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방송된 EBS 저녁뉴스에 출연한 교육부 이영 차관은, 앵커로부터 '현대사 부분에서 역사학자가 없다. 결국은 정부 입맛에 맞는 집필자를 선정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는 질문을 받자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의) 현대사 부분에 교수 7명, 교사가 있습니다. 교사는 현대사 전공을 한 게 맞고요, 교수들은 실제로 정치쪽, 경제쪽, 법, 군사쪽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이 실제로 그 분야 담당 영역의 경제사적인, 정치사적인 역할을 하시거든요. 법하시는 분들은 당연히 그동안 우리나라의 헌법이 개정된 것들을 보면 우리나라의 흐름을 볼 수 있고요."
이 차관은 특히 "물론 역사학자들이 들어온 게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현대사의 영역에서는 아직은 모든 게 정리된 부분이 아니니, 각 분야를 담당하는 분들이 들어와서 하는 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역사학계에서는 "말도 안 되는 황당한 거짓말"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1일 CBS노컷뉴스에 "(이 차관의 설명은) 모두 거짓말로 사후 변명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이 연구위원은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에 '왜 현대사 집필진을 비역사학 전공자들로만 채웠나'라고 물으니 '현대사 연구가 일천해서 전공한 사람이 별로 없다'는 황당한 얘기를 하더라"며 "하지만 서울대에 현대사 전공 교수가 있다.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 성균관대 등 주요 대학에는 모두 현대사 전공 교수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분들 모두 지난 20, 30년간 현대사를 열심히 공부한 전공자들이다. 교수 말고도 현대사 전공 학자들이 굉장히 많다. (정부가) 역사학계의 상황을 호도하는 황당한 이유를 갖다 붙이면서 '사회과학자들로 집필진을 채울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그는 "정부 측 논리는 '사회과학 전공자들이 역사교과서도 쓸 수 있지 않냐'는 것인데, 그런 식으로 따지면 대학에서 물리학과 학생이 수학 공부를 했다고 수학교과서까지 쓸 수 있다는 것"이라며 말을 이었다.
"(역사교과서를 만들려면) 기본적으로 전공 분야의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필진을 구성하고, 정 필요하다면 일부 비전공자, 그것도 역사와 관련한 연구를 상당히 많이 했고 역사학의 연구 동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을 포함시킬 수는 있다. 필진 전체를 비전공자로 꾸리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이 연구위원은 "역사학은 정치·경제·사회 등 인간의 삶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지향하기 때문에 특정 분야의 역사만 안다고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박정희 미화 등 정부의 국정교과서 추진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역사학계 전반에서 집필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나마 전근대사, 근대사 부분에서는 국정교과서에 찬성하는 극소수 연구자가 있으니 그들로 채웠는데, 현대사 전공자들이 아무도 참여하지 않으려 하니 비전공자들로 채운 것이다. (정부가) 처음부터 그렇게 이야기하면 될 것을 거짓말로 상황을 계속 호도하고 있다."
◇ "어른도 이해 못할 정치·경제 용어 난무…학생들 눈높이마저 외면"
"비전공자들이 모여 역사교과서를 쓴다는 것은 애초에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역사학자 중에 경제사학을 전공한 학자들도 많은데, 그분들이 (현대사의 영역에서는 아직은 모든 게 정리된 부분이 아니니, 각 분야를 담당하는 분들이 들어왔다는 정부의 변명을) 받아들일 수 있겠나. 정부에 협력할 현대사 분야 학자가 없었다는 점을 숨긴 채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심 소장은 "각 분야 사회과학 전공자들이 들어와 자기 관점으로 교과서 내용을 쓰는 바람에 현대사 부분이 굉장히 건조해졌다"며 "어른조차 이해 못할 경제·정치 용어가 굉장히 많이 나오는데다 쓸 데 없이 자세한 내용들 역시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이번 국정교과서 가운데 한국전쟁 부분은 군사학을 전공한 (나종남) 육군사관학교 교수가 쓴 것으로 보인다. 기존 검인정교과서는 전쟁 내용도 서술돼 있을 뿐 아니라 민간인 학살 등 전쟁 속 참화, 피해 내용도 들어갔다. 그런데, 이번 국정교과서는 거의 전쟁 얘기만 하고 있다. 박정희를 서술한 부분에서도 쓸 데 없이 녹화사업 등이 강조됐는데, 각자 자신의 사회과학 분야를 특화시켜 굉장히 자세히 서술한 데 따른 부작용이다."
이준식 연구위원과 마찬가지로 심 소장 역시 "역사학은 본래부터 역사 전체를 수렴하고 종합해 객관적으로 정리하는 총체성의 원리에 따라 서술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와 별도로 역사교육은 학생의 눈높이에 맞춰 이뤄져야 한다"며 아래와 같이 꼬집었다.
"지금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을) 보면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과서 내용의 차이가 없고, 특정 부분은 오히려 중학교 교과서가 더 어렵다. 학생들이 이해하지 못할 경제·정치·법 용어도 많이 나온다. 역사학이 지닌 총체성의 부재가 (국정교과서에서) 계속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분들(집필진으로 참여한 역사학 비전공자들)이 자기분야에 특화된 전문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학생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교육적 원리가 없는 교과서로 어떻게 공부하냐는 점이 큰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