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훅!뉴스] 박근혜는 어떻게 대통령으로 '만들어'졌나?

거물에서 괴물로, 음습했던 박근혜 20년 정치역사

-98년 정치 입문부터 아버지 내세워
-초선 땐 무명, '베스트드레서' 정도
-盧탄핵 후 정치입문 7년만에 당대표
-朴風으로 '선거의 여왕' 자리 유지
-유권자들, 박정희와 동정심에 젖어
-정치권, 상품성 극대화 위해 포장
-언론, 朴 외마디에 철학 덧칠하기도
-"朴 무대위 조명받는 청소년 심리"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 채널 : 표준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권민철 CBS 기자

◇ 김현정> 금요일 마다 듣는 음악이죠. 뉴스의 이면 훅 파고드는 훅뉴스 시간, 권민철 기자 나와 있습니다. 권 기자, 오늘은 어떤 뉴스 속으로 훅 파고들어가 볼까요?

◆ 권민철> 오늘도 준비된 음향 들어보고 시작하겠습니다.

"선서.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중략)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2013. 2. 대통령 취임 선서)

"무엇으로도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드리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합니다."(2016. 11. 2차 대국민담화)

◇ 김현정> 목소리 톤이 확연히 달라서 구분이 되네요. 처음은 대통령 취임선서, 두 번째는 이번 최순실 게이트 담화문 음성이군요.

◆ 권민철> 그리곤 오늘 '탄핵'까지 왔죠. 가결되면 박근혜 대통령 20년 정치도 막을 내리게 된다. 국가로서 큰 불행 아닐 수 없죠. 다시는 이런 대통령이 나와서는 안 되겠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박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만들어지고, 또 '탄핵'에 이르기까지 흥망(興亡)의 과정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런 일의 반복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 김현정> 박 대통령의 정치 일생을 복기해 보자는 건데, 그럼 정치 입문단계부터 살펴볼까요?

◆ 권민철> 박 대통령의 정치 입문은 IMF가 왔던 해, 1997년입니다. 당시 기록을 보면 입당 동기가 '난국에 처한 나라를 보면 아버지 생각이 나서'라고 돼 있습니다. 이듬해 대구에서 보궐선거에 출마하는데, 그 때도 역시 아버지를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직접 들어보시죠.

"우리 국민과 돌아가신 아버지가 일으켜 세우신 나라인데, 어떻게 하다 이런 지경까지 왔는가, 참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 이루 금할 수가 없습니다. 뭔가 저라도, 조금이라도 도움이라도 이 나라에 될 수 있다면 그 책임을 다하는 것이 저의 도리라고 생각하고, 오늘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입니다."

◇ 김현정> 그 동안 박근혜 대통령이 권력 잡은 게 아버지 후광 덕분이라는 관측이 많았잖아요. 정치에 입문 당시 대놓고, 이야기 한 게 온전히 녹아 있었네요.



◆ 권민철> 중요한 지적이다. 지금의 박 대통령을 만든 건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는 데 이견이 없을 겁니다. 그런데 이번에 최순실 게이트 터지면서 박 대통령이 대통령 권좌에 오르게 된 또 다른 동력, 바로 최순실 일가였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 김현정> 그게 어떤 내용이죠?

◆ 권민철>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 시절부터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라는 게 있었다고 합니다. 최태민이 70년대부터 '여자가 대통령이 되면 세상이 부드러워진다. 나라를 정화하기위해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곧잘 했다는 겁니다.

◇ 김현정> 그게 딸 최순실에게로 대를 이어 전수됐다는 거네요?

◆ 권민철> 그렇습니다. 실제로 최순실이 98년 박 대통령 국회의원 출마 당시 수억 원의 선거자금을 지원했다는 최순실의 전직 운전기사의 폭로가 있었습니다.

◇ 김현정> 이런 게 사실이라면 정말 경악할 일이에요. 하지만 국회 입성이 바로 대통령으로 갈 수 있는 티켓은 아니잖아요?

◆ 권민철> 물론입니다. 박 대통령 자신도 초선 때는 그냥 여러 국회의원 중 한명에 불과했습니다. 당내나 원내 직책도 없었고, 국정감사 때도 존재감이 별로 없었고 따라서 언론의 주목도 끌지 못했고요. 다만 당선 이듬해 '코리아 베스트 드레서'로 뽑힌 게 그나마 주목 거리였습니다.

◇ 김현정> 그럼 언제 주목을 받았나요?

2004년 당대표 시절의 박근혜 대통령. (사진=자료사진)
◆ 권민철> 정치입문 7년 뒤인 2004년입니다. 그해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가결, 그에 따른 한나라당 공멸위기 속에 임시 전당대회가 열리는데, 여기서 재선의원 신분으로 깜짝 당 대표에 선출됩니다.

