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내던져진 두 미국 여자, 할머니와 소녀 이야기

미국 소설 '고아 열차'

미국에서는 1854년부터 1929년까지 이른바 ‘고아 열차’가 동부 도시에서 중서부의 농촌으로 수십만 명의 버려진 아이들을 실어 날랐다. 그들이 친절하고 사랑이 넘치는 가족에게 입양될지, 고된 노동을 하며 노예나 다름없는 상태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될지는 그저 운과 우연에 달려 있었다.

신간 <고아 열차>의 주인공인 비비언 데일리 또한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아일랜드에서 뉴욕으로 건너와 불확실한 미래가 기다리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거의 평생을 미네소타 주에서 살다가 은퇴 후에야 다시 동부의 메인 주에 있는 해변으로 돌아와 고요하고 평화로운 여생을 보내는 중이다. 올해 아흔한 살인 그녀의 어린 시절 기억은 안개가 낀 듯 희미하기만 하다. 그러나 그녀의 다락방에 쌓인 상자들 속에는 격렬한 변화가 휘몰아쳤던 과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열일곱 살 소녀 몰리 에이어는 이 나이든 노부인의 다락방 정리를 돕는 사회봉사 활동이 그저 소년원에 가지 않기 위한 방편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비비언이 간직해온 물건들을 함께 정리하면서 몰리는 두 사람이 겉보기만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퍼노브스콧 인디언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여러 위탁 가정을 전전하며 지내온 몰리 또한 낯선 사람들의 손에 길러진 아웃사이더로 자신의 과거에 대해 풀리지 않는 의문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고아 열차>는 3인칭 전지적 시점으로 몰리의 섬세한 심리를 따라가는 현재의 메인 주와 1인칭 시점으로 비비언의 삶의 요철을 더듬는 대공황기의 미네소타를 오가며 펼쳐진다. 이 작품은 잊힌 미국 역사의 한 장을 치밀한 밑조사로 생생하게 되살려낸 가장 지역적인 이야기이자, 고난과 극복 그리고 예기치 못한 우정을 그린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이다.

책 속으로

천국이 그런 데가 아닐까. 우리가 가장 훌륭한 모습으로 머무르는 타인의 기억 속 한 공간. _12쪽


그녀가 가정위탁양육제도에서 가장 질색하는 부분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의지해야 한다는 것, 그들의 변덕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녀는 어느 누구한테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법을 터득했다. _21~22쪽

“견디면 돼.” 남자아이가 말한다. “아니면 도망치면 되고. 운이 좋으면 죽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도 몰라.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선하신 주님만이 아는데 그분은 알려주질 않지.” _66쪽

나를 사랑하거나 돌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니, 항상 밖에서 안을 바라보고 살아야 하다니, 가련한 어린 시절이다. 실제보다 열 살은 더 먹은 느낌이다. 나는 아는 게 너무 많다. 사람들의 가장 못난 모습, 가장 극단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을 보고 나니 경계심이 생긴다. 그래서 가식적으로 행동하는 법,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법, 실제로는 아무 느낌도 없으면서 공감하는 척하는 법을 터득하고 있다. 속으로는 마음이 무너지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법, 남들과 똑같이 보이는 법을 터득하고 있다. _167쪽

시간은 줄어들기도 하고 넓게 퍼지기도 해. 무게가 일정하지 않아. 어떤 순간은 머릿속에 머물고 다른 순간들은 사라져버리지. _256쪽

내가 오래전에 터득했다시피 상실은 있을 수 있는 일을 넘어 불가피한 일이다. 나는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이, 하나의 생을 놓고 다른 생을 찾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안다. 그 교훈을 몇 번이고 거듭 깨닫는 것이 내 운명인 것 같다는 묘하고 강한 확신이 든다. _353쪽

크리스티나 베이커 클라인 지음 |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400쪽 | 1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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