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없는 기자회는 "정부는 비판을 점점 더 참지 못하고, 이미 양극화되어 있는 미디어에 간섭해 언론 독립성을 위협하고 있다며 "최대 징역 7년을 선고할 수 있는 명예훼손죄는 미디어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게 만드는 주 원인"이라고 밝힌 바 있다.
2008년 보수정권이 들어선 이후 권력 감시와 비판을 생명으로 하는 언론의 칼날은 점점 무뎌져왔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단원고 학생 전원구조 등 파장이 큰 오보로 인해 '기레기'(기자+쓰레기의 합성어로 기자를 비하하는 말)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쓰일 정도였다. 특히 방송법 등을 통해 더 무거운 공적책무를 지고 있는 공영방송들의 쇠퇴가 본격화됐다.
14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언론장악공범 청산과 언론장악 방지법 토론회'에서는 현재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방송법 등 4개 법 개정안이 통과되어야, 권력의 '언론장악' 시도를 방어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잇따라 터져나왔다. 이날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 유승희 의원, 국민의당 김경진 의원, 정의당 추혜선 의원과 언론개혁시민연대, 전국언론노동조합, NCCK언론위원회, 표현의 자유와 언론탄압 공동대책위원회가 공동 주최했다.
◇ "박정희식 언론시스템 청산해야… 언론적폐 청산 특별법, 공영방송법 제정하자"
'언론의 부역자 청산과 민주언론인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발제를 맡은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김춘효 외래교수는 현 언론 상황을 "박정희식 언론시스템"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전체주의적이며 절대 소수의 엘리트들이 있고 시민은 개돼지 취급을 받으며 돈(수신료 등)만 내야 하는 언론구조, 1960년대 박정희 대통이 만든 시스템이 청산되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그래서 30년이 지나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이를 바탕으로) 언론통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미디어는 기본적으로 권력과 국민을 연결해주는 다리"라며 "박근혜 대통령은 투표로 선출된 권력이지만, 이미지 조작은 언론이 했다. 언론은 이미지를 만들기 때문에 검증 책임이 있다. 그간 언론사 내부 최고권력자들에 대해 국민이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한 논의가 부족했고 그걸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언론적폐를 청산하기 위한 특별법 △공영방송법 제정을 제안했다.
언론적폐 청산 특별법은 언론부역자 청산을 위한 진상규명위원회 설치 및 피해 언론인에 대한 보상과 명예회복을 주 내용으로 하며, 1974년 동아일보 해직사태, 1980년 언론인 대량 해직사태, 2008년 이후 벌어진 해직사태 피해자들이 대상이 된다.
공영방송법의 경우, 각기 다른 이름의 방송법 적용을 받고 있는 KBS, MBC, EBS 등 공영방송사들을 통합된 법을 통해 체계적으로 운영·관리하자는 취지에서 제안된 것이다. 김 교수는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위해 현재 정치권 영향을 받는(여당 추천 인사가 다수를 점하는) 공영방송 지배구조가 '국민참여형'으로 개편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방송법 개정안 처리 위해 국회 더 노력해야"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언론적폐 청산 특별법', '공영방송법' 제정 제안에 공감을 표했으나, 그에 앞서 지난 7월부터 4달 넘게 국회에 계류 중인 '방송법 개정안'부터 시급히 처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회의 개최를 거부하는 등 몽니를 놓는 새누리당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4월 총선으로 다수를 점했음에도 무력한 모습을 보이는 야당에 대한 질타도 함께 나왔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공정방송추진위원회 정수영 간사는 "사실 방송법 개정안만으로는 좀 부족하다. 그래서 공영방송법을 통해 공영방송을 일괄적으로 관리·감독하는 것에 동의한다. 다만 아직은 거기까지 가기 요원하다"며 "그보다 아래 단계인 방송법 개정이 급하고 절박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 간사는 "오늘 의원분들이 계시니 미방위 위원들께 단호한 입장을 요구하고 싶다. (야당에서) 여당 신상진 미방위원장과 박대출 간사와 직접 협상하겠다는 약속 많이 하셨지만, 이게 해결이 됐나. 밀어붙여주셔야죠. 언제까지 협상 안 된다는 이유로 더 잘해보겠다고만 하실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저희 KBS도 욕을 많이 먹는 것 알지만 총파업을 벌였다. 총파업 쉬운 것 아니다. 파업 첫날 5시, 7시, 930뉴스, 아침뉴스타임 아나운서 조합원 전부 파업에 동참해 프로그램 퇴출 위기에 놓여있지만 이렇게 노력을 하고 있다. 의원님들도 방송법 개정을 위해 모든 걸 걸고 있나. 욕먹는 KBS도 이렇게 노력한다"며 "정치권의 분발을 더 강력히 촉구한다"고 전했다.
