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희 체제는 현재 한국 자본주의의 원인
- 우리가 살고 싶은 삶이 이전 그대로 사는 것인가?
- 다시 급진주의의 상상력 지펴 올릴 수 있어야
- 전인권의 가사, 새로운 꿈을 꾸자는 것은 무슨 말인가?
무엇이 당신의 새로운 꿈인가?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19:50)
■ 방송일 : 2016년 11월 30일 (수) 오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이택광 (경희대 교수)
◇ 정관용>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할 것이다. 혁명은 장밋빛으로 장식된 침대가 아니다. 불가능한 일은 없다. 무능력한 사람만 있을 뿐이다. 이런 말을 남긴 사람 바로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미국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죽지 않겠다라고 했던 그가 향년 90세로 사망했죠. 그런데 이 카스트로가 80년대 우리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도 아주 관심이 많았었다 그럽니다. 그래서 오늘 문화비평가 경희대학교 이택광 교수의 일상다반사 카스트로 이야기를 좀 나눠보겠습니다. 이택권 교수, 어서 오십시오.
◆ 이택광> 반갑습니다.
◇ 정관용> 많이 알려져 있지만 카스트로 짧게 좀 설명해 주시죠.
◆ 이택광> 그렇죠. 60년대의 극진주의의 아이콘 같은 사람이죠. 체 게바라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카스트로는 조금 상대적으로 아무래도 국가의 수반으로 활동을 오래했기 때문에 덜 알려져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카스트로가 없었다면 쿠바혁명도 없었을 것이고.
◇ 정관용>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손을 잡고 같이 혁명을 이룬 거죠?
◆ 이택광> 같이 혁명을 이뤘던 것이고 동지적 관계였다고 볼 수 있고요. 그런데 카스트로는 비판도 많이 있습니다.
◇ 정관용> 독재정권이었던 것만.
◆ 이택광> 철권 정치를 했다고 할 수 있는데 어쨌든 간에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소련과는 다른 어떤 혁명의 양상들을 보여줬고요. 또 제3세계 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제3세계 연대 이런 것을 실천했던 대표적인 제3세계 운동가죠.
◇ 정관용> 그런데 80년대 한국 민주화 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88서울올림픽하고도 관련이 있었다면서요.
◆ 이택광> 사실 88올림픽이라는 것이 한국에 있었는데요. 제가 그때는 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는 학생이었고 그런데 피델 카스트로가 올림픽 참가 여부를 놓고 그 당시 사마란치 올림픽 조직위원장에게 보낸 편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쿠바 선수단에게 보낸 편지가 있어요. 그러니까 국가수반으로서. 그 두 편지를 보면 내용이 뭐냐 그러면 지금 한국에서는 88올림픽을 한다고 상계동이나 창동이나 그런 빈민지역에 있는 그 주민들을 쫓아내고 있다. 국가가 강제로 거기에 살고 있는 빈민들을 쫓아내고 그 자리에다 경기장을 짓고 있고 도시 미화라는 명분으로 많은 가난한 사람들의 터전을 빼앗고 있다. 그리고 또 여기에 반대하는 학생들과 또는 한국 민중들의 저항들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는데 이런 나라에 가서 우리가 올림픽에 참가한다면 과연 그게 도덕적으로 정당한 것인가. 이런 식의 편지를 보냈어요.
◇ 정관용> 사마란치에게도.
◆ 이택광> 사마란치에게도 보내지고 또 자기들 국가선수들한테도 보냈죠. 국가대표 선수들한테도.
◇ 정관용> 불참하겠다는 거예요?
◆ 이택광> 불참하겠다는 거죠. 왜 이게 문제가 되느냐 하면 사실 아시겠지만 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미국이 불참을 하게 됩니다.
◇ 정관용> 맞아요, 그랬어요.
◆ 이택광> 아프가니스탄 사태 때문에 불참을 하게 되고.
◇ 정관용> 80년 모스크바올림픽.
◆ 이택광> 그 다음 84년 LA올림픽에도 소련이 불참해요.
◇ 정관용> 맞아요. 서로서로 불참했죠.