◇ 김현정> 천막당사로 당사를 옮긴 게 아마 그 때 말씀이죠?

◆ 권민철> 맞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대표 출마, 천막당사 설치 이런 굵직한 결정을 과연 박 대통령 혼자 했는지는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 좌우간 당 대표에 오른지 3주 뒤에 17대 총선을 맞습니다.

◇ 김현정> 탄핵 역풍이 불던 때였죠?

◆ 권민철> 그래서 박 대통령이 눈물로 대국민 호소를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방송 유세 한 장면 들어보시죠.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저는 국민 여러분께 큰 빚이 있습니다. 그 빚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오늘의 제가 있기 까지 국민여러분께서 부모님과 형제자매가 되어 주셨기 때문에 고난을 딛고 일어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제가 바른 정치를 해서 여러분께 그 빚을 갚고 싶습니다." (2004년 4월 총선 KBS 정당방송연설)

◇ 김현정> 그래서 총선 결과는 어떻게 됐죠?

◆ 권민철> 예상을 깨고 한나라당이 121석이나 건집니다. 탄핵이후 한나라당 지지율 7%로 떨어져 있었던 걸 감안하면 일대 사건이 일어난 거죠.

◇ 김현정> 한나라당에선 기적이었다, 이랬어요.

◆ 권민철> 바로 그 기적의 원동력이 그 유명한 박풍이라는 겁니다.

◇ 김현정> 박근혜 바람?

◆ 권민철> 맞습니다. 한나라당 후보가 열세인 지역이 박근혜 당시 대표가 지원유세하면 거짓말처럼 지지율이 반등하는 일이 벌어졌죠. 박 대표가 가는 곳이면 사람들이 갑자기 구름처럼 모여든다고 해서 박풍이라는 말이 붙었죠. 그 박풍은 그 이후 국내 선거 때면 지역을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재현되는 정치 현상이었습니다.

◇ 김현정> 그 박풍, 탄핵을 앞둔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그 만한 허상도 있을까 싶은데, 박풍의 원인은 있었을 거 아닙니까?

◆ 권민철> 우선은 박 대통령에 대한 이미지입니다. 부모 닮았을 거다, 오랫동안 퍼스트레이디 해서 준비가 돼 있었을 거다. 거짓말 안할 거다, 이런 막연한 이미지 말이죠. 엊그제 서울 시장통에서 만난 시민들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도 이런 이미지에 젖어 있었습니다.

58세 남성: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 당시 육영수 여사 소천하시고 퍼스트레이디로서 아버지 옆에서 정치 지켜봤을 거 아냐 저는 그렇게 공부 좀 했는지 알았어.
73세 여성: 정직하고, 허튼 말 안 하고… 정직하잖아. 자기 사리사욕 모르고. 오직 나라사랑밖에 모르는 사람이잖아.

◇ 김현정> 어떻게 보면 이젠 대통령의 허상이 깨졌는데도 아직도 이런 이미지 가지고 있는 분이 있다는 거예요.

◆ 권민철> 이런 유능하다는 이미지 말고도 박 대통령에 대해 국민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감정이 있습니다. 바로 동정심이입니다.

◇ 김현정> 불쌍하다, 연민 같은 거 말하는 거죠?

◆ 권민철> 어린 나이에 양 부모 모두 흉탄에 갔잖아요. 따라서 뭔가 도와주고 싶고, 위로해주고 싶은 감정이 있었던 거죠. 다른 시민들 목소리도 들어보시죠.

74세 여성: 엄마아부지도 잃어버리고…박지만이도 마약먹고 이래서 안됐다, 그래서 우리가 찍자 그랬잖아 노인들이. 불쌍하다 그러고…
59세 남성: 자기가 혼자 사는데 돈이 뭐가 필요하겠어. 이름만 남길라고 그랬는데…

◇ 김현정> 박풍 하면 연상되는 게 바로 손에 붕대를 감고 악수하던 장면 아닌가요?

◆ 권민철> 그렇죠. 그런데 그런 모습은 사람들에게 더욱 더 깊은 동정심을 유발해 내는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잘 먹고 몸조심하라며 울먹이는 국민들도 있었고요. 대통령의 그런 이미지에 이끌려 지난 10여년 간 유권자들이 맹목적으로 지지를 되풀이 해 왔던 겁니다.

2012년 총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 (사진=자료사진)
◇ 김현정> 그 결과 박 대통령이 선거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오랫동안 유지해 왔던 것이겠죠… 지금의 여당도 그 동안 박 대통령의 그런 이미지, 감정을 적극적으로 정치에 활용해 왔었죠?

◆ 권민철> 맞습니다. 특히 여성 정치인이라는 점을 선거에 최대한 활용했지, 외모나 이런 걸 선거 마케팅에 적극 활용했습니다. 박 대통령과 결별했지만, 한때 박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전여옥씨가 '폭풍전야(2006년 刊)'라는 책에서 이렇게 써 놓았습니다.

