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회의장이 '대통령(박근혜) 탄핵소추안' 투표 결과를 발표하면서 '可 234표' 라고 하는 순간 방청석에서는 '와'하는 환성과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정 의장이 "대통령 박근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음을 선포한다"면서 의사봉을 두드리자 '국민이 이겼다'는 김희선 전 국회의원의 환호성이 터져 나오고 와~~ 하는 함성과 박수소리에 이어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자리한 방청석에서 만세소리가 울려 퍼졌다. 방청객들도 만세를 따라 외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반면 국회 본회의장의 분위기는 무거운 적막감이 감돌았다. 일부 의원들이 국회의장의 표결 결과 발표에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만 대부분 움직이지 않고 차분하게 지켜봤다.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역사적인 현장을 지켜보기 위해 방청을 왔다"는 김희선 전 국회의원(16대, 17대)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와는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말했다. 2004년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단상을 점거한 채 표결을 강행했고 이를 막으려는 여당의원들은 투표함을 던지고 고함을 지르면서 몸싸움을 벌이는 등 아수라장이었지만 2016년 탄핵표결은 질서정연하고 순조롭게 이어졌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의 수기 투표는 당초 20분 정도를 예상했지만 30분이 걸렸다. 그 이유는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의 투표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개표를 하는 의원들이나 결과를 기다리는 의원들 방청석의 방청객들 모두 조용했고 사진기자들의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만 울렸다.
개표가 막바지에 이르면서 민주당의 한 검표위원이 추미애 대표와 우상호 원내대표의 좌석으로 가서 결과를 보고하는 듯 했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새누리당 의원들도 침묵하며 개표결과를 기다렸다.
정세균 의장이 개표 결과를 발표한 뒤 새누리당 의원들의 좌석에서는 낮은 탄식이 들렸다. 탄핵에 반대한 국회의원이 56명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새누리당 의원들은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흐트러지지 않고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정세균 의장이 탄핵 가결을 선포한 뒤 의장으로서의 입장을 밝히고 산회를 선포하자 정진석 원내대표와 이정현 대표를 시작으로 서둘러 자리를 떴다.
방청석에서 내려다본 국회 본회의장은 언제 역사적인 탄핵을 가결했나 싶을 정도로 이내 침묵으로 빠져들었다.
2016년 12월 9일은 20대 국회가 18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시킨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다.
필리버스터 때에는 국회의원이나 각 당 원내대표실에 부탁하면 방청석 확보가 가능했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좌석은 한정돼 있는데 비해 방청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자리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국회를 출입하는 기자들도 방청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국회사무처는 본회의 방청석 266석 가운데 101석만 일반 방청객에게 제공했고, 101석의 방청권은 각 당의 의석 비율에 따라 새누리당 43석, 민주당 40석, 국민의당 13석, 정의당 5석 순으로 배정됐다. 민주당은 방청권 40매 모두를 세월호 참사 유족들에게 배정했고, 국민의당은 사드대책위원회와 백남기대책위원회, 국정교과서 저지넷, 규제프리존반대시민사회연대 등 4개 단체가 돌아가면서 표결 과정을 볼 수 있도록 했다.
방청석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이미 취재기자들이 방청석 맨 앞자리와 기자석을 차지하고 앉아 입장하는 국회의원들 사진을 촬영하거나 기사를 송고하거나 매우 분주했다. 그런 와중에 국회 경위들이 대거 동원돼서 각 당별로 방청객을 분리하고 좌석 중간 중간에서 방청객들의 행동을 통제했다, 특히 세월호참사 유가족들 주변에만 7~8명의 경위들이 배치돼 오히려 자유로운 방청 분위기를 조성하지 못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엄중한 상황임을 이해하지만 조금 부드럽게 자연스러운 질서유지가 필요해 보였다.
운명의 3시가 다가오면서 야당의원들이 먼저 입장하기 시작했고 새누리당 의원들이 가장 늦게 본회의장에 들어섰다. 그리고 정세균 국회의장의 개회선언을 시작으로 2016년 12월 9일은 '탄핵절'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남긴 채 역사 속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