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세계가 우리의 3시를 지켜보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최순실의 축복... 악의 고리 끊어야"

- 전 세계가 대한민국 민주주의 장래 지켜볼 것
- 4.19 희생에도 같은 고민 물려줘 안타까워
- 개발독재 청산하고 새 공동체 세워야
- 촛불 민심, 진영논리로 흔들 수 없어
- 의원들, 오직 민의만 생각하고 표결해야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황석영(작가)

헌정 사상 두 번째로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 표결이 이루어지는 날입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 심경은 어떠십니까? 참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참담함, 비장함, 또 어쨌든 우리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라는 사실에 부끄러움도 느껴지는, 만감이 교차하는 아침이죠. 자, 그렇다면 이분의 오늘 아침은 어떨까요? 작가 황석영 선생을 연결해 보겠습니다. 황석영 선생님, 안녕하세요?

◆ 황석영> 예, 안녕하세요.

◇ 김현정> 결국 오늘이 오고 말았네요.

◆ 황석영> 글쎄 말입니다.

◇ 김현정> 정말 역사적인 순간에 서게 됐는데, 오늘 아침 황 선생님의 심경은 어떠십니까?


◆ 황석영> 글쎄요. 한마디로 착잡하고요. 또 비장한 생각도 들고 그렇습니다. 이유야 어찌됐든 간에 국민들이 자기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반대했던 사람들도 한 절반에 가깝지만 어쨌든 그런 대통령을 끌어내려야 하는 지금의 상황… 이게 어쨌든 거역할 수 없는 민심입니다.

◇ 김현정> 그러게요. 촛불집회 혹시 나가보셨어요?

◆ 황석영> 네, 그동안 쭉 촛불집회에 참석하면서 시민들과 함께했는데요.

◇ 김현정> 나가셨군요.

◆ 황석영> 진눈깨비 내리고 밤에는 기온이 내려가고 그래서 지난 6차 때는 집에서 앓아누워 있었습니다.

◇ 김현정> 아이고, 지금도 조금 목소리가 약간 감기 기운 있으세요.

◆ 황석영> 네, 일주일 내내 독감에 시달리다가 오늘 좀 (감기가) 나갔는지, 훨씬 나아진 것 같아요.

◇ 김현정> 그러세요. 참 TV로 편하게 봐도 될 텐데, 굳이 그 현장까지 그렇게 매주 병까지 걸려가면서 가신 이유는 뭡니까?

◆ 황석영> 제가 아무래도 작가니까, 늙은이지만 그래도 역사의 현장에 꼭 있어야 된다는 책임감도 있고 그리고 또 동시대 사람들하고 같이 하는 게 좋아서 갔습니다.

◇ 김현정> 작가님이 쓰신 주말 촛불집회 참가기 보니까 4.19가 떠올랐다, 이러셨더라고요?

◆ 황석영> 우선은 56년 전에, 친구가 바로 옆에서 총탄에 쓰러졌던 그 시청 앞이란 장소가 그랬고요. 당시 이승만 독재자하고 정부는 어떻게 해서든지 위기를 모면하려고 버티고 있던 상황이 지금과 비슷했고요. 그리고 이제 이 민주주의라는 게 여러 가지 형태로 민의에 가까운 쪽으로 지향하기 마련인데요. 그때마다 시스템에 변동을 가져오죠. 그런데 지금이 체제의 변혁기라고 봤죠. 이제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그때도 많은 사람이 싸우고 죽고 했는데도 우리 자식 세대와 손주 세대한테 같은 현실을 대물림해 줬다는 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 김현정> 그러게 말입니다.

◆ 황석영> 광화문에서 구호를 외치는 젊은 세대를 보면서, 좋은 세상을 물려주지 못한 그런 미안함. 한편으로는 또 그들에게서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그 사람들이 만들어낼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봤습니다.

◇ 김현정> 4.19로 총탄에 내 옆의 친구가 쓰러질 때, 너의 희생으로 이제 이 지긋지긋한 이 문제들은 해결되겠구나, 이 고리는 끊겠구나 하셨는데 2016년 다시 젊은이들이 그 광장에 모여들고, 아이 손 잡고 모여들고, 심지어 유모차까지 끌고 모여들어야 하는 이 상황이 미안하다는 생각 드셨고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해서라도 모여드는 국민들 보면서 자랑스럽다는 생각도 드셨고 양가적인 감정이 드셨다는 말씀이세요?

◆ 황석영>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그러셨어요. 그런데 선생님, 대체 이런 최순실 게이트 같은 게 이게 2016년도에 어떻게 벌어질 수가 있는 겁니까, 어떻게 생각 드셨어요, 지난 한 달 반 이 사건 돌아가는 거 보면서?

