월 이화학당 구내에서 여성 환자를 대상으로 치료하였다. 명성황후가 의료 사업을 치하해 병원 이름을 하사하였고, 스크랜튼 등이 의료 선교 활동을 펼쳤다.
- p.150, <대한제국 길-정동, 개회기 근대사의 중심지> 중에서

전국역사지도사모임 지음 | 유씨북스 | 260쪽 | 13,800원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