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쪽 벽면에 개성공단 관련 기사와 성명서가 가득 붙었고, 10여 개의 책상에 회의 문건이 잔뜩 쌓여있던 사무실은 이제 문이 잠긴 채 텅 비어있다.
이 곳에서 만난 개성근로자대책협의회 김용환 위원장은 "개성공단 폐쇄 직후 박원순 서울시장이 12월까지 사무실을 임대료 걱정 없이 지내도록 해줬다"며 "약속한 시일도 다 찼고, 스마트폰으로도 연락할 수 있으니 일단 사무실은 비우기로 결정했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설날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2월 11일, 개성공단 폐쇄 소식을 TV로 전해들었던 개성공단 사람들은 올 한 해가 다 가도록 개성공단으로 가는 길이 굳게 막힐 줄 상상이나 했을까.
갈 곳도 할 일도 잃은 개성공단 사람들은 "답답한 마음에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다 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앞서 근로자협의회는 지난 5월 '개성공단 전면중단' 조치가 위헌임을 확인해 달라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입주기업이 모인 개성공단기업협회는 지난 15일 개성공단 폐쇄 과정에 청와대 비선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수사해달라고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요청했다.
또 입주기업에 물품을 제공했던 '개성공단 영업기업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6일부터 실질적 보상을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무기한 천막 농성에 돌입한 상태다.
이에 대해 정부는 그동안 개성공단 피해자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통일부는 경협보험과 교역보험 등을 통해 5200억 원 가량을 지원하고, 5500억 원 특별대출 패키지 등 금융 지원을 추진하는 한편, 대체공장 부지를 마련해 일부 업체가 이미 입주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업들이 신고한 개성공단 가동 중단에 따른 피해액은 9446억 원, 정부가 인정한 피해액만도 7779억 원에 달하지만, 이마저도 지원이 다 되지 않은 상태다.
게다가 개성공단에 입주했던 의류업체 대표 정기섭 씨는 "공장 설비가 다 개성에 있는데 돈을 주든 부지를 주든 영업할 도리가 없다"며 "대부분 인건비 문제로 개성으로 옮겼던 업체여서 남한에서는 어차피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또 "사기업이 잘못한 것도 아니고 정부가 대책 없이 공단을 폐쇄했으면 지원이 아니라 보상을 해야 한다"며 "결국 나중에 다 갚아야 할 대출금으로 생색만 냈다"고 꼬집었다.
결국 개성공단을 떠나온 기업 가운데 영업을 재개한 곳은 20%도 채 되지 않는 상황, 정부가 제공한 대체공장 지원책에도 100곳이 넘는 개성공단 입주기업 가운데 30여곳만 응했을 뿐이다.
개성공단에 시계공장을 '올인'했다는 정지태 씨는 "폐업하면 개성공단 지원명목으로 지원명목으로 받은 보험금을 고스란히 토해내야 하는 상황"이라며 "사업을 정리하지도 못한 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로 지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또 노동자들에게도 월 임금 6개월분(1716만 원)의 위로금을 754명의 노동자에게 총 118억원을 지급했고, ▲고용유지지원금(28.4억 원) 및 휴업수당 추가지원(9.3억 원) ▲건보료 50% 감면(649명) ▲긴급생계비(2700만 원) 등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고용유지지원금이나 긴급생계비, 건보료 감면 등도 개성공단 노동자들을 위한 특별대책이 아닌 기존에 있던 사회안전망 제도에 불과하다.
결국 지난 9월, 6개월 기한이 지나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 지급이 끊기자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는 개성공단 기업 대부분은 직원들을 대거 해고했다.
김 위원장은 "40, 50대 숙련공들이 새로 취직하기가 쉽겠느냐"며 "대부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일용직으로 막노동을 하거나 실업 급여를 받으며 지내는 형편"이라고 전했다.
뿔뿔이 흩어진 개성공단 사람들이 하나같이 바라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개성공단 폐쇄를 선언했던 설날 연휴 이전처럼, 10년 넘게 가꿔온 개성공단의 일터로 되돌아가는 것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