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지주회사제.. 총수일가 '지배력 강화수단'

"이재용 부회장 꼼수 통해 지배력 강화 시도 막아야"

재벌의 지배구조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지주회사전환이 적극 장려되고 있으나 자회사에 대한 의무소유비율이 턱없이 낮아 지분이 낮은 총수일가가 합법적으로 지배력을 강화하는 방편으로 이용되고 있다.

지난 9월말 현재 우리나라의 지주회사 숫자는 162개로 전년보다 22개(15.7%)가 증가했다.

이는 지난 1999년 4월 지주회사제도 도입 이후에 가장 큰 폭의 증가이다. 정부의 전환 장려정책이 크게 작용했다.

"지주회사 체제가 거미줄 같은 복잡한 계열사간 출자구조를 지주회사와 자회사간 수직적 구조로 단순, 투명화한 진화된 형태로 보고 적극 권장한다"는 것이 관련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의 입장이다.

그 과정에서 지주회사 전환, 설립을 보다 용이하게 하기 위해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에 대한 의무소유비율을 낮추는 등 규제를 완화해 왔다.

그 결과 재벌의 지주회사 전환도 오히려 박수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삼성그룹이 암묵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지주회사 전환도 시장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그 과정에서 걸림돌인 중간금융지주회사 도입방안과 관련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앞장서서 조속한 입법을 촉구하고 있는 형국이다.

과연 지주회사로 전환되면 우리나라의 재벌 지배구조문제가 말끔히 해결돼 없어지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많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주회사제도에 대해서는 경제력집중의 폐해가 우려된다며 금지돼 오다가 어느 때부턴가 세상에서 가장 투명한 제도인 것처럼 과장 평가되면서 이것을 위해 많은 것을 양보해 줘야 한다는 논리가 팽배해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재벌들이 그쪽으로 몰고가고 있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지주회사로 전환해도 거미줄처럼 돼있는 출자구조를 갖고 있는 재벌지배구조의 문제점이 그대로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지주회사로 전환하면 거미줄처럼 돼있는 출자관계가 투명해진다는 장점은 있지만 지배권의 흐름과 현금흐름이 괴리를 보이는 문제는 조금도 해결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다. 지주회사로 전환해도 총수가 기업에 돈은 적게 넣고 지배력은 강화되는 문제는 여전히 계속된다”고 전성인 교수는 강조했다.

이것은 지주회사 제도 자체가 갖는 문제라기보다는 우리나라 제도의 미흡함에 기인한다.

김상조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대자본주의의 중요한 경제활동주체는 기업이 아니라 기업집단이다. 기업집단의 조직형태 중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가장 우월한 조직형태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 지주회사제도이다. 다만 문제는 우리나라 제도가 거기에 못미쳐 미흡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엄밀히 말해 무늬 뿐인 지주회사 제도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지주회사 제도가 무늬 뿐인 제도가 된 이유는 지주회사가 자회사에 대한 지분을 적게 갖고도 자회사를 지배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지주회사가 자회사의 지분을 100% 가까이 갖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상장회사는 20%, 비상장회사는 40%의 지분만 가지면 되도록 제도가 돼있다.

총수 일가는 상장회사의 경우 지주회사제도를 통해 자회사 지분의 20%만을 가져도 자회사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재벌지배구조의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던 소유와 지배권의 괴리 현상이 조금도 시정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지주회사 전환이 재벌지배구조의 폐해를 해소하지 못했다는 실례는 SK 그룹이 보여준다.

전성인 교수는 “재벌그룹 중 SK는 SK증권을 팔면서 비금융회사로만 해서 지주회사체제를 갖췄다. 하지만 그 이후 최태원 회장이 두번이나 회사 돈을 횡령해서 감옥에 갔다. 이것은 지주회사가 지배구조를 깨끗하게 정리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더욱 문제인 것은 이러한 무늬만 지주회사제도 아래서 재벌들이 꼼수를 동원해 지주회사 전환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추진은 삼성의 지주회사 전환의 첫걸음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삼성은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최순실까지 연결된 각종 로비를 통해 합병비율을 이재용부회장에게 유리하게끔 맞췄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 현행 제도에서 금지돼 있는 중간금융지주회사 도입을 위한 로비도 치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입장에서 그룹의 양대 기둥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버리지 않고 가져가기 위해서는 중간금융지주회사 도입이 불가피하기 때문이고 여기에 정부도 적극 호응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적 분할시 자사주의 신주배정을 이용해 자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공고히 하는 것도 문제이다.

지금까지 이를 통해 SK를 비롯한 많은 대기업들이 지주회사 전환을 해왔고 특히 자사주가 가장많은 삼성도 이 카드를 쓸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를 금지하는 법안이 발의가 돼있지만 금지여부를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를 이용해 총수의 자회사에 대한 지배력이 공고해지고 그렇게 되면 주주들은 힘을 발휘하기가 더 힘들어진다는 점이다.

이원일 제브라투자자문대표는 “지주회사제도는 일반 주주들에게는 좋지 않은 제도로,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주주들이 반대해 우리나라만큼 지주회사가 일반화돼 있지 않다. 특히 지주회사 전환을 위해 인적 분할하면서 자사주에 신주를 배정하게 되면 주주들의 의결권은 더욱 약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서 지주회사 전환을 막을 수는 없다.

현재의 재벌지배구조가 최악이기 때문이다.

김상조 교수는 “현재 재벌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지주회사 전환을 막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우리도 선진국과 같이 자회사에 대한 의무지분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공정거래법.상법.세법 등을 종합적으로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재벌, 특히 삼성이 꼼수를 통해 지배력을 강화하려고 기준이상으로 지분을 끌어올리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김상조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이 부회장은 20% 이하의 지분을 갖고도 자신의 경영능력을 통해 책임지고 기업의 성과를 높이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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