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의 직책수행 성실성 여부는 탄핵소추 사유가 될 수 없다는 기존 원칙을 고집하지 않고, 22일 첫 준비절차에서부터 석명처분을 하면서다.
석명권은 사건의 진상을 명확히 하려고 당사자에게 질문하거나 그 입증을 촉구하는 법원의 권능을 의미한다.
헌재의 준비절차 담당재판부는 박 대통령 측에 세월호 참사 당시 ▲박 대통령의 위치 ▲시간대 별 공적‧사적 업무 ▲보고 받은 내용과 시간 ▲이에 따른 지시내용 등을 제출하라고 했다.
특히 "사적인 부분이 있을 텐데 그걸 시각별로 좀 밝혀달라"고 구체적으로 주문도 했다.
"그날은 대부분의 국민들은 자신의 행적을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며 "피청구인(박 대통령) 역시 그런 기억이 남다를 것"이라는 말도 헌재는 덧붙였다.
'기억이 안난다'는 식으로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할 구석을 미리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때문에 이번 석명처분은 헌재가 직접 박 대통령의 당시 업무 공백과 대응 미비에 대해 살펴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는 원칙적으로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한 판시와 다른 결론에 헌재가 도달할지도 주목된다.
노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엔 경제정책 실패가 직책수행 성실성과 관련한 쟁점이었는데, 세월호 참사는 청소년 등 국민의 생명이 위중한 결정적 순간에 대한 평가라 '예외적으로' 사법적 판단이 이뤄질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되면서다.
국회 측은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이 오후 5시를 넘겨 재난안전대책본부에 나타나 '구명조끼를 학생들이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는 사태와 동떨어진 발언을 했다"고 주장한다.
대통령 선서조항인 헌법 69조에서 규정한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을 위한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했는지가 이번 탄핵심판에선 쟁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국회 측은 미국 클린턴, 닉슨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 사유에 예외 없이 '선서위반'이 포함돼있다는 점도 헌재에 강조했다.
"대통령이 마음대로 다른 공무원과 달리 관저에서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지도 규명돼야 한다"는 게 국회 측 문제제기다.
이에 대해 대통령 측은 불성실성 자체가 탄핵사유가 될 수 없다며 2004년 탄핵심판 판시로 저지선을 이미 구축한 상태다.
"국회 논리대로라면 향후 모든 인명피해 사건에서 대해 대통령이 생명권을 침해했다는 결론이 초래"된다고도 맞섰다.
"불행한 일이지만, 대통령이 직접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명권을 침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는 게 대통령 측 대리인 이중환 변호사의 기자회견 발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