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사람들 : 도시의 빈곤에 관한 생생한 기록'

<쫓겨난 사람들>은 하버드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매튜 데스몬드의 현장연구 기록물이다. 도시 빈민층에 해당하는 여덟 가정의 이야기를 통해, 대도시에서 주거 정책이 어떻게 가난과 불평등을 야기하며 또 지속시키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도시 빈민들의 삶은 마약과 폭력 및 사기 같은 범죄, 무엇보다 '퇴거'로 점철되어 있다. 매튜 데스몬드가 만난 도시 빈민들은 수입의 대다수를 월세로 지출했으며, 그러다 보니 가끔 의외의 지출이 생기기라도 하면 집세가 밀려 집주인으로부터 쫓겨나기 일쑤였다. 어느 가정에서든 퇴거는 일회적이지 않고 반복되기 마련이었고, 결국 감수성 예민한 어린아이마저 퇴거에 무감각해지도록 만들기도 했다.

저자는 정부가 빈민들이 쫓겨나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거를 방조하며 집주인들이 수월하게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돕고 있음을 지적한다. “임대업자들이 원하는 만큼 많은 돈을 세입자에게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해주고 지켜주는 것도, 고급 아파트 건설에 보조금을 주고 임대료를 올리며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훨씬 적은 선택지를 남기는 것도, (…) 무장한 법 집행관을 보내 임대업자의 요청에 따라 한 가정을 강제로 내쫓는 것도, 임대업자와 부채 추징기관에 대한 서비스의 일환으로 퇴거를 기록하고 그 자료를 공개하는 것도 모두 정부”(p.415)라는 것이다. 그렇게 정부와 집주인의 공조 아래 쫓겨난 이들은 살 곳을 찾아 더 위험하고 가난한 지역으로 떠난다.

그런 사회 모순을 저자는 유려한 산문으로 그려내고 있다.


“물이 얼면서 주위 나뭇가지 끝에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수천 개의 얼음 덩어리들이 맺혀 있었다. 도린은 눈을 내리깔고 앞쪽 현관에 크림색 리본이 달린 여섯 송이의 흰 백합을 바라보았다. 죽음의 겨울 속에서도 봄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p.279)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저자는 숫자로는 보여줄 수 없는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2005년 카트리나 태풍 피해를 입은 뉴올리언스로 자비를 들여 자원봉사를 떠난 도린. 이때 일을 계기로 도린의 가족은 월세가 밀려 퇴거를 당하게 되었다. 언젠가 가석방담당관이 되어 본의 아니게 범죄자로 전락한 친구들을 돕겠다는 패트리스. 자선단체를 운영하고 싶어 하는 알린 등의 모습으로, 빈민이라고 해서 근근이 먹고 사는 데 목표를 두는 게 아니라 그들 역시 사회에서 자신의 몫을 하며 남을 도우면서 살고 싶은 소망을 품고 살아감을 보여준다. 또 복지수당을 흥청망청 써버려 주위로부터 비난받는 러레인의 경우, 그 배경에는 통장 저축 금액이 일정 수준을 넘었을 시 복지수당을 삭감하거나 중단하는 정책상의 문제가 있음을 드러낸다. 개인의 낭비벽 때문에 가난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밖에도 크리스털의 사례를 들며 '게을러서 가난'한 게 아니라 가난한 이들이 보이는 게으름은 하루하루의 생존 전쟁을 치러내기 위해 적절히 에너지를 분배하는 전략임을 말하기도 하고, 자신과 함께 생활했던 빈민들이 시혜를 받는 데 익숙한 존재들이 아니라 무언가를 받았으면 어떤 형태로든 꼭 보답하려 했다는 것을 언급하기도 하면서 가난을 둘러싼 일반의 편견을 깨준다.

이 책은 주거 문제를 중심으로 가난의 굴레를 조명한다. 하지만 단지 문제를 드러내며 보는 이들로 하여금 답답하고 가슴 저리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임대료에서 이윤을 얻을 자유와 안전하고 적정한 가격의 주택에서 살 자유”가 상충하지 않을 나름의 대안까지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영국의 주택수당(Housing benefit)과 네덜란드의 주거급여(Housing Allowance)를 사례로 들며, 일정 수준 이하 소득을 버는 미국의 모든 가정에 주택바우처를 제공할 것을 주장한다. 그 같은 정책은 그가 예로 든 두 나라에서 그러했듯 세입자들에게 양질의 주택을 제공하는 데 도움을 주고, 특히 네덜란드의 경우에서처럼 극빈자들에게 살 집을 마련해주는 데 유익하다는 것이다.

"이 보편적인 바우처 프로그램을 시행할 경우 미국에서 가난의 면모를 바꿔놓을 수 있다. 퇴거가 급감해 희귀한 사건이 될 것이며, 노숙자는 거의 사라질 것이다. 저소득 가정들은 소득 증대를 즉각 피부로 느끼며 충분한 음식을 구매하고 학교나 직업 훈련 등 자신과 아이들에게 투자할 것이며, 많지 않더라도 저축을 시작할 수도 있다. 이로써 안정을 느끼고 자신들이 사는 집과 지역사회에 주인 의식을 갖게 될 것이다."(pp.417-418)

저자는 주거 기본권 확립을 위해 제시한 자신의 대안이 모든 곳에 일률적으로 적용될 수는 없으며, 해법은 다채로울 수 있음을 언급한다. 그러면서도 해법이 어떻든 간에 주거 문제는 공동체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출발점이며 모든 복지의 기본임을 역설한다. 이런 메시지는 멀리 떨어진 이곳 한국에서도 충분히 유효하다.

매튜 데스몬드 지음 | 황성원 옮김 | 동녘 | 540쪽 | 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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