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절대 다수의 머리 위에 군림하는 세상에서도 '이분법이 위험하다'는 가르침은 여전히 유효할까. 때로는 복잡다단하게 포장됐을지 모를 사회 부조리를 명료하게 드러내는 혜안을 '위험한 이분법'이 제공할 여지는 없을까.
지난해 개봉 당시 400만 관객 가까이 모은 흥행작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다음달 22일 흑백영화 버전으로 극장에 걸린다는 소식이 눈길을 끈 이유도 이러한 물음에 있다.
할리우드 SF 블록버스터라는 외피를 쓴 이 영화는 모순으로 가득찬 체제의 전복이라는 남다른 속살을 품고 있다. 흑백영화라는 이분법 구도는 이 영화의 이러한 메시지에 보다 선명한 색깔을 부여하는 효과적인 장치다.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세계관은 지배와 피지배라는 이분법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핵전쟁으로 인류 문명이 사라진 22세기, 얼마 남지 않은 물과 기름을 차지한 소수 특권 계급과 그들의 통치를 받는 굶주리고 헐벗은 다수 민중이 그 뚜렷한 구도다.
이 영화를 연출한 거장 조지 밀러 감독은 "몰락한 디스토피아 세계로 가는 일은 중세로 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생존에만 관심이 있다"며 "계급 구조가 뚜렷해지고 권력을 가진 소수가 다수 위에 선다. 이런 세계에서 극중 맥스의 목표는 과거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현실로 눈을 돌리게 된다. "당장 퇴진하라"는 광장의 요구에 '모르쇠' '버티기' '떠넘기기'로 일관하는 지도자를 둔 우리에게 흑백논리, 곧 이분법은 어떠한 의미를 갖게 될까. 당장 눈앞에 버티고 있는 거악을 걷어내야만, 진정한 다양성이 꽃필 수 있는 상태라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상영시간 말미에 따라붙는 의미심장한 자막 한 줄이 있다. '희망 없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위해 나아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그 답은 영화 속 주인공으로서 지배와 피지배 모두에서 벗어나 있는 이방인 맥스의 선택에서 찾을 수 있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흑백 버전의 제목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블랙 앤 크롬'이다. 조지 밀러 감독의 원래 의도에 따라 본편 전체가 흑백영화로 재탄생했다고 배급사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측은 전하고 있다.
조지 밀러 감독은 "포스트 묵시록 영화에는 흑백영화가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절망적인 시대에도 어떤 횃불, 이를 테면 인간애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