그는 "2012년 170일 파업 이후 100명 가까이 새로운 인력이 채용됐다. 공정방송 요구를 하고 문제제기를 하면 나만 빠지고 다른 사람들로 채워진다는 의미다. 부당한 지시 참으면서 자리 지키기 위해 한 번, 두 번, 세 번 접어온 결과 현재 MBC 상황이 된 것이다. 한 언론사의 특이한 상황이라고만 생각지 말고 본인들이 그 위치에 계셨더라면 어떤 결정을 했을까 한 번 관심 가져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사장 선임할 때 여야 정치권 어느 쪽으로도 쏠리지 않는 사장을 뽑는 것은 방송 정상화를 위한 첫 걸음이다. 지금 그 한 걸음조차 못 떼고 몇 년 허비하고 있지 않나. 공영방송 내부에서 싸우고 투쟁하더라도 외부 관심이 없으면 싸움이 빛을 바랠 수밖에 없다. 주인인 국민들이 관심 갖고 (언론장악 시도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들이 하루빨리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민변 언론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강혁 변호사는 언론장악 사태와 관련한 법적 대응에 대해 언급했다. 이 변호사는 "지난달 언론노조가 김영한 비망록에 근거해 박 대통령, 김기춘 전 비서실장, 김성우 전 홍보수석, 최성준 방통위원장을 직권남용죄와 방송법상 부당간섭죄로 형사고발했다. 이밖에 김시곤 녹취록, 백종문 녹취록 등도 특검에 의해 결실 맺을 수 있도록 안팎에서 힘 모아줘야 한다"며 "민사적으로는 (언론부역자들의)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김영한 비망록'이 언론장악의 명확한 근거로 쓰일 수 있게 자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도 전했다. 이 변호사는 "파편적인 메모 형태로 돼 있어 이것만으로는 근거로 삼기에 부족하다. 부분들의 퍼즐을 맞춰 명확히 증명할 수 있도록, 각 언론주체들이 우선적으로 규명해야 법적 대응에 실효성이 생길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NCCK 심영섭 위원은 "언론인들의 자발적 부역을 해결하기 위해 3가지가 필요하다고 본다. 일단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공정방송 관련) 노력을 하더라도 엉뚱한 곳에 발령받아 아무일도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제작자율권을 보장하고 언론인들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정치지망생이 지나치게 많은데, 이들이 (언론사 내부에서) 의사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언론 100적이 선정되더라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언론을 권력 유지 혹은 쟁취의 수단으로 생각해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시도가 포기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표현의 자유와 언론탄압 공동대책위원회 임순혜 운영위원장은 신상진 미방위원장, 박대출 간사의 사무실 앞에서 '방송법 처리 지연'에 대한 항의 집회가 열렸음에도 상황이 진전되지 않고 있고, 내일(15일)로 예정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청문회장에도 언론장악 부역자가 아닌 세계일보 조한규 전 사장 등 피해자만 나오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방송법 개정안을) 연말에 통과시켜서 다시는 언론이 정권의 입맛에 휘둘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언론장악되지 않을 수 있는 최소한의 마지노선, 조속히 통과돼야"
박 의원은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마땅한 수단 없다는 게 난감하긴 하지만 우호적인 여론 형성하고 압박하면 결국 길은 열릴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저희는 법안소위 상정 보장 하에 논의가 진척돼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요구하고 있고, 미방위가 20대 국회 들어서 법안 한 건 심사하지 못한 오명을 안고 있기에 (여당 역시) 부담이 될 것이다. 조속히 법안심사에 착수해 방송의 공정성·공영성·공익성 보장되는 방향으로, 방송을 국민의 품으로 돌려드리는 시대적 소명 다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신경민 의원은 "MBC나 KBS 내부를 보면 (불공정 보도에 대해)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발적 충성과 복종이 행해지고 있기 때문에, (보도의) 질적으로 보면 5공 이전 상황으로 후퇴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특별다수제(사장 선임 시 이사회 2/3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 제도)는 엄청난 개선안도 아니다. 개혁과 개선의 시작일 뿐"이라고 전했다.
더불어민주당 유승희 의원은 "법안은 조속한 시일 내에 통과되어야 하는 의무사항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상임위에서 논의조차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것, 해당 상임위로서 굉장히 책임있고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지 않을 수 없다"며 "정권이 바뀌든 안 바뀌든 간에 반드시 통과되어야 할 최소한의, 언론이 장악되지 않을 수 있는 최저 마지노선이기 때문에 반드시 통과되어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한편,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야3당과 무소속 의원 162명은 지난 7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률안'을 공동발의했다. 방송법 개정안에는 현재 여야 7:4로 기울어진 이사회 구조를 여야 7:6으로 완화시키고, 중립적인 사장추천위원회를 꾸리며, 사장 선임과 같은 중요한 사안을 의결할 때에는 특별다수제(전체의 2/3 이사들의 찬성이 있을 때 가결하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실질적으로 제작자율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편성위원회를 꾸리되 이를 지키지 않을 시 처벌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