◆ 황석영>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 권력의 사유화 문제가 가장 큰 건데요. 우리 근대화를 한마디로 개발독재라고 이제 얘기하는데, (이 개발독재는) 어떤 정치 경제적 결정이든 간에 제도 속에서 여러 사람들이 협의를 거쳐서 민의를 반영해서 이루어지지 않고, 독재자와 권력자를 둘러싼 패거리가 좌지우지하는 겁니다. 이런 일을 저지른 당사자들과 거기에 동조하고 도움을 준 부역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시민들도 깊이 반성해야 됩니다.

◇ 김현정> 우리들도요? 우리들은 왜 반성해야 됩니까?

◆ 황석영> 우리는 그동안 어떤 식으로 자신의 뜻을 대행할 사람들을 결정하고 뽑아서 국회로 보냈는지, 지역주의가 늘 총선 때마다 뚜렷하게 나타났고 또 과거에 어떤 잘못을 저지른 자라 할지라도 자기 지역에서 조그마한 이익을 주는 그런 데 급급해서 뽑아서 보내고 그랬지 않습니까?

◇ 김현정> 내 눈앞의 이익을 좇아서 후보를 선택하고요, 네.

◆ 황석영> 이제 그런 우리들의 정치적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이제 지금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 주권을 잃어버렸다는 자각이 뒤늦게라도 왔으니까, 이거야말로 최순실이 우리에게 마련해 준 위대한 축복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웃음)

◇ 김현정> (웃음) 참 역설적이긴 합니다마는, 최순실의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게 그나마 좀 위로가 되네요?

◆ 황석영> (웃음) 글쎄 말이에요.

소설가 황석영(73) 씨 (사진=창비 제공)
◇ 김현정> 결국 이 불행한 고리를 끊어야 되는 건데 과연 오늘 끊어질까, 오늘 탄핵 표결 어떻게 예상하세요?

◆ 황석영> 저는 염려 속에서도 탄핵 결정이 무난하게 이루어지리라고 확신합니다.

◇ 김현정> 아니, 확신까지 하실 수 있을까요? 정치인들이 하는 거라서 정치적인 부분이 고려 안 되지는 않을 텐데요?

◆ 황석영> 저는 비관적 낙관주의자거든요. (웃음) 그래서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촛불집회를 통해서 헌정 사상 최대의 적극적인 민중의 의사 표시가 있었으니까 어떤 세력도 감히 거역할 수 없을 겁니다.

◇ 김현정> 어떤 세력도 거역 못할 거라고 보세요? 왜냐하면 지금 사실은 대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각 당마다 셈법이 다 다르거든요?

◆ 황석영> 우선 보수, 진보라는 진영논리로 어떻게든 상황을 뒤집어보려는 시도가 있지만 이제 먹히지 않습니다.

◇ 김현정> 먹히지 않는 수준이죠.

◆ 황석영> 이제 그야말로 합리적인 보수당과 사회민주주의적 지향의 진보당의 양당 체제가 출현할 때가 됐는데요. 이제 그러니까 보수와 진보의 재편성이 필요하겠습니다. 이번 촛불민심은 진보, 보수 진영논리를 허물고 오히려 화합하는 계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사실은 보수, 진보 이런 구분을 가지고 길거리에 나온 게 아니거든요.

◇ 김현정> 물론이죠.

◆ 황석영> 그래서 나는 이번에 여당 비주류가 과오를 깨닫고 탄핵에 대거 좀 동참하리라고 믿습니다.

◇ 김현정> 믿으세요?

◆ 황석영> 예. 지금 누가 누구를 비난할 때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죠. 우리 모두가 반성해야 된다는 측면에서 수구세력은 최소화하고, 응징하고, 그렇게 해서 다 같이 함께 새로 태어나자 이런 생각입니다.

◇ 김현정> 이번에 국민의 민심이라는 것은 사실은 거역하기 어려울 정도의 커다란 민심이기 때문에 그 앞에서 정치인들이 자신의 계산, 주판알 튕길 수 없을 거라는 말씀이세요?

◆ 황석영> 그럼요.

◇ 김현정> 그렇게 보시는군요. 대통합, 이것도 참 역설적이지만 또 최순실의 축복이네요?

◆ 황석영> (웃음)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 김현정> 그래서 불운한 우리 역사의 고리를 끊어보자, 이 말씀. 그런데 사실 탄핵이 되든 안 되든 간에 상당히 혼란한 시기는 좀 올 것 같아요. 어떻게 예상하세요?

