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결 처리된 234표의 탄핵 표심을 분석하면 ‘반대’ 56명은 친박 성향의 최대치인 반면, ‘찬성’ 62명은 비박의 최소치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당내 권력구도가 뒤바뀐 결과다.
비박계는 기세를 몰아 이정현 대표 등 친박계 지도부에 퇴진을 촉구할 방침이다. 오는 11일 비상시국회의를 열고 지도부 불신임과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논의하기 위한 의원총회 개최를 요구할 계획이다.
탄핵파의 숫자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탄핵 찬성 62명은 오로지 새누리당에서 넘어온 탄핵 표심이다. 여기에 ‘기권’ 2명, ‘무효’ 7명 중에도 찬성이 있을 수 있고, 야권 이탈 표가 존재하는 상황을 가정하면 70명 가까이가 여권 탄핵파다. 소속 의원 128명의 과반(64명)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박 대통령을 지키겠다는 표심은 56명에 그쳤다. 지난 4‧13 총선에서 공천을 받아 당선된 친박계가 80명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20명 이상이 ‘친박’ 꼬리표와 상반된 투표를 한 셈이다. 야권 이탈이 있다고 보면 친박 성향의 숫자는 더 축소된다.
이 같은 결과는 지난 5월 확인된 친박의 결집력이 탄핵 표결에는 적용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당시 친박이 민 정진석 원내대표는 69표 이상을 얻어 비박이 지원한 나경원 의원을 제압했다.
탄핵안 가결은 ‘박심(朴心‧박 대통령의 의중)=당심(黨心)’이라는 새누리당의 전형적 구도 역시 거스른 결과다. 지난 8월만 해도 이정현 대표가 전당대회에서 큰 표차로 비박계 후보들을 꺾었었다.
친박계의 불안감을 가중시키는 부분은 당내 리더십마저 흔들렸다는 점이다. 친박계 ‘맏형’ 서청원(8선) 의원과 ‘실세’ 최경환 의원이 탄핵안 부결을 위해 절치부심 물밑에서 작업했지만, 범(凡) 친박의 이탈을 막지 못했다.
특히 9일 본회의에서 최 의원은 300명의 국회의원 중 유일하게 탄핵 표결에 나서지 않았다. 그는 “가결이든 부결이든 극심한 국정혼란을 초래한다고 보기 때문에 불참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제 의도는 표결 자체를 보이콧하려던 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초 친박 핵심 사이에선 본회의장에서 단체로 이탈해 표결에 참여하는 인사들을 ‘역적’으로 몰겠다는 주장이 제기됐었다. 최 의원이 이를 주도하려 한 셈이지만 그를 따른 의원은 한 명도 없었다.
반면 비박계의 두 축인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은 긴장과 협력 관계를 유지하며 탄핵을 함께 주도했다.
김 전 대표는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필요성을 최초로 제기했지만, 박 대통령의 3차 담화 이후 협상파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자 유 의원이 ‘탄핵 강행’ 기류를 주도하며 비박계의 이탈을 막았다.
비박계는 탄핵 찬성의 캐스팅보트를 행사한 결집력을 토대로 일단 우위로 확인된 당내 권력구도의 굳히기에 들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주류-비주류 간 주객 관계의 변화를 꾀한다는 얘기다.
변화의 수단은 당권 접수다.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통해 이정현 대표 사퇴를 강하게 압박할 계획이다. 이 대표가 버티고 있기 때문에 친박 퇴진과 인적쇄신 문제를 따질 의원총회 소집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힘의 균형추가 탄핵 찬성 쪽으로 쏠려 분당(分黨) 동력이 약화된 것도 탈당 대신 인적쇄신에 무게중심이 실리는 요인이다. 당초 220석 안쪽으로 탄핵파가 확인될 경우 비박의 위축과 친박의 역공에 의한 계파갈등이 예상됐지만 상황이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