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덮친 '검열'… "'월간 검열' 내도 될 정도"

"모두가 연대해 '검열 게이트' 돌파에 힘 모아야"

1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세종대로 성공회빌딩 1층 뉴스타파 회의실에서 '헌정을 유린한 검열 게이트라는 공통관문 연대로 뚫자!'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제공)
"월간 '검열'이란 잡지를 내도 될 정도로 (언론·문화예술계에서) 밝혀진 (검열) 사례를 큰 것만 꼽아도 20여 건 정도 된다. 광주비엔날레에서 벌어진 홍성담 작가 탄압 문제에 많은 예술가들이 저항하며 비엔날레 참여를 거부했지만 언론에선 크게 보도되지 않아 개인적 문제로만 그쳤다. (…) 최선을 다해 검열에 대항했지만 시민사회 전체를 묶는 문제제기와 자기검열을 제대로 논의하지 못했다."

1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세종대로 성공회빌딩 1층 뉴스타파 회의실에서 '헌정을 유린한 검열 게이트라는 공통관문 연대로 뚫자!'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 사회를 맡은 임정희 문화연대 대표는 '월간 검열'이라는 비유로, 문화예술·언론계에 깊숙하게 퍼져 있는 '검열 실태'를 꼬집었다.

이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계속돼 온 흐름이다. 연극계에선 세월호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공연이 방해받는 일이 일어났고,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명예훼손' 여부를 판단해 인터넷상 게시물 삭제를 가능케 하는 심의규정 개정이 추진됐으며, 공공재인 전파를 이용하는 '공영방송'의 사장 인사에는 청와대의 강한 입김이 들어갔다. 올해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1만여명에 가까운 문화예술인들이 이름을 올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수면 위로 떠올랐고, 최근에는 언론 보도를 통해 영화 '다이빙벨'을 향한 탄압이 드러나기도 했다.

◇ 박근혜 정권 초기부터 시작된 '검열', 무엇이 있나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는 '언론/예술 검열 게이트의 철폐, 확장된 연합의 모습으로' 발제에서 왜 이런 현상이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더 심화됐는지를 설명했다. '신자유·신보수주의' 자체가 규준(실천의 본보기가 되는 표준) 바깥의 의사와 표현을 위험하고 악한 것으로 보는 체제라는 점, 예술이 지닌 저항과 전복 속성을 인정하지 않은 점, 특히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으로 대표되는 박근혜 정권은 창작자들을 '적과 동지'의 전쟁에 줄세움으로써 예술을 국가권력자원으로 흡수·동원했다는 점이 그 이유였다.

전 대표의 발제문를 보면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2013년부터 '검열 네트워크'가 이미 가동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3년 5월 국가보훈처장은 5·18 기념식 식순에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포함시키지 않았고, 서울지방보훈청은 '피 냄새'와 '총성'이라는 시어와 총 맞아 피 흘리는 시민의 모습을 문제 삼아 중학생의 시와 초등학생의 시를 문제삼았다. 시인 안도현은 트위터에 박근혜 비판 짤방(사진)을 올렸다가 검찰에 기소되고, 광복절 기념식 축하공연에서 아이들에게 체 게바라 티셔츠를 입힌 광주시립소년소녀합창단 지휘자는 중징계를 요구받아 결국 사퇴했으며,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는 3일 만에 상영중단을 통보받았다.

아리스토파네스 희곡 3부작 중 '개구리'는 박정희·박근혜를 비판하고 노무현을 미화했다며 보수단체로부터 항의받았고, 월간 '현대문학'은 '정치적 이유'로 이제하와 정찬의 장편소설 연재를 중단했으며, 박 대통령 참석이 예정돼 있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전에서는 청와대 직원이 다녀간 뒤 임옥상, 이강우 작가 등의 작품이 전시에서 빠졌다는 의혹도 나왔다.

홍성담 화백의 작품 '세월오월'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던 2014년에도 이같은 흐름은 계속됐다. 삼성의 백혈병 문제를 다룬 '또 하나의 약속'은 상영관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고, 박 대통령,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삼성 이건희 회장을 그린 홍성담 화백의 '세월오월'은 광주비엔날레에서의 전시가 유보됐다. 세월호를 이야기하는 다큐 '다이빙벨'은 상영관 배정은 물론 대관조차 불허됐으며, 문화체육부 산하 행정기구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갑질로 서울연극제가 대관심사에서 탈락했고, 한국공연예술센터가 운영하는 아르코예술극장·대학로예술극장이 '심사 서류 미비', '공공성에 부합하지 않는 작품' 등의 이유로 불허됐다.

또한 전 대표는 언론 역시 '검열 게이트'를 피해갈 수 없음에도, 보다 더 넓은 의미를 지닌 '통제'라는 말이 '검열 현실'을 가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장·본부장이 프로그램을 내리고 출연진을 배제하며 뉴스를 정하는 행위,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 세월호 뉴스 제작·편성을 사전·사후적으로 주문·제어하는 행위를 모두 '통제'로 지칭함으로써 "언론계에 실재하는, 뉴스생산 및 프로그램 창작의 예술에 작동하는 디테일한 검열 문제가 사회적 담론에서 빠져나간다"는 설명이다.

◇ "문화예술·언론계 연대해 '검열 게이트' 돌파해야"

임인자 서울변방연극제 전 예술감독은 박근형 작가의 '개구리'와 관련된 탄압 논란에 대해 "사회적 논란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예방한 것"이라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입장을 언급하며 "사회적 예방이 검열이 아니면 무엇이 검열인가. 헌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범법행위를 국가기관에서 나서서 하는 게 대한민국이다. 예술가들은 탄압과 선전의 도구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이명박 정부에서부터 정치·문화·사회적으로 전반적인 퇴행이 일어난 것이 사실이다. 이 퇴행의 원제가 무엇인가. 과연 대통령과 그 세력들만 물러나면 되는 건가. 결국 그 이전부터 이어진 '체제' 자체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승호 뉴스타파 PD는 "'유신 체제'에서도 아버지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사람이 권력 중심에 있으니 그야말로 파시스트 체제를 닮은 검열 체제가 이룩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면서 "문화예술계보다 훨씬 강력한 통제 일어나는 곳이 공영방송이고, 그게 다른 영역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현재의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근본적으로 갈아 엎어야 한다. 관련 법안이 국회 미방위에 제출돼 있는데 새누리당이 죽어라 반대하고 있다. 빨리 법안을 통과시켜 공영방송을 국민이 되찾을 수 있게 하고, '새로운 방송'을 해야 한다"고 전했다.

전 대표는 "검열은 문화예술계와 언론계 모두에 전방위적으로 벌어졌는데도, (힘을 합치지 못하고) 분야마다 개별적으로 분노하고 대응했다"며 '모두의 연대'를 통해 '검열 게이트'를 돌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는 대학로 X포럼·박근혜 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언론개혁시민연대·전국언론노동조합·진보네트워크센터·한국기자협회·한국독립영화협회·한국PD연합회가 공동 주최했다.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 송경동 시인,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임인자 연극인, 조한규 세계일보 전 사장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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