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모 겪은 '다이빙벨', '세월오월', 이유 있었다

청와대 "문화예술계 좌파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하라" 지시

홍성담 화백의 '세월오월'. 박근혜 대통령이 허수아비로 묘사돼 있다.
2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주최로 '박근혜 정권의 언론 통제·문화 검열 규탄 공동 기자회견'이 열렸다. 작고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남긴 메모(이른바 '김영한 비망록')에는 청와대가 언론뿐 아니라 문화예술계 전반에 영향을 미쳐, 비판적인 영화와 예술작품을 탄압한 정황이 나타나 있었다.

홍성담 화백은 박근혜 대통령을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의 조종을 받는 허수아비로 묘사한 '세월오월'이란 작품 때문에 청와대로부터 '동향 파악'의 대상이 됐다. 실제로 '세월오월'은 2014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광주 정신展'에 걸릴 예정이었으나, '대통령을 희화화한다'는 이유로 광주시로부터 수정 압박을 받았다. 수정 후에도 전시 유보 사태가 벌어지자, 홍 화백은 결국 '세월오월'을 전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영한 비망록 2014년 8월 6일 메모에는 "광주비엔날레특별전. 광주시장(윤장현)"이라고, 8월 7일 메모에는 "우병우팀, 허수아비 그림(광주) 애국단체 명예훼손 고발"이라고 써 있다. 8월 8일에는 "광주비엔날레-개막식에 걸지 않기로"라는 메모가 있다. 상황은 메모에 적힌 대로 흘러갔다. '애국단체 명예훼손 고발'이 적힌 다음날인 8월 8일 실제로 보수단체들이 이 작품을 고발했고, 같은 날 '세월오월 전시 유보 결정'이 나왔다.


청와대는 다큐멘터리 '다이빙벨'도 예의주시했다. 이상호 전 MBC 기자가 만든 '다이빙벨'은 세월호 참사 당시 보여준 정부의 무능을 담은 작품이다. 9월 5일 메모를 보면 "다이빙벨-교문위-국감장에서 성토 당부(신성범 간사) 부산영화제 MBC 이종인 대표 이상호 출품"이라고 되어 있고, 9월 6일에는 "다이빙벨-다큐 제작 방영-여타 죄책(죄를 물음)"이라고 쓰여 있다.

다큐 '다이빙벨'은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과정에서 여러 잡음이 있었고, 이후 상영관 구하기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교문위) 간사였던 신성범 전 새누리당 의원을 통해 국감 때 부산국제영화제의 '다이빙벨 상영'에 대해 성토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또, 부국제 상영 시기가 10월 6일, 10월 10일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미 한 달 전부터 "죄를 물어야 한다"는 지시가 내려간 셈이다.

9월 20일에는 "다이빙벨 상영할 것으로 예상됨->수사", 10월 22일에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사항을 옮길 때 쓰는 '長' 표시가 되어 있고 "다이빙벨 상영-대관료 등 자금원 추적", 10월 23일에는 "시네마달 내사-다이빙벨 관련"이라고 쓰여 있다. 김 비서실장이 부국제 상영 직후 배급을 의식해 "대관료 등 자금원 추적"이라는 지시를 직접 내린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다이빙벨' 배급사였던 시네마달은 내사를 받았다.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올해 3월 검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대통령 풍자 그림이나 정부의 무능을 보여주는 영화에 대한 꼼꼼한 탄압은 청와대의 '큰 그림' 하에서 작동됐던 것으로 보인다. 2014년 10월 2일 메모에는 김기춘 비서실장 지시사항으로 "문화예술계의 좌파 각종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 ex) 다이빙벨, 파주, 김현"이라고 적혀 있다. 2015년 1월 2일에도 "영화계 좌파성향 인적 네트워크 파악 필요(경제)"라고 쓰여 있다. 예술인들의 '성향' 파악은 물론, 비판적인 문화예술작품에 '좌파의 책동'이라는 낙인을 찍어 '선제 대응'을 주문한 것이다.

'다이빙벨' 상영으로 인한 여파는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다이빙벨'을 상영했던 민간 독립영화전용관 3곳(인디스페이스, 아리랑시네센터, 대구 오오극장)을 2015년 독립영화전용관 운영지원사업 대상에서 제외한 정황이 드러나 '극장판 블랙리스트'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했다.

(관련기사 : 2016. 11. 15. CBS노컷뉴스 [단독] '극장판 블랙리스트' 등장…"'다이빙벨' 틀면 지원 OUT")

반면, 부부싸움을 하다 말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 등 애국심을 강조한 영화 '국제시장'에 대해서는 투자자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을 청와대가 나서서 걱정했다. "국제시장 제작 과정 투자난 구득난, 문제가 유. 장악, 관장 기관이 있어야"라고 적힌 2014년 12월 28일 메모가 그 증거다. 실제로 청와대는 지난해 1월 28일 '문화가 있는 날' 행사의 하나로 '국제시장'을 관람한 바 있다.

'다이빙벨'의 감독 이상호 기자,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제공)
'다이빙벨'을 연출한 이상호 기자는 "(상영)해 주고 싶어도 위에서 막는다는 이유로 계약해지가 잇따른 적이 있다. 해외 영화제에 '다이빙벨'을 상영할 경우 한국 영화계에 불이익이 갈 수 있다는 말도 들었다"며 "의심이 사실로 확인됐을 뿐 크게 놀랍지는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은 "(시네마달에 대해) 내사 지시로 끝난 게 아니었고 통장까지 샅샅이 훑었다"며 "산업계 인적 네트워크를 훑으라는 것은 경제적인 부분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아니었겠나. 그래야 차은택(과의 관계)이 설명된다. '기존에 돈 버는 애들이 누구야, 그 중에 좌파가 누구야' 그들(좌파 예술가들)이 비켜줘야 자기들 룸(공간)이 생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천안함 프로젝트'를 틀었던 상영관 지원이 중단되고, '변호인'을 만든 최재원 대표가 지원을 못 받는 것들을 통해 영화계에 대한 탄압은 일상적으로 작동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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