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총체적 난국에 빠진 한국 사회와 정치 상황의 원인을 '냉소주의'에서 찾는다. 우선 박근혜 정권이 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국민들이 정치에 대해 가졌던 냉소주의 때문이다. 정치 지향에 대한 냉소와 정치 역시 하나의 상품으로 소비하는 소비주의로 인해 진보 정치가 외면받게 되었고, 이를 발판으로 보수 정권이 대선에서 이길 수 있었다. 한편 박근혜 정권이 실패하게 된 원인 역시 권력 자체의 냉소적 정치의식 때문인데, 그 대표적 예가 세월호 사건 이후 정부가 보여준 대처 방식이다. 박근혜 정부는 구난 작업에서의 무능과 실패를 반성하고 제대로 된 안전 대책과 정책을 내놓기는커녕 난데없는 ‘해경 해체’라는 처방 아닌 처방과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작위적 연출 등 문제의 근원 해결이 아닌 정치적 리스크를 줄이는 데에만 골몰했는데, 이는 바로 권력 자체가 냉소적 정서를 바탕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냉소주의는 무엇 때문에 생겨나게 되었는가? 그 근원은 다름 아닌 '열등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인터넷이 발달은 열등감을 더욱 일상적으로 만들었다.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되는 상황에서는 나의 합리성과 열등하지 않음을 증명해야 한느데, 이는 소비주의 형태로 발현된다. 이러한 효율적 소비주의야말로 냉소적 세계관 위에 성립되는 것이다.
효율성 제일주의로 인해 벌어진 비극이 바로 세월호 참사다. 세월호는 체제의 위기라기보다는, 체제가 ‘효율성’이란 이름 아래 돌아간 결과였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참사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효율성의 신화’를 깰 필요가 있다.
우리는 투표를 할 때조차 소비주의적 관점에서 후보를 정한다. 최근 선거들에 등장한 공약들을 보면 더 이상 보수와 진보를 논하는 것이 의미 없는 경우가 많아졌다.
남은 건 어떤 인상뿐이다. 선거전에서 진보 정당 몫의 표를 흡수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실제 제 1야당이 충분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급진적인 구호까지 내세우는 데 망설임이 없고, 이 때문에 중도층을 잃었다는 비판이 나오면 다시 거리낄 것 없이 중도적 태도로 복귀하는 데 한 점의 의심도 갖지 않는다. 정치 세력이 그들 스스로 주장하는 이념과 가치에 동의하는 더 많은 대중을 조직하기보다, 더 많은 대중이 원하는 쪽으로 자신의 존재 의의를 바꾸는 데 익숙해지고 있다. (본문 218쪽)
이런 상황에서 보수와 진보의 경계는 모호해졌고, 정당들은 명확한 정치적 지향을 잃고 ‘보따리장수’로 전락한 지 오래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지금까지 이야기한 열등의식, 냉소주의, 소비주의라는 세 가지 차원에서 화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것이 ‘극복’이 아닌 ‘화해’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 세 개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고, 그것과 완전히 결별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열등의식과 화해하기 위해서는 경쟁에서 지더라도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며, 이것은 주체들의 연대에서 시작할 수 있다. 또 냉소주의에 대해서는 이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소비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에게 생산자의 존재를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노동자인 자신을 자각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러한 화해를 통해 정치적 냉소주의를 무력화할 때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풀어낼 수 있다. 당위와 명분의 정치를 되찾을 때 소비의 대상에 머무르고 있는 정치를 구해낼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김민하 지음 | 현암사 | 320쪽 |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