◆ 이택광> 서로 불참하면서 이제 더 이상 불참하지 말고 사실 올림픽이라는 것은 정치적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순수한 스포츠로 남겨두자, 그렇게 합의를 하게 되고 그 다음 실시를 하게 되는 게 88년 서울올림픽이었습니다. 굉장히 의미가 있는 거죠. 냉전의 중심지에서 올림픽의 정신을 회복하자, 이런 것들이 더 강했던 거죠.
◇ 정관용> 그래서 미국, 소련 다 왔죠?
◆ 이택광> 미국, 소련도 오고 심지어 중국도 오고 다 왔습니다. 쿠바만 참가를 안 한 거죠. 당연히 북한도 안 왔고요. 그때 88년 올림픽이라는 것이 글로벌 자본주의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굉장히 중요한 시기였던 거죠. 모든 국가들이 모여가지고 물론 스포츠 게임을 함께하는 것이었지만 정치와 스포츠를 분리하고 거기에 어떤 세계화합, 세계 번영 이런 식의 어떤 기치를 내걸 때였는데 쿠바는 민중의 탄압 위해서 만들어진 번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문제제기를 한거죠. 어떻게 보면 그 당시에 광주로부터 이어졌던 한국 민주화운동에 대해서 지지를 보내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고 그때는 한참 광주 문제가 해결이 안 됐고 88올림픽을 유치하고 또 실행하려고 했던 당사자들이 전두환 정권입니다. 전두환 정권이 이걸 유치함으로 인해서 자기들이 일으켰던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인정을 받고 싶었던 거죠. 다시 말하면 자기들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받고 싶어 했거든요.
◇ 정관용> 그렇죠. 3S 정책. 스포츠, 스크린, 섹스. 그런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한 거 아니겠습니까?
◆ 이택광> 그렇죠. 그래서 대중문화라는 것도 그때 최초로 도입이 되고 컬러TV도 도입되고 쉽게 말하면 엔터테인먼트를 정치적으로 사용하는 최초의 정권이었다고 볼 수가 있죠. 이런 내용들은 사실 지금 인터넷 아카이브에 1988년 올림픽과 관련된 아카이브가 있는데 거기에 카스트로 편지들도 다 보관이 돼 있더라고요. 저도 다시 가서 읽어보니까 감회가 새로웠고 그 당시의 대학생들에게도 카스트로의 편지는 전달이 됐었어요. 누군가가 번역해서 대학생들은 그걸 좀 돌려보면서 읽었죠, 그 당시에.
◇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런 카스트로가 눈을 감았는데 지금 87년, 88년 대한민국의 광화문 광장과 오늘의 광화문 광장. 오늘의 광화문광장을 카스트로가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요?
◆ 이택광> 아마 상당히 놀라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 당시 88년도에는 모여서 뭘 한다는 것 자체는 있을 수 없었죠.
◇ 정관용> 전부 최루탄 쏘고. 잡혀가고 그러니까요.
◆ 이택광> 원천봉쇄라는 것이 그 당시 시위의 특징이었습니다. 일단 경찰들이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게 만들었고 3명이라도 보이면 최루탄을 쐈기 때문에 이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여가지고 이런 시위를 한다든가 또는 집회를 한다든가 축제를 벌인다든가 이런 것은 불가능했어요 그러니까. 그냥 시위만 금지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축제, 관제 축제가 아니면 허락을 하지 않았죠. 일단 모이는 순간 그게 그냥 집회 결사의 자유에 분명히 위배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헌법에 명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걸 그냥 무시하고 잡아가는 분위기들이 있었고 그래서 대부분의 어떤 그러한 88년도에 가지고 있던 그런 민주화운동의 어떤 영향들 이런 것들이 지금 현재도 계속 되고 있다고 볼 수가 있는데 한 가지 이런 의문은 듭니다. 그 당시에 카스트로가 이야기했던 한국의 민주화운동이라는 것은 광주항쟁으로부터 이어지는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려고 하는 그러니까 그 당시로 본다면 박정희가 만들어놓은 한국 자본주의죠. 그 자본주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그런 민중운동이었다는 거죠. 굉장히 급진적인 운동이었어요. 다시 말해 체제를 바꾸자는 결국 박정희 세대를 바꾸자는 것이었고 어떻게 보면 세계 자본주의의 일부로서 움직이고 있는 과정에서 한국의 노동자들은 끝내 착취당할 수밖에 없는 그런 구조를 바꾸자. 이런 주장이었다는 거죠. 그런데 지금 이제 광화문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수적으로는 굉장히 많이 드러나고 양적으로는 굉장히 발전을 했지만 여기에서 외쳐지고 있는 구호라는 것은 조금 카스트로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민주주의가 불리어지고 있는 거죠.
