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이 휩쓸고 간 세상은 처참하다. 폐허가 된 도시는 텅 비었고 모든 통신이 두절되어 살아남은 사람의 수를 가늠할 수도 없다. 자연은 더욱 황량해져, 나무가 시들고 동물들은 자취를 감추고 가뭄이 들어 개울이 마른다. 힉은 얼마 남지 않은 사슴을 사냥하거나 서투르게나마 텃밭을 가꾸어 식량을 조달한다. 버려진 집의 나무 패널을 떼어내 땔감으로 쓰고 좋지 않은 연료에 윤활제를 넣어 비행기 연료의 수명을 연장한다. 버려진 공항이라도 확보했기에 가능한 삶이고, 나머지 생존자들은 무장한 채 무리지어 떠돌며 서로를 약탈한다.
사방이 죽음이다. 죽지 않기 위해서는 죽여야 한다. 훈련받은 군인처럼 총을 쏴 침입자를 물리쳐야만 살아갈 수 있다. 파트너 뱅리는 혹시 모를 작은 위협에도 단호하게 대처하며 자신의 생존을 위태롭게 할 가능성이 있는 그 누구에게라도―설령 그것이 부엌칼을 든 어린 소녀일지라도―총을 쏘는 데 주저함이 없다. 하지만 힉은 언제나 총을 쏘기 전에 망설인다. 자기 자신을 포함해 지금 살아 돌아다니는 모든 사람은 다른 이를 죽이고 약탈한 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는 총을 쏘고 사람을 죽이기 전 도덕적으로 깊이 갈등한다.
힉은 동지애, 송어와 엘크가 존재하는 아름다운 자연, 품위와 같은, 이제는 사라져버린 모든 것을 그리워하면서 마지막 남은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이전’의 삶을 여전히 꿈꾸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면서, 동시에 “그저 하루하루를 생존하는 것 이상의 뭔가”가 있다고 믿고 싶어한다. 죽고 죽이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의 방식인 이 파괴된 세상에서도 그는 누군가와 유의미한 관계를 맺고 싶다는 갈망을 버리지 못한 채 사냥을 하고 낚시를 하고 텃밭을 가꾸고 경비행기를 몬다.
<도그 스타>는 어떤 묵시록 소설보다 시적이고 자연친화적이고 섬세하다. 온통 죽음뿐인 곳에서 끝없이 삶, 사랑, 고통, 슬픔을 탐구하는 힉의 성찰은 깊은 여운으로 작품에 풍성함을 더한다. 곳곳에서 예상치 못하게 튀어나오는 유머는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삶을 낙관하는 정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거대한 도시가 불에 타 까맣게 되고 비행기가 나뒹굴고 사람들이 죽어가도, 송어가 사라지고 거위가 사라지고 엘크가 사라져도, 희망만큼은 죽음에 정복당하지 않는다. 죽음에 닿지 않아서, 아니 죽음에 닿은 후에도 빛을 잃지 않아서 희망이다. 이름을 모르는 별자리에, 영영 잃고 말았으나 여전히 사랑하고 앞으로도 사랑할 것들의 이름을 붙여주는 힉에게서 우리는 그 희망의 노래를 듣는다. 절망의 끝에서 다시 한번 빛을 발하는 그 별빛 같은 순간들이 오늘 우리의 절망을 위로할 것이다. 흐려질지언정 사라지지 않는 별빛들이, 책장을 넘기며 함께 절망과 희망 너머를 오가는 우리 모두에게 흩뿌려질 것이다.
