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해냈다"…탄핵 이끈 '촛불혁명'

6차례 걸친 촛불집회로 정권 심판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6차 주말 촛불집회. (사진=윤창원 기자)
박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됨에 따라 6차례 걸친 주말 촛불집회는 헌정질서를 파괴한 최고 권력자를 시민의 힘으로 몰아낸 '무혈 명예혁명'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준 촛불집회가 정치권을 압박하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유린당한 헌정질서를 바로 잡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 정권 심판한 232만 촛불 혁명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은 들불처럼 번져 횃불이 됐다.

지난 10월 29일 1차 집회 때 3만 명의 시민이 촛불을 밝힌 뒤 2차 20만 명, 3차 100만 명으로 급증했다.

급기야 지난 6차(3일) 집회에는 헌정 사상 최대인 232만 명의 촛불이 광장을 가득 메웠다. 불과 한주 만에 최대 집회(5차·190만 명) 규모를 갈아치운 것이다.

6차례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 수는 모두 644만 명이다.

이처럼 집회 참가자가 늘어난 것은 성난 민심을 외면하는 박 대통령과 우왕좌왕하는 국회에 대한 분노가 더 커졌기 때문이다.

결국 6차 집회 전까지 대통령 거취 문제를 놓고 정치적 득실만 따지던 정치권의 태도도 바뀌었다.

탄핵안 표결을 놓고 오락가락하던 새누리당 비주류는 6차 집회 후 비상시국회의를 열어 '조건 없는 탄핵 참여'로 노선을 정했다.

탄핵 가결 정족수를 채운다며 표결 시기를 놓고 저울질을 계속하던 국민의당도 3일 이후 주판알 튕기기를 멈추고 탄핵열차에 동참했다.

게이트 수사를 미적거리던 검찰이 정권을 향해 칼끝을 겨눈 것도 촛불의 영향이 컸다.

3차 집회 다음 날 검찰은 "대통령에 대한 대면조사가 필요하다"며 수사 의지를 보이며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제6차 촛불집회. (사진공동취재단)
◇ 돋보인 시민의식…새 집회 시대 열어

6차에 걸친 촛불집회가 성숙한 시민 의식을 보여주며 집회·시위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시민들은 헌정 질서를 파괴한 현 정권에 대한 배신감에 분노했지만, 촛불은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롭게 타올랐기 때문이다.

폭력사태를 막기 위해 시민들은 일부 참가자들의 일탈 행동을 제지하는가 하면, 노래와 풍자가 어우러진 광장은 신명 나는 '축제의 장'이 됐다.


집회 참가자 중 연행자와 부상자는 없었다.

길을 막아선 경찰 버스는 알록달록 다채로운 꽃으로 뒤덮였고, 시민들은 단호하지만 평화롭게 박 대통령의 퇴진을 한 목소리로 외쳤다.

단순한 집회를 넘어 부패에 분노하고 사회를 바꾸려는 혁명으로 촛불집회가 자리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처럼 성난 촛불 민심은 평화적인 의사 표현을 통해 청와대 턱 밑까지 진격하는 쾌거도 이뤄냈다.

6차 집회에서 시민들은 청와대에서 100m 떨어진 효자치안센터 근처까지 행진했다.

현행 집회 관련법상 100m는 청와대를 향한 시위대가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거리다.

당초 경찰이 퇴진행동에 행진·집회 금지를 통보했지만 전날 밤 법원이 효자치안센터 앞 집회를 허용(오후 1시~5시 30분)하면서 길이 열렸다. 청와대 100m 앞까지 집회.행진이 허용된 건 사상 처음이다.

1, 2차 집회 당시의 1300m(세종대왕 동상), 3차 집회 900m(내자동 로터리), 4차 집회 500m(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앞)에 이어 5차 집회 200m(청운효자동 주민센터), 그리고 100m 앞까지 촛불의 행렬은 갈수록 청와대와 가까워졌다.

참가자들이 일제히 촛불을 끄는 '1분 소등' 이벤트는 집회의 백미였다.

시민들은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는 의미로 다시 촛불을 켜면서 암흑을 밝히는 장관을 연출했다.

시민혁명의 역사를 새로쓰고 있는 촛불집회는 국회 문턱을 넘은 탄핵안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올때까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측은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의 결의나 각오를 봤을 때 박 대통령이 퇴진하기 전까지 쉽게 잦아들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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