◇ 정관용> 어떤 거요?
◆ 이택광> 바로 자유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공화국은 공화국인데 자유민주주의공화국인 거죠. 그래서 이 두 민주, 이름은 다 민주지만 저는 상당히 차이가 있는 거 아니냐, 생각이 들고요. 그만큼 한국이 보수화되는 그런 걸 보여주는 게 지금 광화문집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표적인 게 뭐냐 그러면 80년대에 우리들에게 익숙했던 시위문화에서 불려지던 노래들은 민중가요들이었어요. 응답하라 시리즈가 있는데 케이블 방송에서 했던. 거기에도 보시면 주인공들이 고향에 돌아가서 시위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대학생들이 바위처럼을 부릅니다. 90년대 유행했던 민중가요죠. 다시 말하면 바위처럼이라는 노래가 사실은 시위 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 같은 것이었죠. 그런데 지금 광화문에서 불려진 노래들은 민중가요들이 아니에요. 대중가요죠. 그리고 이유는 댑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기 때문에 민중가요를 모를 수 있다라는 건데.
◇ 정관용> 특히 젊은 세대들은 모르죠.
◆ 이택광> 물론 민중가요가 대중성을 획득하는 데 실패한 측면도 있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노래라는 것이고 다시 말하면 한국이 보수화되는 하나의 징후를 보여주는. 보수화 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계급적인 관점들이 사라지고 여기에 그냥 시민이라고 불리는. 어떻게 하면 시민이라고 불리는 그런 특정한 집단들에 대한 관점들이 새롭게 등장하는 거죠. 시민들은 어떻게 보면 중산층일 수도 있고 실질적으로 경제적으로는 중산층이 아니라 하더라도 중산층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 수도 있고 이런 사람들만을 어떤 광장에 모일 수 있는 권리라고 생각하는 경향들도 좀 있는 것 같고요. 대표적인 게 이번에 농민들이 트렉터를 타고 왔지 않습니까? 그래서 토요일날 이른바 경부고속도로에서 막혀서...
◇ 정관용> 트렉터는 못 왔죠.
◆ 이택광> 트렉터는 아예 오지도 못하고 몇 분의 농민들도 사실은 연행되고 그럴 때 다 그런 건 아닙니다. 그 광화문광장에 모여계시던 분 중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여기 왜 오냐 너희들이 이렇게 얘기하는 분들도 계셨어요. 그래서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런 목소리도 엄연히 그 안에 있었다는 거. 그분들이 생각하는 그런 광장은 뭐냐 하면 그런 분들은 올 수 없는 곳이라는 거죠.
◇ 정관용> 알겠습니다.
◆ 이택광> 일정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 그러니까 평화시위라고 불릴 수 있는 그런 걸 할 수 있는. 물론 평화시위라는 것은 당연히 우리가 지켜야 될 권리지만 그런 합법적 시위의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이 카스트로가 그 당시에 한국의 민주화 운동이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좀 온도 차가 있는 게 아닌가.
◇ 정관용> 카스트로가 생각한 80년대의 한국 민주화 운동. 물론 한국 민주화 운동. 특히 학생 운동을 중심으로 해서는 매우 급진적이고 과격한 민중 민주주의하고 관련된 민주화 운동이 있었지요. 그러나 그것의 결과인 87년 민주 대항쟁은 온 국민이 함께 대통령 직선제 정책 하나로만 모아졌던. 그래서 결국 직선제 정책하고 나니까 운동의 동력은 상실되고 선거를 통해서 제도적인 민주주의는 형성이 됐는데 정작 노태우 정부를 탄생시킨 우리 그런 경험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마찬가지로 광화문 광장에 100만, 150만이 모여 있지만 이 안에는 노동자 농민 민중도 있고 시민도 있는데 시민들이 노동자, 농민이 여기에 왜 와 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걸 얘기하는 거군요?
