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의 탄핵심판은 길게는 6개월이 걸리지만, 박 대통령의 경우 두 달여 만에 결론이 났던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 때와는 사정이 달라 장기화 가능성도 있다.
박 대통령은 "단 한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며 강제 모금 주도 자체를 아예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라 법리공방도 더 치열할 전망이다.
탄핵소추안에는 박 대통령이 각종 정책과 인사 문건을 비선실세 최순실씨에게 누설해 국민주권주의를 훼손한 것은 물론 '세월호 7시간' 의혹으로 생명권 보호 의무를 위배한 사실이 담겼다.
재단강제 모금과 함께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도달하지 못한 뇌물죄 혐의까지 적시돼있다.
탄핵심판이 형사재판이나 징계 절차와 닮아 있지만, 형사소송 법리에 따라 모든 사실관계를 일일이 밝히는 과정보다는 박 대통령이 헌법적 가치와 질서를 훼손했는지를 따지는 헌법재판 절차의 기능에 재판관들이 주목할 가능성이 높다.
◇ 탄핵심판 개시
헌재가 퍼낸 '헌법재판실무제요'에 따르면, 헌재의 탄핵심판은 국회법제사법위원장이 소추위원이 돼 소추의결서 정본을 헌재에 제출하면 시작된다.
소추의결서가 곧 탄핵심판 청구서인 것이다.
탄핵소추의 효과라고 할 수 있는 대통령의 권한행사 정지는 국회에서 탄핵소추가 의결돼 소추의결서가 피소추자인 박 대통령에게 송달된 때로부터 헌재의 심판이 있을 때까지다.
권한행사 정지 시점이 국회의 의결 시점이 아니라 소추의결서가 청와대에 도착한 때인 것이다.
헌재는 소추의결서가 제출되면 사건으로 접수해 사건기록을 편성하고, 사건번호와 사건명을 부여해 헌법재판정보시스템에 입력한다.
이때 붙게 될 사건번호는 '2016헌나1', 사건명은 '대통령(박근혜) 탄핵'이 될 예정이다.
헌재는 소추의결서를 접수하면 곧바로 등본을 피소추자인 대통령에게 송달하고, 대통령은 헌재에 답변서를 제출할 수 있다.
탄핵심판은 형사재판이나 징계 절차와 유사한 부분이 있지만, 이와 다른 고유한 목적과 기능을 가졌다.
법률을 어겼는지를 따지는 것도 한 부분이지만, 박 대통령의 위헌·위법행위가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거나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배신해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했는지가 더욱 주목할 대목이다.
다시 말해 '세월호 7시간'의 미스터리를 푸는 것이 헌재의 몫이 아니라 당시 대통령이 국민의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한 의무를 다했는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따지고, 국정농단 문건 하나하나의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가 아닌 국민이 준 대통령의 권력으로 비선실세 국정농단 세력이 사익을 추구하게 했는지가 쟁점인 것이다.
탄핵심판은 사건과 당사자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변론이 시작된다. 당사자의 출석 없이도 심리가 가능하고, 소추위원인 법사위원장은 피청구인 대통령을 신문할 수 있다.
증거조사도 가능하며, 조사가 끝나면 소추위원은 탄핵소추에 관한 의견을 진술할 수 있고 대통령 역시 최종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갖는다.
다만, 이때 헌법재판소법이 탄핵심판 장기화의 요소가 될 수도 있다.
헌재법 32조는 헌재가 국가기관 등에 심판에 필요한 사실을 조회하거나 기록 송부,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게 하고 있지만, 재판이나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 기록은 요구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이 때문에 헌재가 특검이나 검찰로부터 수사 자료를 넘겨받지 못하면, 탄핵심판이 최장 120일인 특검 전 이뤄지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정당 해산 심판 당시 헌재는 법원과 검찰로부터 사본을 제출받아 심리를 해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헌재의 의지와 법원·특검·검찰의 협조만 있다면 '속도전'은 불가능하지 않다.
헌재법 51조도 논란이다.
심판절차의 정지를 규정한 이 조항은 '피청구인에 대한 탄핵심판 청구와 동일한 사유로 형사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경우 헌재가 심판절차를 정지할 수 있다'고 돼있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최순실씨 등에 대한 재판 결과를 보기 위해 탄핵심판 절차가 6~12개월 중지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헌재의 재량 규정이고, 정국 혼란과 민심 등을 고려해 현재가 1심 판결에 구애 받지 않고 빠른 결정을 내린다고 보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피청구인 박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서 소추의 대상이 될 수 없어 이 조항 적용대상도 아니라는 게 법조계 대체적 시각이기도 하다.
헌재는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으로 탄핵 결정을 할 수 있다.
탄핵결정 주문은, "피청구인을 파면한다" 또는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형식이거나 2004년 때처럼 "이 사건 심판청구를 기각한다"라는 형식 중 하나가 된다.
탄핵심판은 결정 선고 때가 바로 결정 확정 때다.
◇ 헌재의 모래시계
헌재의 '모래시계'가 탄핵심판에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이 쏠린다.
내년 초 헌재 재판관 2명의 임기가 만료되면서 심리가 지체될 경우, 단 1명의 재판관이 사퇴만해도 '식물 헌재'가 될 수 있어서다. 바로 '심판정족수 미달' 사태다.
현재 헌재 재판관은 박한철 소장을 포함해 모두 9명인데, 문제는 박 소장이 내년 1월 31일, 이정미 재판관이 내년 3월 13일 임기가 끝난다는 데 있다.
특검이 최장 120일이고 헌재가 특검 수사 결과를 본 뒤 결론을 내리기로 한다면, 재판관이 7명인 상태에서 의결정족수 6명을 채워야 탄핵이 이뤄진다.
헌재 재판관들이 대체로 보수 성향으로 평가되는데다 대통령, 또는 여당 추천 몫이 있어 '2명'의 반대표가 예상될 수도 있지만 '1명 변수설'도 거론된다.
재판관 1명이 탄핵 반대파로 나서 '심판정족수 미달'이 될 가능성이다.
헌재는 재판관 7인 이상이 출석하여야 심리할 수 있는데, 7인의 재판관만 남은 상태에서 1명이라도 탄핵심리에 불참할 경우 탄핵심판 자체가 무산되는 것이다.
"재판관 한 명이 사퇴를 해버리면 식물헌재가 되고 그러면 탄핵을 할 수 없다"는게 김 전 재판관 설명이다.
단, 1명의 재판관이 '캐스팅보트'를 쥐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는 것이다.
헌재소장은 헌법재판관 중에서 국회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박 소장이 과거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임명됐기 때문에 후임 인사주도권은 박 대통령에게 있다.
여소야대 국회 상황인데다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대통령이 주도하는 소장 임명은커녕 재판관 임명도 동의받기 어려워 보여 장기 공석이 관측되기도 한다.
다만, 헌재가 2004년 탄핵심판 경험을 통해 이미 탄핵 요건 등에 대한 판시 기준을 세워뒀던 만큼 신속한 심리가 가능하다는 분석도 있다.
노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 걸린 64일을 기준으로, 짧게는 50일 안에도 선고가 가능하다는 의견이다.
김 전 재판관은 "빨리 하면 두 달 안에 이룰 수 있다고 본다"며 "국민도 밤잠 안 자고 촛불 드는 상황에 (헌재도) 밤새워서 하면된다"고 말했다.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의 몸통을 박 대통령으로 지목한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탄핵을 위한 법률요건이 갖춰졌다는 해석이 이미 내려진 것도 속도전에 힘을 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