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 대통령 언론특보 출신이 사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맞선 해직기자들과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이하 YTN지부) 조합원들도, 당시 낙하산 사장으로 지목된 구본홍 씨조차도 '해직사태'가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은 모르지 않았을까. 그러는 동안 2999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21일 오후 7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 누리꿈스퀘어에서 '7년, 그들이 없는 언론' 제작보고회 및 YTN 해직 3000일' 행사가 열렸다. 내년 1월 12일 개봉하는 영화 '7년, 그들이 없는 언론'은 YTN, MBC에서 해고된 언론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와 DMZ영화제에서 가편집본이 상영된 바 있다.
한국독립영화협회 고영재 이사장은 "그동안 영화 상영을 할 때마다 일반인 분들은 대부분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여전히 해직된 기자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도 많다. 그만큼 영화를 통해 국민들과 어떻게 함께 할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며 "해직언론인 문제 해결이 대한민국 전체 문제를 해소하는 첫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해직언론인들이 복직되고 언론이 민주화돼 자유와 독립성을 쟁취할 방도를 찾을 때까지 열심히 배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YTN 해직사태 당시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을 맡았던 최상재 전 위원장은 "세 분이 복직을 해야 저의 언론노조 위원장 임기가 비로소 끝난다고 생각한다"며 "마지막 으로 지침을 드리겠다. 해직 조합원들은 복직 준비를 하십시오. 돌아가서 잘 못하면 쪽팔리지 않나. 3000일 동안 못한 일들을 다른 분들보다 더 해야 하니 절대 아프지 마십시오. 힘내십시오"라고 격려했다.
◇ "지금 3000일인데, 해직 4000일은 안 왔으면"
아직 해결되지 않은 '해직사태'를 조명한 영화이다 보니 상영 도중에도 눈물을 참지 못해 이따금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마지막 장면이 나오고 나서도, 극장 분위기는 숙연했다.
영화가 끝나고 등장한 뜻밖의 편지에 훌쩍임은 계속됐다. 바로 노종면 해직기자의 딸 해민 씨가 보내는 편지였다.
해민 씨는 "사랑하는 아빠, 아빠가 해직됐을 때 나 초등학교 4학년이었잖아. 그때는 나이도 어렸고 해직이라는 말이 뭔지도 몰라서 아빠 직업란을 채우는 게 누군가한테는 힘든 일일 수도 있다는 걸 몰랐어. 내가 실감하기 시작한 건 5학년 때 수술 후에 내 생일 때 아빠가 감옥에 갔을 때였어. 아빠가 없는 생일이 어린 나한테는 꽤 충격이었던 거 같아. 왜 내 생일에 아빠 없을까, 왜 감옥에 갔을까"라고 말했다.
이어, "학년이 바뀔 때마다 아빠 직업에 뭐라고 써야될지 어떻게 써야될지 친구한테는 뭐라고 둘러대야 될지 너무 고민했어. 지금은 진짜 멋있고 자랑스러운 아빤데 그때는 원망이 더 컸던 거 같아. 지금 내가 이런 생각할 수 있는 것도 아빠의 멋있는 선후배 아저씨들 언니들 그리고 엄마 덕분인 거 같아. 오늘 나한테 모두 아빠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줘서 알 수 있었어"라고 전했다.
해민 씨는 "아빠, 내가 진짜 많이 존경하고 항상 감사하고 너무너무 사랑해. 우리 아빠가 아빠라서 너무 행복해. 조금 더 힘내서 세상에 보여주자"며 "정의가 이긴다!"라는 말로 편지를 마무리했다.
조승호 해직기자는 "제가 (해직) 600일 때 700일은 안 왔으면 좋겠다고 하는 영상이 있더라. 그걸 보고 친구가 '야, 그때 너 참 순진했다'고 하더라. 지금 보니까 참 순진했던 것 같다. 어차피 순진할 거, 지금 3000일인데 4000일은 안 왔으면 좋겠다. 여러분들 앞에 이렇게 나와서 해직자로서 인사하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현덕수 해직기자는 "영화 보기 전에 자리 앉았는데 제 동기 한 명이 와 가지고 '야 왜 거기 앉아있어? 돌아다니면서 인사해야지'라고 하더라. 제가 '야 무슨 3000일이 벼슬이냐 내가 돌아다니게' 이렇게 한마디 했는데 금방 후회가 들더라"며 "이 3000일이 1년이 8번 하고도 20일이 더 지난 긴 시간이지 않나. 이 시간을 그래도 동요하지 않고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여기 계신 우리 동료들, 이 자리엔 없지만 우리들을 성원해 주신 많은 시민들 때문에 3000일을 견뎌온 것 같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권석재 기자는 "3000일이라는 건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 이런 긴 시간 동안 여러 동료들이 같이 똘똘 뭉쳐 지금까지 버텨낸 것, 해직자 선배들도 마음 흔들리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모두 복직자 대표로 정말 감사의 말씀 드리겠다. 감사하다"고 말했다.
언론노조 YTN지부 박진수 지부장은 "저는 (YTN이) 2008년 전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정방송 요구를 해서 부당하게 해고되고 징계 받더라도, 우리의 절규와 외침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세 분이 오셔야 YTN의 퍼즐이 맞춰진다"고 말했다.
언론노조 김환균 위원장은 "해고 동지들이 화면 속에서 뉴스 전달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때가 바로 대한민국 언론자유가 그나마 좀 나아졌구나 하는 생각을 할 것"이라며 "쉼 없이 달려왔지만 우리는 지치면 안 된다. 숨가쁘고 다리 힘 풀리더라도 조금만 더 같이 뛰자. 여러분들 다 느끼시지 않나. 이제 골인 지점 다가오고 있다는 것. 거기에 다다를 때까지 한 사람의 낙오도 없이 조금만 더 뛰자"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