◆ 이택광> 상당히 슬픈 이야기죠, 그것이. 그런데 이것도 되새겨보셔야 될 게 있는데 뭐냐 하면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에 국회의원이 됐을 때 그때 내건 공약이 있습니다. 여러 공약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뭐였냐 하면 민중 민주주의의 완전한 달성이었어요. 그 뒤에 벌어졌던 상황들과 비교를 해 보시면 정말 그 공약 자체가 너무 쌩뚱맞은 공약이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러니까 그때는 그런 공약을 걸고도 국회의원이 됐다는 거죠.
◇ 정관용> 그때가 88년이니까요.
◆ 이택광> 그렇죠. 그러니까 그런 식의 분위기들이 사실은 그 뒤에 사라지게 되는데 왜 사라졌을까를 저는 좀 생각을 해 봐야 할 것 같고요. 그게 결국은 우리가 이 체제의 한계를 넘지 못한 게 아니냐, 급진주의라고 불릴 수 있는 것들이 실제로 체제 속으로 흡수돼 버린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고 장식만 급진주의지 실질적으로는 급진주의 동력이 상실된 그러한 생각이 듭니다. 급진주의라는 것은 뭐냐 하면 사실 절대적 평등에 대한 주장이에요. 모든 사람들이 다 동일한 권리를 가지고 있고 동일한 자격을 갖고 있고 그러한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 사회적 이상이다라는, 그런 것의 합의라는 것이죠. 평등에 관련된 것들은 사실 합의되기가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등 이상이라는 것은 합의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것을 지향하는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경청해 보고 그걸 주장했을 때 그 사람들에게 무슨 불이익이 가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그런 사회가 사실 더 평등한 사회거든요. 그런데 그러지 않고 어떤 그런 문제들에 대해서 그냥 입을 닥쳐라, 이렇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상당히 평등의 이상을 추구해야 하는 사회에 상당히 문제를 초래할 수가 있는 것이죠.
◇ 정관용> 오늘 이택광 교수는 현재 박근혜 퇴진, 하야 이 요구로 하나도 모여져 있는 국민의 목소리지만 그럼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난 그 후는 어떤 사회를 말하는 것이냐.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거지요
◆ 이택광> 결국 박정희 체제로 돌아가는 것밖에 없어져버린다는 거죠. 이대로 한다면 우리가 박정희 딸을 쫓아낼 수 있겠지만 박정희 체제를 극복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상황이 아닌가 생각이 들고요. 결국 박정희 체제라는 것은 이런 한국식 자본주의를 만들어낸 원인이지 않습니까? 그렇죠? 저는 지금 현재 광화문에 모여 있는 많은 시민들이 원하는 것들은 정권교체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박근혜 퇴진이고 그 다음에 그 박근혜 정부를 탄생시킨 새누리당에 대한 심판이고 저는 그런 게 당연히 있어야 된다고 봐요. 그리고 그게 관련돼서 반성도 해야 하고 그 당사자들은. 그런 것이 요구돼야 하지만 그 뒤의 생각들도 해야 된다는 거죠.
◇ 정관용> 그 뒤에는 어떤 거?
◆ 이택광>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고 결국 박정희라는 그늘을 벗어나야 하는 게 아니겠느냐, 박정희가 만들어놓은 이 모든 모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시 급진주의에 대한 생각들을 회복해야 된다. 상상들을 회복해야 한다는 거고요. 전인권 씨가 나와서 노래 부른 것 중에 결국 새로운 꿈을 꾸자, 이런 말들이 있지 않습니까? 이 새로운 꿈의 내용을 우리가 채워야 한다는 거죠.
◇ 정관용> 박정희 대통령의 딸을 쫓아낼 수는 있으나 다시 박정희 체제로 돌아가는. 그것이 아닌 새로운 꿈이 뭐냐. 이런 질문을 던지자 이 말이군요. 카스트로가 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고 수고하셨습니다.
◆ 이택광> 감사합니다.
◇ 정관용> 경희대학교 이택광 교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