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은 4월 퇴진론을 거부하고 정면승부를 취하더라도 비슷한 만큼의 임기를 채울 기회를 갖게 될 공산이 크다. 이 경우 비박계가 야당과 함께 탄핵안 표결에 돌입하겠지만, 이미 비박계 의원 상당수가 탄핵 찬성에서 유보로 돌아선 상황이어서 해볼만한 게임이다. 9일 국회에서 부결되면 면죄부를 받게 된다.
탄핵안 가결로 대통령 권한을 정지당해도 기회가 없지 않다. 헌법재판소 심판 단계에 돌입하면 최장 180일이라는 심판기간을 담보로 지지세력 회복 등 반전을 도모할 수 있다. 보수파가 다수인 헌법재판관 구성이나, 임기만료에 따른 헌법재판관 궐위 등 다양한 변수도 놓여 있다.
박 대통령은 "여야 정치권이 논의해 정권이양 방안을 만들면 그 법 절차에 따라 물러나겠다"(3차 담화)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여야의 합의도 아닌 데다, 법 절차를 거친 것도 아닌 4월 퇴진론을 거부할 명분으로 활용되기 충분하다.
'법적 근거가 없다'는 4월 퇴진론의 한계는 역으로 박 대통령에게 '수용해도 된다'는 확신을 줄 수 있다. 법적 구속력이 없어 법적 책임 면에서 부담이 없다. 박 대통령이 4월 퇴진론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후일을 도모하는 게 가능하다는 얘기다.
기존대로 "현행법상 2선 후퇴라는 용어는 없다"(청와대 관계자)는 입장을 유지하면서 박 대통령은 계속 국정을 주도하는 수순을 밟을 수 있다. 4월 퇴진을 수용했다가 향후 '면밀히 검토해보니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 등으로 이를 번복해도 법적 책임을 질 일이 없다는 얘기다. 새누리당 비박계는 대국민 약속을 어떻게 번복할 수 있겠느냐며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지만 박 대통령은 이미 검찰 수사에 응하겠다고 했다가 "공정성을 믿을 수 없다"며 번복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이 4월 퇴진을 약속했다가 번복하면 야권은 다시 한번 탄핵절차에 들어가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조건부 수용'을 통해 현상유지 기반을 만들 수도 있다. '제안을 받아들일테니 야당과 합의해 법 절차를 만들라'는 식으로 비박계에 공을 던져버릴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경우 박 대통령은 비박계를 더욱 혼란에 빠트려 탄핵안을 부결시키고 4월 퇴진론도 거부한 채로 대통령직을 유지해나가는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도 있게 된다.
여야 합의 요구는 최순실 정국 들어 '전가의 보도'로 활용되고 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박 대통령 퇴진 문제에 대해 "대통령께서 국회에 모든 것을 맡기지 않았느냐. 여야가 논의해서 조속히 결정을 내리면 거기 따르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