"나는 줄기차게 '한나라당 최고 상품'인 박 대표를 가능한 한 많이 언론에 노출시키려고 노력했다."

◇ 김현정> '최고 상품'이다? 적극적으로 상품화했다는 거네요?


◆ 권민철> 대통령 스스로도 거기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모두 18년간의 청와대 생활, 5년간의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해와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걸 당연시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연예인 같은 심천 상태를 유지해 왔던 겁니다. 황상민 전 연세대 교수, 그분이 대통령에 대한 대중의 이미지를 수년간 심층 연구해 온 분인데, 그 분 진단 들어보죠.

"청소년 심리상태에서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청소년 심리 하는 건 무대 위에선 배우와 같은 심리를 말합니다. 항상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 받고 손 흔들어주는 역할. 부모 여읜 뒤에도 그 공주로 남아있을 수 있었으니까 그 심리 상태에서 더 이상 발달할 필요가 없었던 거니까."

◇ 김현정> 무대 위 배우 같은 심리. 대중들이 과거 대통령을 연예인처럼 대한 것도 일종의 마법에 걸린 때문 아니겠어요? 마법에 걸린 건 일반 국민들 뿐 아니라 정치권도 마찬가지였을 거고요.

◆ 권민철> 맞습니다. 정치권에서도 같은 현상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지금의 야당에서도 박 대통령에 대한 과도한 찬사가 많았습니다. 지금은 과거지사가 됐지만, 그런 분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 가운데 한 분의 음성입니다.

"동료 국회의원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흠 잡을 수 없는 좋은 자질을 가진 분입니다. 지성적이고, 우아하고, 그리고 기품이 있어요. 범접하기 어려운. 또 예쁘시고, 가슴이 설렐 정돕니다"

◇ 김현정> 누구 음성인지 알 거 같지만 이름까지 밝힐 필요는 없겠네요.

◆ 권민철> 본인으로선 정말 주워 담고 싶은 말 일겁니다.

◇ 김현정> 야당에서도 이 정도였는데, 지금의 여당 내에선 오죽했겠어요.

◆ 권민철> 물론 여당의 경우는 앞서 말씀 드린 대로 박 대통령의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더 화려하게 포장했을 거고요. 이번엔 두 사람의 음성 차례로 들어보죠.

"박근혜 대표는 아주 유명한 정치인입니다. 그만 한 정치인은 한국에 몇 사람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 2012년)
"박 대통령이 아버지 어머니 성격의 좋은 것을 반반씩 닮아서 결단력도 있고, 판단력도 있습니다." (김종필 전 총리, 2015년)

◇ 김현정> 오늘날 박 대통령을 만든 사람, 첫째 아버지 박정희, 둘째 최순실 일가, 셋째 국민들, 넷째 기성 정치권까지, 짚었습니다. 또 있나요?

◆ 권민철> 아마 대통령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강화된 또 다른 이유, 바로 언론의 책임도 클 거 같습니다.

◇ 김현정> 마지막으로 언론 이야기군요?

◆ 권민철> 그렇습니다. 박 대통령에 대한 거품, 박 대통령의 실패, 그 한 축이 언론이라는 비판이 나올 때 가장 흔히 이야기하는 게 바로 이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번 들어보죠.

진행자: 이야~ 박 전 대표 보면 굉장히 빛이 난다 이런 이야기 제가 굉장히 많이 들었거든요. 형광등 100개 쯤 뒤에 켜신 거 같습니다.
박근혜: 아휴, 지금 그렇게 너무 띄워 주시면, 제가 몸 둘 바를 모르죠. 하하하

◇ 김현정> 한 종편에 출연했을 때 이야기죠. 이런 보다가 있었다는 걸 예로 든 거죠?

◆ 권민철> 박 대통령에 대한 과잉 보도의 예는 널리고 널렸습니다. 더 예를 들 수 있는 기사, 가령 이런 제목이다. 박근혜 대표 고비 때마다 '한마디 정치' 파워 실감(09. 12. 27)

◇ 김현정> 박 대통령의 말이 짧잖아요. 그렇게 짧은 말 한마디 던지면 언론들이 철학적인 것들을 막 덧붙였어요.

◆ 권민철> 같은 언론계 종사자로 참 통렬하게 반성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 김현정> 오늘 짧은 시간이지만 박 대표 정치 역사를 짚어봤습니다. 오늘 박 대통령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우리부터 반성해 봐야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우리가 정치인을 어떻게 뽑아왔던가, 생각해 봐야 할 거 같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을 만들고, 대통령을 자기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악용한 사람들, 지금도 대통령의 조기 퇴진을 반대하며 하루라도 더 연명하려는 사람들, 그 사람들 꼭 반성해야 합니다. 권민철 기자의 훅뉴스 오늘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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