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캐스팅보터인 새누리당 비주류 일각은 박 대통령의 임기 단축만을 위한 개헌에는 반대한다며 내각제 도입과 패키지로 엮인 개헌안을 탄핵과 맞바꿀 협상안으로 제시했다. 제 3지대에 위치한 국민의당은 비박계의 이 같은 이탈 기류를 근거로 1일 탄핵안 발의에 반대했다.
개헌파 입장에선 2일 표결 무산에 이어 5일 또는 9일에도 탄핵안 발의가 무산되거나 발의돼도 부결되는 것이 오히려 유리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박 대통령이 스스로 사임하지 않을 경우 탄핵 불발 이후 법적인 퇴진 절차는 개헌에 의한 임기단축만 남는다.
◇ 탄핵 대오 이탈해 '개헌' 향하는 非朴
국회에는 비박계의 이탈 기류로 탄핵이 물 건너갔다는 전망이 팽배해졌다. 당초 비박계는 40여명의 탄핵 성향 의원들을 모집, 야권 성향 표심(179석)에 더해져 의결정족수(200)를 채울 것으로 기대됐었다.
극적인 입장 전환의 중심에는 김무성 전 대표가 있다. 김 전 대표는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의 회동 뒤 기자들과 만나 "4월말 대통령의 퇴임이 결정되면 굳이 탄핵을 가지 않고"라고 말했다.
추 대표는 김 전 대표와의 회동 뒤 9일에도 비박계가 탄핵 참여 의사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전날) 우리 의원들과 함께 김 전 대표에게 확인했더니 지금까지 공개된 비박계의 내용은 똑같았다. 회담 후 보도된 내용은 참으로 경악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같은 이탈 기류는 박 대통령의 담화가 있었던 29일 이미 감지됐다. 몇몇 의원들이 사석에서 비상시국회의의 '여야 합의 불발시 9일 표결 강행' 입장에 대해 "너무 강경하다"고 비판했다
비주류 협상파의 핵심 논리는 내각제 개헌과 탄핵을 맞바꾸자는 것이다. 야권에 탄핵 동참을 양보하는 반대급부로 개헌을 얻어야 한다거나, 탄핵을 대체할 임기단축 개헌 협상에 내각제 혹은 이원집정부제 개편 방안을 엮자고 주장하고 있다.
비상시국회의 간사인 황영철 의원은 지난 30일 "국민들이 대통령 임기 단축을 위한 개헌 절차에 동의하기 어렵다"면서도 권력체제 개편 논의가 포함될 경우에 대해 "여야가 합의하면 많은 부분이 들어갈 수 있다"며 긍정 평가했다.
◇ 합의 쉬운 '탄핵' 대신 어려운 '개헌' 고집 왜?
들끓는 탄핵 민심에도 불구하고 정치권만의 개헌 고집이 가능한 배경에는 '어려운 상황에서는 원수끼리도 협력한다'는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이해관계가 깔려 있다.
박 대통령과 친박계는 어떻게든 탄핵 표결을 막는 것이 지상과제이기 때문에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복잡한 개헌 카드야 말로 판을 흐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최순실 게이트의 스모킹 건이 됐던 태블릿PC 공개 직전 뜬금없이 개헌 제안을 한 장본인이 박 대통령이다.
당 대표에서 물러난 뒤 지지율이 급전직하한 김무성 전 대표에겐 내각제 개헌이 국면 전환 카드가 될 수 있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주류 세력 외부에 존재하는 김종인 전 대표와 박지원 비대위원장 등도 새로운 계기가 필요한 건 마찬가지다.
집권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세력 입장에선 개헌으로 분권형 권력 구조로 바뀌어야 권력의 일부라도 차지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 김 전 대표가 대선 불출마 선언 다음날 "친문‧친박 패권주의를 제외한 어느 세력과도 손을 잡을 수 있다"고 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 퇴진과 권력구조 개편을 패키지로 묶는 방식은 비(非)민주적이란 지적이 나온다. 퇴진에는 찬성하지만, 내각제에 반대하는 민심을 억지로 묶어두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친박이 실제 탄핵 무산 뒤에도 같은 배에 머물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부결되면 박 대통령의 임기가 보장되기 때문에 굳이 개헌 대오에 남아 있을 유인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여권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탄핵 카드를 끝까지 세게 갖고 있어야 박 대통령의 퇴진과 친박 지도부의 사퇴, 둘 다를 얻을 수 있는 길인데 내각제 욕심 때문에 다 망가졌다"며 개헌파를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