책 속으로
수많은 나무들이 죽은 채로 서서, 마치 수천 구의 해골처럼 흔들리고 수천 명의 유령처럼 한숨을 쉬지만, 그래도 다 죽진 않았다. 드문드문 녹색 숲이 보이고, 나는 그 숲의 열렬한 팬이다. 나는 이곳 평지에서 그들을 응원한다. 어서어서 자라거라 쑥 쑥 쑥! (…) 녹색 숲은 해마다 면적을 넓혀가고 있다. 생명이란 조금만 용기를 북돋워주면 그렇게 질긴 법이다. _본문 14쪽
그는 마치 종 안에 울려퍼지는 종소리처럼 자신의 고독을 편안해한다. 그편을 더 좋아한다. 죽을 때까지 그것을 지킬 것이다. 송골매가 하늘에서 다른 새를 죽이려고 살듯 그는 그 삶을 지키려고 산다. 자신의 내면에서 죽음과 아름다움이 서로에게 어떤 짓을 하는지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 _본문 84쪽
나는 울고 있었다. 나는 울지 않으려고, 나의 세상이, 그리고 그 세상 속에서 그나마 의미를 지닌 모든 것이, 내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울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했다. _본문 105쪽
삶과 죽음은 서로의 내면에 살고 있었다. 그게 바로 내가 깨달은 사실이다. 죽음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었고, 더 따스한 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지금 산에서 검게 죽어가는 나무에 살고 있는 한 마리 딱정벌레처럼, 면역력이 떨어진 신체기관이었다. 삶 역시 죽음 안에 있었고, 마치 독감처럼 지독하고 집요했다. 그래야만 했다. _본문 111쪽
너무도 처절하게 사랑해서 삶이 견디기 힘들어질 수도 있을까? 짝사랑 말고, 사랑에 빠져 있는 상태에서 말이다. 사랑에 깊이 빠져 있는데 처절하다. 그 사랑도 결국 끝나리라는 걸 알기 때문에, 세상 모든 건 결국 끝나니까. 끝. _본문 115쪽
웃음소리와도 같은 무엇. 한 송이 꽃이 이토록 작고, 이토록 덧없을 수 있다는 것, 하나의 눈송이가 이토록 크고, 이토록 집요할 수 있다는 것. 그 있을 법하지 않은 단순함. 나는 신음했다. 웃음과 울음 사이의 소리를 표현하는 단어는 왜 없는가? _본문 181쪽
나는 생각한다. 죽는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일까? 이렇게 혼자인 것? 사랑을 간직한 채 넘어서는 것?
_본문 249쪽
잃을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건 너무도 공허하고, 너무도 가볍고, 그렇게 부서져 모래가 된 나는 바람에 흩어지고, 너무도 보잘것없어서 하늘로 흩어져 별들의 모래 폭풍 속에 묻힌다. 결국 그곳이 우리 모두가 도달하는 곳이다. 나머지는 바람을 기다리며 얇게 해져갈 뿐이다. _본문 304쪽
피터 헬러 지음 | 이진 옮김 | 문학동네 | 496쪽 | 15,000원
수록 작품
『셜록 홈스의 모험』- 셜록 홈스가 경의를 표하는 유일한 여성, 아이린 애들러 등장! 감쪽같은 변장과 탁월한 계책으로 홈스를 도발하는 「보헤미아 스캔들」 외 열한 편 수록.
『셜록 홈스의 회상록』- 사상 쵱가의 범죄자 모리아티의 존재를 눈치챈 홈스.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그를 막기 위해 인생을 걸고 결전을 준비한다. 시리즈에서 가장 치열한 공방전 「마지막 문제」 외 열 편 수록.
『셜록 홈스의 귀환』- 죽은 줄 알았던 홈스가 살아서 돌아왔다. 정다운 친구 존 왓슨은 다시 그의 모험을 기록하는 전기 작가가 된다. 두 친구가 새롭게 모험을 떠나는 「빈집의 모험」 외 열두 편 수록.
『셜록 홈스의 마지막 인사』- 은퇴했던 홈스가 돌아왔다! 독일의 첩보 계획을 저지하고 영국을 지켜낸 홈스는 국가 영웅의 자리에 오른다. 1차세계대전 직전 국가 간 첨예한 긴장을 보여주는 「그의 마지막 인사」 외 일곱 편 수록.
『셜록 홈스의 사건집』- 독자들이여, 이제 셜록 홈스에게 안녕을 고할 시간이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탐정, ‘셜록 홈스’ 시리즈의 마지막 권. 홈스가 직접 쓴 단편 「사자 갈기」외 열 편 수록.
아서 코넌 도일 지음 | 엘릭시르 | 세트값 7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