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방송된 '다큐 3일-2016 촛불, 대한민국을 밝히다'는 24일 오전부터 27일 오전까지 서울 광화문 광장의 72시간을 담았다.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 받은 대통령이 비선실세에게 사실상 국정을 맡긴 '초유의 사태'를 두고 볼 수 없어 나온 수많은 시민들의 목소리가 방송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평소 따뜻한 시선으로 우리 주변의 일상을 풀어나가는 '다큐3일'이지만, 이번 방송은 그간 방송과 결을 달리 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따가운 비판과 실망, '박근혜 그 이후' 어떤 세상이 왔으면 좋겠는지에 대한 바람들이 가감 없이 드러나 있었던 까닭이다.
◇ "그만 내려와서 국민들을 편하게 해 줬으면"
"차가운 바람도 궂은 날씨도 대통령의 퇴진을 바라는 시민들의 발걸음을 막아서지 못했"고, "광장을 밝히는 150만개의 촛불은 누가 대한민국의 진정한 주인인지를 담담히 말하고 있"다는 내레이션에서부터 간간이 등장한 '박근혜 대통령 퇴진' 현수막, "박근혜를 하옥시켜라"라는 가사의 하야가, "민주주의 파괴하는 근혜 OUT"이라는 구호까지.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사태를 불러일으킨 박 대통령을 향한 싸늘한 민심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러나 정말 아픈 곳을 찌른 것은 촛불을 켜고 있는 시민들이었다. 대부분 몇 주째 광장에 나오고 있다는 이들은 "벌써 5주째다. 그만 내려와서 국민들을 편하게 해 줬으면…"이라고 하는가 하면 "진짜 나라를 생각하는 대통령이라면 물러나야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 표를 던졌던 시민들은 특히나 참담함을 감추지 못했다. 시민 이정훈 씨는 "사기당한 것 같다. 배신감도 느끼고 분하고 어쩔 때는 식은땀 나고 잠도 안 온다"며 "지역으로 나눠서 할 게 아니고 국민들이 이성을 찾아서 선거를 잘해야 이런 게 없어지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 역시 "내가 뽑은 대통령이라 참담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면서도 "잘못한 것을 바로잡고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 사비로 팸플릿 찍고, 교통정리하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사람들
촛불집회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돈을 들이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대구에서 온 박재현 씨는 집회에서 쓸 팸플릿 10만 장과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자는 손수건 10만 장을 개인 돈으로 만들었다. 대구는 박 대통령의 고향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대한민국이 다 똑같은 거지 지역적으로 어디가 어디 편이라고 하는 건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옳거나 틀림에 대한 게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
처음으로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김해에서 왔다는 조명선 씨는 "우리 애들이 살아갈 미래니까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라며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는 나라. 자기 힘으로 노력하면 좋은 세상으로 갈 수 있다는 걸 (아이들에게) 느끼게 해 주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광화문 광장에는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집회에 참여하는 이들도 있었다. 통신량 폭주에 대비해 기지국을 추가 설치하는 통신업체 직원들, 집회에 참여한 중고등학생들을 위해 간식거리를 준비한 교사 부부,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일하는 지하철 직원까지 마음은 모두 하나였다.
◇ "국민들이 이혼하자는 데 아무 대꾸가 없다"
노력한 만큼 기회가 주어지고,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나라에 살고 싶다는 바람은 남녀노소 할 것 없었다.
70대 장세철 씨는 "저희는 (촛불집회를) 4.19 때부터 했다. 중앙청광장에서부터 청와대(경무대)까지 들어갔다가 장면 정권이 들어섰는데 5.16 박정희 쿠데타가 났다. 군대로 돌아간다고 해놓고 다시 유신체제를 해가며 독재를 이어갔다. 그러니까 이런 상황까지 와서… 제 나이가 80세가 된다. 그러니까 후세를 위해서 (나왔다)"고 말했다.
가방에 주판알과 밥그릇을 들고 다니는 최기호 씨는 "(정치인들이) 주판알만 튕기고 밥그릇 싸움만 한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며 "대통령이 국민하고 결혼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한 3년 살아보니까 짜증이 난다. 그래서 국민들이 이혼하자 그러는데 지금 조정기간인가 봐. 아무 대꾸가 없으니 어떡해"라고 반문했다.
중고등학생도 예외는 아니었다. 학생들은 '중고생혁명'을 깃발을 휘날리며 명동에서부터 광화문까지 걸었다. 그들은 비선실세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의 대학입학 특례에 쓴소리를 내기도 했고, 높은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추진 중인 '국정교과서'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고등학생 서은지 씨는 "학생들 입장에선 정유라 이대 부정입학 사건이 가장 화가 났다. 17일만 학교 가면 졸업장이 나오고, 수행평가도 안 받는데 교과우수상을 받지 않나. 학생들이 교과우수상을 타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데…"라고 꼬집었다.
◇ "언론이 살아 있으면 이렇게 안 된다"
'다큐 3일'은 이제서야 민심을 전하기 시작한 언론의 '자기반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언론인들 자체도 문제가 있다. 언론인이 잘못했기 때문에 나는 '언론이 죽었다'고 한다. 언론이 살아 있으면 이렇게 안 된다"는 시민의 일침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될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언론이 주목할 만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그것은 정권이 엮여 있는 권력비리 사건에서 그만큼 몸 사려온 '과거'가 있었기에 도드라지는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내부 구성원들의 계속된 '보도·제작 요구'와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을 요구하는 외부 비판 이후, KBS는 정유라 씨 대학입학 과정에서의 부정, 김종 전 차관 발언 등 단독을 해 가고 있고, '시사기획 창', '추적60분', '일요토론' 등에서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소재로 했다. KBS 대표 예능인 '개그콘서트'의 활약도 만만치 않다. 더 세져서 돌아온 '민상토론2'는 3주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활약'이 대통령 지지율이 5%로, 4%로 곤두박질친 후에야 본격화됐다는 점은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 아닐까. '다큐 3일'도 마찬가지다. '다큐 3일'은 지난 2014년, 수사권과 기소권을 보장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국회에서 농성한 세월호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으려다 '논쟁적 이슈는 불가하다'는 간부들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당시 반대하던 간부는 '사실상 국회 농성이 불법'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지만, 결과적으로 정부 비판적인 내용을 다루는 데 부담을 가졌던 것은 아닐까. 아예 현 정권을 부정하고 퇴진을 촉구하는 울분에 찬 목소리가 방송을 가득 메웠는데도, 이번 '다큐 3일'은 '무사히' 방송됐다. 제작진과 책임자들의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대한민국 사회를 뒤흔든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공영방송 KBS'의 더 활발한 보도와 제작을 기대한다.