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는 거의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법정 예산안 처리시한인 2일 자정을 넘긴 뒤, 국회가 본회의 차수변경까지 하는 우여곡절 끝에 400조5495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이 3일 확정됐다.
◇ 최순실 예산 삭감하고 누리과정 예산 증액하고
끝까지 쟁점이 된 것은 누리과정 예산의 국비지원 규모였다. 이날 확정된 내년도 예산안에서 누리과정에 대한 국비지원 규모는 8600억원으로 결정됐다.
국회 여야 3당이 3년 한시로 누리과정 특별회계를 신설하고 여기에 일반회계 전입금 1조원을 요구했지만, 정부가 7천억원을 고집해 협상이 길어졌다. 결국 국비지원 규모를 1600억원 더 늘리는 수준에서 여야정이 합의를 봤다.
이밖에도 공공부문 일자리 1만개 확대를 위해 목적 예비비를 500억원 증액하고, 노인일자리 지원단가 인상(+262억원), 장애인 공공일자리 확대(+138억원), 보육교사 충원 및 수당 인상(+644억원) 등 일자리 예산이 일부 증액됐다.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서해안 복선전철과 이천-문경 철도건설, 보성-임성리 철도건설 등 국가기간망 확충으로 4천억원 가량 예산이 더 늘었다.
북한도발에 대비하기 위한 킬체인 조기구축 예산을 정부안보다 1천억원 더 늘리고, 지진대비 인프라 구축, 조기경보체계 강화, 내진보강 등에 1403억원의 예산을 증액했다.
반면 문화창조융합벨트 구축사업, 가상현실 콘텐츠 육성사업(VR사업), 코리아 에이드 관련 한국국제협력단 출연 예산 등 이른바 최순실-차은택 등 비선실세가 개입한 것으로 의심되는 예산은 1810억원 삭감됐다.
이밖에도 대통령 비서실 등 7개 부처의 업무추진비 11억원, 대통령 비서실 특수활동비 9억원 등의 예산도 국회 심의 과정에서 잘려나갔고, 내년부터 인상되는 국회의원 세비 10억원도 반납하기로 했다.
◇ 소득세최고세율 인상, '증세없는 복지' 깨졌다
전체적으로 새해 예산안은 정부의 예산안 원안인 400조7천억원에서 5조5675억원이 삭감됐고, 이후 다시 5조4170억원이 증액돼, 1505억원이 순삭감됐다. 내년도 총 지출예산규모는 400조5495억원으로 사상 최초로 예산 400조원 시대가 열리게 됐다.
한편 누리과정 예산 국비지원 증가 등으로 늘어난 지출을 충당하기 위해 국회는 소득세 최고세율을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이에따라 과세표준 5억원 초과구간에 대한 소득세율은 기존 38%에서 40%로 2%p 인상됐다.
이렇게되면 근로소득자 6천명, 종합소득자 1만7천명, 양도소득자 2만3천명 등 모두 4만6천명의 소득세 부담이 늘어나게 되며, 연간 6천억원 정도 세수가 증가하는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당초 야당이 추진했던 법인세 인상안은 누리과정 예산 합의로 무산됐다. 야당은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으로 그동안 박근혜 정부가 고수해 온 ‘증세없는 복지’원칙을 깨고, 대신 여당은 법인세율 인상을 저지했다는 명분을 얻는 선에서 서로 합의를 봤다.
올해 종료 여부를 놓고 논란이 됐던 신용카드 소득공제는 2018년까지 2년 더 연장되지만, 총급여 7천만원 이상 직장인은 공제한도가 줄어들게 된다. 소득 구간별로는 5%에서 최대 33%까지 혜택이 감소하는 것으로 예상됐다.
이날 국회에서 확정된 내년도 예산안은 오는 6일 정부가 국무회의에 상정해 의결하게 된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새해 시작 후 바로 예산집행이 가능하도록 사업계획 수립 등 집행 준비를 철저히 하고, 예산 및 자금배정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