◆ 황석영> 글쎄, 그 민주주의라는 게 적당히 혼란스럽고 시끄러운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번 기회에 이제 시민들이 깨어났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깨어 있는 대중이 있는 한, 우리가 이 이행기를 지혜롭게 통과할 것이고 결국은 ‘87년 체제’라고 하는 개발독재 시대의 정치 사회적인 잔재를 떨쳐버리고, 새로운 공동체를 세우게 되리라고 저는 그 수백만 인파를 보면서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냥 물러서지는 않을 거다.

◇ 김현정> 그러니까 저쪽 청와대, 정치인 이쪽 바라보면 답답하다가도 200만의 촛불이 모였는데 그렇게 질서정연하고 그렇게 평화롭고 그랬어요.


◆ 황석영> 그래서 주중에는 좀 마음이 방황했다가 주말이 되면 다시 다잡고 ‘맞아맞아, 이렇게 될 거야’ 또 했다가. (웃음) 그게 이제 연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 나는 정말 개인적 열망인데 박근혜라는 양반이 그래도 좀 생각이 있어서, 스스로 이렇게 자연스럽게 내가 퇴진하겠다 하고 선언을 하고 물러난다면. 그러면 이 겨울에 그 어린 청소년부터 정말 유모차를 타고 나온 그 어린 아이들, 아가들, 가족들 이런 시민들한테 찬바람 속에 세우고 행진하게 만들지 않고, 고생시키지 않고 이렇게 참 자연스럽게 해결이 될 텐데 무엇을 위해서 저렇게 버티는지.

◇ 김현정> 그런 생각도 드셨어요. 알겠습니다. 참 장기적으로는 말이죠, 우리 민주주의 체제를 다시 세워야 되는 문제, 이게 있는데 이거는 어떻게 해나가야 합니까? 이것도 그냥 국민만 믿으면 됩니까?

◆ 황석영> 헌법에 명시된 전제조건들을 다시 한 번 되짚어봐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 김현정> 무슨 말씀이세요?

◆ 황석영> 현재 무너져버린 그 3권 분립의 정신, 그 다음에 의회민주주의, 다시 재정립해야죠. 그리고 낡은 정치제도를 혁파하기 위한 개헌도 이게 정치공학적으로 누가 어떻게 집권할 수 있나, 대선에다 맞춰서 하지 말고 이 개헌 논의를 누가 끌고 나가느냐 하는 게 무엇보다도 더 중요하겠죠.

◇ 김현정> 누가 끌고 나가야 합니까?

◆ 황석영> 시민들, 또 민중이 끌고 나가야 되겠죠. 그리고 지금까지 이루어진 정치, 경제, 외교, 안보의 여러 가지 정책들, 그동안 우리를 위기 속으로 몰아넣었던 게 사실 아닙니까? 이런 것들도 다시 한 번 꼼꼼히 살펴보면서 시정해야 되는 게 위기를 맞은 우리 사회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될 문제라고 봅니다.

◇ 김현정> 그런 의미에서 다음 대선이 굉장히 중요하네요?

◆ 황석영> 아… 중요합니다.

◇ 김현정> 어떤 리더가 오느냐, 굉장히 중요한 기로에 우리가 선 것 같습니다.

◆ 황석영>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국회에서 잠시 후에 표결하게 될 국회의원들한테, 그 사람들한테 한 말씀 좀 해 주세요.

◆ 황석영> 네. 국회의원은 국민의 소리를 대변해 달라고 국민이 뽑은 겁니다. 국민 세금으로 수많은 특권을 누리면서 살죠, 그 양반들이. 그런데 아직도 상황 인식이 결여된 분들이 더러 있는 것 같은데요. 국회의원은 대통령을 변호하고 대통령을 지키라는 자리가 아닙니다. 오직 민의만을 생각하고, 국민을 바라보면서 양심껏 표결에 임해 줬으면 합니다. 전 국민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고요. 무엇보다도 온 세계가 우리 민주주의의 장래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 김현정> 저는 그 마지막 말씀에 전율이 오르네요. 온 세계가 지금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장래를, 오늘을 지켜보고 있다, 국회의원들이여 똑바로 하라는 말씀이세요.

◆ 황석영> 그렇습니다.

◇ 김현정> 알겠습니다. 여기까지 오늘 말씀 듣겠습니다. 황석영 선생님 고맙습니다. 건강하셔야 돼요.

◆ 황석영> 네, 또 봬요.

◇ 김현정> 고맙습니다. 작가 황석영 선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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